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초기 한국시에서의 숭고시학과 생명공동체의 이념
저자
발행사항
서울 : 서울대학교 대학원, 2016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박사) -- 서울대학교 대학원 , 국어국문학과 국문학전공 , 2016. 2
발행연도
2016
작성언어
한국어
주제어
DDC
810
발행국(도시)
서울
형태사항
228 ; 26 cm
일반주기명
지도교수: 김유중
DOI식별코드
소장기관
이 글의 목적은 1920년대 초기 한국시의 특수성을 ‘숭고시학’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숭고시학이 당대 조선적 현실에서 심화되고 있는 측면을 ‘생명공동체’라는 개념으로 해명하려는데 있다. 일찍이 ‘1920년대 초기’는 본격적인 근대문학의 전개가 가능했던 시기로서 ‘미적 근대성’이라는 개념에 의해 평가되어왔다. 거기서 나아가려한 후속연구에서는 1920년대 초기 시의 주요 주제인 ‘자연’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대상으로 그리거나 도달 불가능한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는 현상에 주목하여 ‘숭고’에 대한 인식을 읽어내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서구 이론과 일본 담론을 근거로 접근해온 기존의 연구에서는 ‘미적 근대성’에 균열을 일으키는 이질적인 기호로서 ‘조선’과 ‘전통’을 제시하였으나, 이 또한 ‘미적 근대성’을 강화시키는 방식으로 정당화되어왔다. ‘조선’과 ‘전통’에 대해 ‘반근대’나 ‘전통주의’라는 개념을 덧붙이거나 이를 외부의 담론과 직결시키는 방식은 그러한 의도를 보여준다.
따라서 이 글은 서구 이론으로 무장한 ‘숭고 미학’과 보다 직접적으로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식의 ‘풍경론’을 1920년대 초기 시에 기계적으로 적용하기보다 1920년대 초기 텍스트 자체에 내재해 있는 특수한 관점에 따라 ‘숭고’를 읽어내고자 한다. 그러할 때 1920년대 초기 시에서 ‘자연’은 대상의 절대적인 크기를 나타내는 ‘무한’, 대상의 절대적인 시간을 나타내는 ‘영원’, 대상의 불가해성(不可解性)을 나타내는 ‘신비’의 범주를 동반함에 따라 ‘미적 원근법’으로 환원할 수 없는 지점에 놓이게 된다. 이를 보여주기 위해 1920년대 초기 시인들은 ‘자연’에 대한 도달 불가능성을 나타내는 문학적 지표로서 ‘거리감’을 도입하고 있다. 그들은 ‘미적 원근법’으로 환원할 수 없는 숭고한 영역을 발견함에 따라 자신들의 예술을 ‘진리’의 심급으로 승격시킬 수 있었으며 자신들의 ‘생명’의 원천을 발견해낼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이 ‘거리감’을 도입함에 따라 다다를 수 없는 위치에 두었던 세계는 현실의 이념으로 환원되기보다 끊임없이 현실에 도래해야할 ‘이상향’으로 기능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이 글의 2장에서는 1920년대 초기 조선의 문단에서 숭고에 대한 인식이 파생하게 된 내‧외부적인 사정을 검토하고 1920년대 초기 시에서 형성되고 있었던 ‘숭고시학’의 체계를 해명하고 있다. 1920년대 초기 시에서 숭고시학은 ‘무한’, ‘영원’, ‘신비’의 범주를 가진 대상에 대한 다다를 수 없는 ‘거리감’을 도입하면서도 그러한 대상에 대한 만남의 지향성을 창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숭고시학의 장치는 김소월이 영원성과 찰나를 매개하기 위해 도입한 ‘영혼’의 ‘거울’과 ‘악기’, 김억이 찰나와 표박을 결합시킨 산물인 ‘해파리’, 그리고 황석우와 박종화가 각각 신비주의와 결합된 미지의 세계를 ‘표상’하기 위해 도입한 ‘기분’과 ‘정조상징’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숭고시학의 장치를 통해 숭고한 영역에 있는 대상과 접촉할 때 발생하는 ‘생명’은 자아의 정신적 상승을 나타내는 표지로 등장한다. 나아가 이 글의 3장에서는 2장에서 세운 방법론을 토대로 1920년대 초기 텍스트에서 숭고를 유발하는 계기들을 유형화하고 숭고시학의 관점에서 거기에 담긴 시적 특성과 함의를 밝히고자 한다.
1920년대 초기 시에서 ‘자연’과 함께 다다를 수 없는 대상은 구체적으로 ‘애인’, ‘고향’, ‘어머니’ 등으로 나타난다. 1920년대 초기 시인들에게 ‘애인’, ‘고향’, ‘어머니’는 자신의 존재를 감싸는 토대나 ‘생명’의 근원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들이 ‘애인’, ‘고향’, ‘어머니’의 대상에 ‘조선’이나 ‘전통’의 기호를 결부시키고 있는 것은 그러한 점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그들에게 ‘조선’이나 ‘전통’은 상상이나 관념에 의해 구성된 산물이라기보다 당대의 공동체적 현실을 구성하는 의미망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다만, 그들에게 ‘애인’, ‘고향’, ‘어머니’는 당대의 현실에서 ‘부재’하고 있을 뿐 존재하지 않았던 대상은 아니다. 그들이 그러한 대상과 결부시킨 ‘조선’이나 ‘전통’이 여전히 오랜 세월을 거쳐 ‘혈액’, ‘노래’, 그리고 ‘언어’ 등을 매개로 전해오면서 자신들의 ‘생명’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1920년대 초기 조선에서 ‘조선’이나 ‘전통’은 국민국가 이상의 역사적 지평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의 숭고시학은 당대의 담론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었던 ‘공동체’의 논의와 필연적으로 만난다.
이 글의 4장에서는 1920년대 초기 시에서의 숭고시학이 당대의 현실에서 공동체의 논의로 심화되고 있는 지점을 두 가지의 측면에서 고찰하고 있다. 첫 번째로, 숭고시학에서 ‘조선’이나 ‘전통’의 기호를 통해 ‘애인’, ‘고향’, ‘어머니’를 ‘생명’의 근원으로 두려는 방식은 당대의 현실에서 ‘단군’으로 표상되는 선조들의 문명을 ‘생명’의 궁극적 기원으로 두려는 움직임으로 구체화된다. 즉, 1920년대 초기 조선에서 형성되고 있던 공동체는 아득한 ‘거리감’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기원으로 나타나는 그러한 정신적 토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두 번째로, 숭고시학에서 나타난 ‘생명’은 당대 조선에서 이상적 공동체를 창출하려는 원리로 구체화된다. 말하자면, 1920년대 초기 지식인들은 ‘생명’의 개념을 매개로 공동체의 두 축을 담당하는 ‘개체’와 ‘전체’의 관계를 새롭게 구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동체 구성의 원리인 ‘공동(共同)’의 원리를 활성화시키는 윤리성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이런 점에서 이 글의 4장에서 논의하는 공동체의 개념은 단체나 조직과 같은 실체로 환원되거나 소위 전통주의, 민족주의, 사회주의, 아나키즘 등과 같이 외부 담론이나 정치적 이념으로 규정되는 공동체와는 거리가 멀다. 그보다 1920년대 초기 조선에서 공동체는 전통주의, 민족주의, 사회주의, 아나키즘의 사상들이 당대의 현실에서 고유한 특이성(singularity)을 가지고 혼류할 수 있도록 하는 ‘이념’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단군’으로 표상되는 정신적 토대 아래 ‘생명’을 매개로 하는 ‘공동(共同)’의 원리를 실현하고 있는 공동체에 대해 ‘생명공동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이 글에서 ‘숭고시학’과 ‘생명공동체’라는 개념으로 1920년대 초기 시와 담론의 성과를 살피려는 작업은 다음과 같은 효과를 기대한다. 먼저, 이 글에서는 1920년대 초기 시에 나타난 ‘숭고’에 대한 인식을 서구의 미학 이론과 일본 담론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하는 것에서 벗어나 1920년대 초기 텍스트 자체에 내재한 생산적인 가능성에 따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따라 숭고시학은 종래의 연구들에서 그 자체로 대립적인 위치에 놓여 있던 근대와 전통, 미학과 정치 등이 어떠한 연속성을 띠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간 단절되어있던 1920년대 초기와 중기를 잇는 가교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이 글에서는 숭고시학이 ‘생명공동체’의 이념을 구축하기 위한 시도로 심화되고 있다고 봄에 따라 1920년대 초기 조선에서 근본적으로 기능하고 있는 공동체의 미세한 의미망들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생명공동체’의 개념이 국민국가나 민족주의 이상의 지평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앞으로도 조선의 특수한 현실에 기반하는 공동체의 논의를 더욱 활성화시킬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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