고려 전기 보살상 연구
저자
발행사항
서울 : 홍익대학교 대학원, 2016
학위논문사항
발행연도
2016
작성언어
한국어
DDC
731.889430951 판사항(22)
발행국(도시)
서울
기타서명
A study on the bodhisattva statues of early Goryeo Dynasty(918~1170)
형태사항
v, 150p. : 삽화 ; 26 cm
일반주기명
지도교수: 한정희, 정은우
국·영문초록수록
참고문헌: p. 108-117
DOI식별코드
소장기관
There are 100 pieces of Bodhisattva(菩薩) statues remained in South Korea and part of North Korea which were founded during Early Goryeo(高麗) Dynasty(918~1170). The importance of the statues of this period has not gained an appropriate academic recognition in spite of the number and the art-historical value. Thus, this research aimed to present a panorama of the Bodhisattva statues of Early Goyeo Dynasty before analysing the characteristics and the academic importance. For this, the diverse style of gilt-bronze statues, the regionality shown on stone statues and the originality of Maitreya(彌勒) statues were examined.
The founders of Goryeo were confronting the issue of subjugating the regional forces to strengthen the royal authority, as the dynasty was founded upon the collapse of Later Three Kingdoms(後三國). They also had to deal with the complicated foreign policy, as various dynasties such as Tang(唐), Five Dynasties(五代), Northern Song(北宋) and Liao(遼) were continuously rising and falling in this period. In order to cope with these difficulties, various policies based upon pluralism were taken: Hunyo Sipjo(訓要十條), the Ten Rules proclaimed by the founder King Taejo(太祖) is one of the examples, as it contains disparate philosophies of Buddhism, Confucianism, Feng-Shui theory and folk belief together. The pluralistic atmosphere affected the Goryeo Buddhism which is shown in the coexistence of diverse Buddhist sects, belifs and form of temples. The distinctive diversity of Early Goryeo Bodhisattva statues, which is clearly different to the streotyped statues of Later Goryeo, comes from this historical background.
Gilt-bronze statues of this period can be categorized into three groups; the traditional style, the foreign style and the original style. The traditional style respectively succeeds the expressions of Three Kingdoms(三國時代) and Unified Silla Dynasty(統一新羅). Influences of Liao and Northern Song statues can be found upon the style of crown, hand-held object, pedestal and costume. The originality of this period is shown in the face expression and loop-shaped ornaments.
Stone statues of this period display the importance of the traffic routes, especially waterways, considering the new styles were introduced alongside the routes. For instance, there are numerous statues of the new style close to the route that connects the capital Gaeseong(開城) and the southern capital Namgyeong(南京·current Seoul). In contrast, no statue of 11-12th century style remains in Anseong(安城), where has lost the position of the transportation hub with the re-establishment of the southern capital in 1104. A similar case can be found upon Nakdonggang River(洛東江) in Gyeongsangdo(慶尙道): Bodhisattva statues of new styles are located close to the waterway, whereas the statues far from the river shows isolated and stalled expressions.
The regionality of this period’s Bodhisattva statues is displayed in many different ways. Statues in Gangwondo(江原道) have a distictive style of crown and rear hood which seem to be influenced by Liao statues. In Chungcheongdo(忠淸道), statues of a large size and crude expressions were established. Meanwhile, only a few amount of Bodhisattva statues are remained in Jeollado(全羅道), which seems to be affected by the collapse of regional maritime powers that were prosperous during the Unified Silla Dynasty.
The originality of Early Goryeo Maitreya statues, most importatly standing Bodhisattva Maitreya statues, is remarkable. Traditionally, Bodhisattva Maitreya was only expressed with sitted position, whereas Buddha Maitreya was expressed either sitted or stood. Therefore, standing Bodhisattva Maitreya is an original expression of Early Goryeo, together with the expressions of Udayana-style(優塡王式) robe and Nirmana-Buddha(化佛) on the crown which usually are not shown on Bodhisattva Maitreya images. Ceremonial Canopies(Chattra·寶蓋) and hand-held object of Dragon Flower Tree(Nagapuspa·龍華樹) are other originalities that cannot be found in other regions or periods. Those expressions are based upon the description of Maitreya-related sutras, which means that Goryeo people referred to the sutras on creating the original expressions.
Bodhisattva statues of Early Goryeo Dynasty have the historical significance considering Korean Buddhist sculptures. Most importantly, Bodhisattva statues started to be worshipped as the principal deity(主尊佛) in this period. The pluralistic atmosphere of Early Goryeo society together with the expansion of the Buddhist belied enabled this. The correlation of traffic routes and statues, which demonstrates the regionality of sculptures, is another reason to pay attention to this period. Finally, the establishment of Bodhisattva Maitreya statues is important as it displays not only the popularization of Maitreya beliefs but also the aspects of Buddhist rituals in the open air, aimed to the believers of lower classes.
Bodhisattva sculpture made significant progress in quantity and quality during Early Goryeo Dynasty, which consequently produced the established main style respresented by Wooden Sitted Bodhisattva Avalokitesvara(木造觀音菩薩坐像) of Bongjeongsa Temple(鳳停寺) in Late Goryeo Dynasty. In summary, Early Goryeo was the period of the most diverse shape of Bodhisattva statues were produced in Korean history, which enabled the base establishment of style that lasted for centuries afterwards.
남한 및 북한 일부 지역에는 고려 전기(918~1170)에 조성된 100점의 보살상이 현존하고 있다. 그러나 그 수량과 특성, 미술사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고려 전기 보살상은 아직까지 합당한 주목을 받지 못해 왔다. 본고는 현재까지 알려진 고려 전기 보살상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그 특성과 흐름에 따라 분류하여 한국미술사상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규명해 보고자 마련되었다. 이를 위해 금동보살상의 양식에 나타나는 다양성과 석조보살상에 보이는 지역성, 미륵보살상의 독창성이라는 주제로 논지를 전개하였다.
고려는 각 지방 세력을 토대로 성장한 후삼국을 누르고 세워진 국가인 만큼 이 세력들을 수렴하여 왕권을 안정시키는 것이 국초의 가장 큰 과제였다. 대외적으로는 당과 5대 10국, 북송과 요의 패권 다툼 등으로 중국의 정세가 매우 불안정한 시기에 각 세력과 균형 잡힌 외교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국내외적으로 이질적 요소를 다루고 통합하기 위해서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포용력 있는 정책이 요구되었고, 그 결과 불교, 유교, 풍수도참, 토착신앙 등 다양한 사상적 배경을 지닌 훈요십조가 고려의 국시가 되었다. 다원성이라 칭할 수 있는 고려 전기의 이러한 분위기는 불교계에도 영향을 미쳐, 다양한 종파와 신앙, 여러 형태의 사찰이 공존할 수 있었다. 보살상의 중앙양식이 견고하게 자리잡는 고려 후기와는 확연하게 비교되는 고려 전기 보살상의 다양성은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에 기반한 것이었다.
고려 전기의 금동보살상은 크게 전통적 요소의 보살상과 외래 요소를 지닌 보살상, 고유의 표현이 나타나는 보살상으로 나눌 수 있다. 전통적 요소의 금동보살상은 낙액의 표현 및 군의 위로 나타나는 띠 매듭과 같이 통일신라대의 영향을 받은 양식, 삼산관과 U자형 영락, 도톰한 복련의 팔각형 대좌 등 삼국시대의 영향을 받은 양식으로 나뉜다. 외래 요소의 금동보살상은 고관을 쓰고 앙련형 좌대에 앉은 금동보살좌상이나 연꽃을 쥔 백의관음보살입상과 같이 요대 보살상의 영향을 받은 양식, 소매가 넓은 대의를 걸치고 굵은 인동문의 보관을 쓴 금동보살입상이나 수월관음도살의 금동보살상과 같이 송대 보살상의 영향을 받은 양식이 있다. 고려 전기 고유의 표현으로는 양감이 강조된 볼과 좁은 코, 입으로 대표되는 얼굴 표현과 고리형 영락 장식이 있다.
고려 전기의 석조보살상 또한 다양한 전개를 보인다. 석조보살상은 교통로의 변천을 통해 양식의 변화나 지역성을 엿볼 수 있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남경의 설치를 전후하여 개경과 남경 사이의 교통로 주변에는 큰 규모의 마애상이 여럿 조성된다. 반면 남경의 설치와 함께 교통거점으로서의 기능을 잃은 안성 지역에는 12세기 이후 제작으로 추정되는 작례가 남아 있지 않다. 강원도의 보살상에는 요대 불교조각의 영향이 다양하게 나타나며, 타 지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공양보살상이 다수 조성된다. 충청도에는 고려 왕실과 관련이 있는 대형 보살상과 비보적 기능을 지녔을 것으로 생각되는 석주형 보살상이 여럿 남아 있는데, 개성이나 서울, 강원도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세련된 표현보다는 투박하고 괴체적인 표현이 주를 이뤄 주목된다. 경상도의 보살상은 고려 전기 교통로의 개편에 따라 경북과 경남 지역의 불교조각 양식이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된다. 즉, 낙동강 유역의 경북 지역 보살상이 이천 장암리 태평흥국명 마애보살좌상과 같은 동시대적 양식을 반영하고 있는 데 비해, 거창이나 함안, 합천 등 경남 지역의 보살상은 통일신라기 양식을 답습하거나 동시대 양식에 대한 이해 부족을 보인다. 한편 타 지역에 비해 전라도에 유난히 적은 수의 보살상이 남아 있는 데는 장보고를 비롯한 서남해안 해상세력의 몰락이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 전기 보살상의 독창성은 미륵보살도상에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미륵보살입상의 조성이다. 전통적으로 미륵불은 의상이나 입상으로 모두 표현되지만, 미륵보살상은 교각상이나 반가사유상 등 앉아 있는 모습으로만 표현되어 왔다. 따라서 서 있는 미륵보살의 도상은 고려 전기에만 나타나는 고유의 표현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고려의 위정자들이 스스로의 모습을 미륵에 투영한 결과로 보인다. 우전왕식 대의를 포함한 여래형 복식, 보관에 나타나는 화불, 방형 혹은 팔각형 보개, 용화수 지물의 표현 또한 타 지역이나 시기의 불교조각에 잘 보이지 않는 고려 전기만의 특징이다. 이러한 표현들은 미륵의 소의경전에 묘사되어 있는 미륵하생시의 모습을 시각화한 것으로 보여, 독창적인 표현을 시도함에 있어 고려인들이 경전을 참고했음이 확인된다.
고려 전기의 보살상은 한반도의 불교조각사에 있어 적지 않은 의의를 지닌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보살상이 주존불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고려 전기 사회의 다원적인 분위기와 불교조각의 저변 확대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보살상의 조성 현황을 통해 교통로와 불교 조각의 상관관계를 유추하고, 불교조각의 지역성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 또한 고려 전기 보살상이 불교조각사적으로 중요한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고려 전기 미륵보살상의 조성은 미륵신앙의 대중화 뿐 아니라 불교의례가 다양한 신분의 신도를 위해 야외에서 열리기 시작했음을 보여 주는 증거로 주목할 만하다.
고려 전기를 통해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성장한 보살 신앙과 보살의 시각예술은 고려 후기에 이르러 안동 봉정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을 필두로 하는 보살상의 중앙양식을 낳고, 이것이 고려 후기 및 조선시대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과적으로 고려 전기는 한반도에 있어 가장 다양한 모습의 보살상이 조성된 시기이자, 그 후 수백 년간 이어지는 양식의 기초가 마련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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