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년 이후 근대 한국의 민권·민주사상의 발전과정 : 동아시아 3국(한·중·일)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 On advancement of Korean thoughts concerning the people's rights and democracy since 1876 : the comparative study of East Asian thoughts
저자
발행사항
서울 : 成均館大學校, 2016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박사) -- 成均館大學校 大學院 , 東洋哲學科 韓國哲學專攻 , 2016
발행연도
2016
작성언어
한국어
KDC
151.7 판사항(6)
DDC
181.119 판사항(23)
발행국(도시)
서울
형태사항
vii, 256 p. ; 30 cm
일반주기명
지도교수: 崔一凡
참고문헌: p. 242-252
DOI식별코드
소장기관
동아시아의 근대는 서구와 동등한 주권을 인정받지 못한 채 불평등한 통상조약을 맺고 개항을 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동아시아에 주권 침해 및 국권 피탈의 위기감을 불러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동아시아 각국은 서구의 힘을 만들어내는 민중의 역량에 주목하였고, 이에 따라 민주적 제도와 민권 사상의 도입이 주장되었다.
초기 개화기(1876~1800년대 말)는 개항 전후 조선 내에서 중화문명의 세계관과 서구문명의 세계관이 서로 갈등하며 동도론과 개화론으로 나뉘어 논쟁하던 시기이다. 동도론자들은 봉건적 신분제를 고수하고자 하였으며, 정치적 영역에서의 시무는 士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겼다. 반면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등 개화파들은 갑신정변의 「정강」에 ‘문벌을 폐지하고 인민이 평등한 권리를 갖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조항을 넣음으로써 처음으로 민권사상을 공표하였다.
동아시아의 민중운동은 주로 농민이 중심이 되었으며 봉건적 질서를 혁파하기 보다는 봉건적 질서의 정상화를 목표로 하였다. 그리고 이질적 혹은 침략적 존재로 인식하였던 서구에 대해서는 반감을 가졌다는 면에서 동도론적 성격을 갖는다. 일본의 요나오시 잇키는 봉건세력의 가혹한 연공 수취에 반발하여 적정량의 연공을 수취할 것을 요구하였으며, 신정반대잇키는 메이지 신정부의 근대화 정책을 야소교도(서양세력)의 조종에 의한 것으로 보고 구막부 체제로 돌릴 것을 요구하였다. 중국의 태평천국운동은 청조에 반발하며 ‘상제 앞의 평등’이라는 관념을 가진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종교적 평등 의식은 경제적 평등 의식으로 확장되었으나 정치적 평등 의식으로 확산되지는 못했다. 동학농민운동은 민본사상과 정명론에 입각한 봉건 질서의 정상화를 꾀하였다. 운동 과정에서 이들은 봉건 왕조의 폐지를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良賤制에 입각한 피차별민제를 없앨 것을 주장함으로써 사실상 양인 신분만 남길 것을 주장하였다. 또한 이들이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설치한 집강소는 지방 행정의 감시․대체․보좌 등의 기능을 하며 초보적 형태의 지방 의회적 성격을 띠었다.
계몽운동기(1800년대 말~1910)에는 봉건제를 대체할 근대적 정치체제를 모색하면서 동시에 민중을 그러한 체제에 걸맞은 근대적 국민으로 계몽시키기 위한 민권사상이 전개되었다. 봉건체제 말기 동아시아 3국은 모두 전제왕조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공화정 수립을 주장하기는 어려웠고 따라서 봉건제와 근대적 국민주권사상을 절충한 입헌군주제를 먼저 주장하였다. 동아시아에서 입헌주의를 처음으로 도입한 것은 일본의 가토 히로유키이다. 그는 초반에는 천부인권사상, 자연권 사상 등에 기반 하여 영국식 입헌주의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사상의 후반기에는 군주에게 강한 권한을 부여한 프로이센식 입헌군주제와 군주 주권론을 주장하였다. 중국의 입헌주의자 캉유웨이와 량치차오는 사회진화론에 따라 인류 역사는 필연적으로 봉건제-입헌군주제-공화제로 발전한다고 주장하였다. 한국에서 입헌군주제 도입을 주장한 박영효, 유길준 등은 유교적 민본사상과 천부인권과 자연권 사상, 그리고 사회계약론과 저항권 사상의 논리를 차용하여 민권 확보와 군권 제약을 주장하였다. 특히 유길준은 일본의 입헌군주론은 전제주의와 다름이 없는 것으로 보고 영국식 입헌군주론의 도입을 주장하였다. 헌정연구회는 황제권을 헌법에, 민권을 법률에 근거하는 것으로 두면서 비록 민권을 확보하기는 하였으나 헌법으로 보장된 황제권에 비해 하위에 두면서 전제황권과 민권을 양립시키고자 하였다.
동아시아에서 일본은 천황에게 중앙집권적 권력을 부여한 입헌군주제를 채택한 이후로 공화제 주장은 위헌, 즉 불법이었기 때문에 제기될 수 없었다. 중국의 경우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민주공화정을 수립하였으나 혁명파의 대부분이 공화제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가 아닌 배만 민족주의 의식에 의해 혁명에 참여했기 때문에 다시 제정이 부활되는 등 그 수립과정이 순탄하게 진행되지는 못했다. 한국에서는 을사조약(1905)이후 신민회에서 처음으로 공화제가 제기된 이래, 국권이 피탈(1910)되고 일제 식민통치가 시작되면서 이후 추구해야 될 정체로는 민주공화정으로 수렴되었다. 신민회의 공화주의는 국민주권주의를 주장하였으며 민중 개개인이 국가사상과 독립의식의 제고 및 기술․지식․문화 등의 근대적 능력을 키워 국가경쟁력을 높여 독립을 달성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후 ‘대동단결선언’에서는 대한제국의 멸망 이래로 융희황제(순종)가 가지고 있던 주권은 자연히 한국 민중에게 계승되었다고 주장하며, 민주공화정 정부 수립을 결의하였고 이에 따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국민주권․권력분립․입헌주의․의회수립 등의 요소와 자유권․평등권․참정권 등 민주정부의 모든 조건을 충족한 임시헌장을 제정하였다. 그러나 국권이 피탈된 상황에 의해 실제로 한국 사회에 적용되지는 못했다.
이데올로기 운동기(1919년 이후) 동아시아 각국은 이미 지향하는 정체가 정립된 상태였다. 그러나 각각의 이데올로기에 기반 하여 정체를 실현할 방법론, 그리고 사회상과 민권에 대한 관점에 차이가 발생하였다.
한국의 자유주의는 크게 미국 교포 출신이 주축이 된 자유주의와 일본의 문화주의의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로 나뉜다. 대표적인 자유주의 사상가인 안창호는 청교도적 자본주의 윤리를 전제로 개인의 실력양성을 통한 사적 이익추구를 인정하면서, 국가적 목적에 개인의 역량을 맞춰야 한다거나 국가적 목적을 위해 부수적으로 개인의 민권을 확보한다는 사고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동시에 국민주권의 논리에 의해 개인의 주권자로서의 사회적 책임감을 제고하면서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 사이의 조화를 꾀하였다. 한국에서 사회주의 운동은 피착취계급인 노동자, 농민, 여성, 피차별계급 등이 혁명의 주체가 되어 제국주의자, 자본가, 남성 등 착취 세력을 몰아내고 계급을 타파하여 평등권을 쟁취하고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노동운동에서는 최저임금제, 단결권, 파업권 등 노동자의 현실을 고려한 사회권 확보를 위한 권리 주장이 나타났다.
동아시아의 아나키즘은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과 ‘민중직접혁명론’의 영향을 받은 일본의 고토쿠 슈스이를 거쳐 한국에서는 신채호 등의 아나키스트에게 수용되었다. 민중직접혁명론에서 민중은 누구나 불가침의 자유와 평등의 권리를 가진 존재이면서, 동시에 자유와 평등의 주인으로서 그 권리를 자각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압제와 투쟁하는 주체이며, 상호부조론에 의해 자유와 평화의 집단적 권리를 지키기 위해 국제 연대를 통해 전 세계 무산민중을 해방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근대 한국 사회의 민권․민주사상의 발전과정은 결국 국권피탈의 위기를 극복하고 제국주의를 타도하기 위한 독립운동․근대국가 수립운동으로 귀결된다. 광복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독재와 권위주의를 타도하기 위한 운동이 이어져, 80년대 민주화 운동이 성공하였지만 이는 민주주의의 실질적인 완성을 의미하기 보다는 민주적 절차를 정상화시켜 앞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한 토대를 마련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유지하는 한 계속해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보완하며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The beginning of the modern times of the East Asian countries was started by concluding the unequal treaties which didn't recognize equal rights to sovereignty between Western and East Asian countries. And this situation aroused sense of crisis in East Asian countries, which was they could be deprived of their national sovereignty unless they would accept the Western civilization and reform their outdated social system. And the thinkers of East Asian countries tried to enlighten and build the people up as free and independent modern citizen to overcome the national crisis, and for this purpose, they introduced and developed the thoughts on the civil rights and democracy and tried to adopt the democratic political system.
The early stage of the enlightenment(1876~the late 1800s), there were some controversies based on Sinocentrism and Westerncentrism. Some of the Sinocentrism thinkers held on to the caste system and insisted only nobleman had to have the political rights. On the other hand, some radical enlightenment thinkers who were favorable to accepting the western civilization published the platform that contained the 14 articles which insisted the abolition of lineage and the reformation of system for admitting the equal rights of the people.
Meanwhile, the popular movements of East Asian countries were mostly led by peasant and aimed at normalizing the premodern social system instead of conducting a revolution. Donghak peasantry movement was aimed at normalizing the social system based on the ‘people-oriented(民本, Min-Bon) principle’ and ‘rectification of names(正名, Jung-Myeong) principle’ They didn't insist the abolition of the monarchy but demanded the abolition of the lowest class of people and operated ‘Jip Gang So(執綱所)’ which was similar to early stage of local council.
The period of the enlightenment(the late 1800s~1910), some of the thinkers tried to introduce the constitutional monarchy or republican government. The thinkers supporting the constitutional monarchy tried to reconcile the traditional monarchy and the people’s rights. Park Young-hyo suggested the restriction of the power of the king and increase the rights of the people. Yoo Gil-jun suggested the introduction of the English constitutionalism. Heonjeong yeon'guhoe(憲政硏究會, the Constitutionalism Research Society) suggested the approval of the rights of people assuring it by law but they insisted that the monarch power should be superior than the rights of people assuring the monarch power by constitution.
Since Eulsa Treaty(1905), Sinminhoe(新民會) insisted they have to introduce a republican government into Korea. And since sovereignty of Korean Empire was taken away by Japanese in 1910, a republican government was regarded as the best form of government by most Korean political thinkers. And some of the thinkers declared Korean people was succeeded the sovereignty which had been belonged to emperor Yunghee by ‘Daedong unity declaration(大同團結宣言)’ and established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in 1919. And they enacted provisional charter which assured the sovereignty of people and the right’s of the people including right of freedom, equal rights, universal suffrage and etc.
The period of the ideologic movement(since 1919), liberalist An Chang-ho supported the freedom to seek private profits and insisted people can develop their own strength by admitting that kinds of rights. At the same time he stressed the people’s social obligation as an owner of sovereignty. The movements based on Socialism mainly pursued the acquisition of the equal rights and especially labor rights were primely brought up by labor movement. As an anarchist Shin Chae-ho insisted people have to struggle to resist suppression and invasion of imperialism as a master of their own freedom.
The advancement of the modern Korean thoughts concerning the people's rights and democracy was concluded to overcome imperialism and authoritarianism and establish independent modern nation, sovereigns of which are Korean people. As a successor of this democracy, we have to struggle to protect and develop the democratic va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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