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전의 계열과 주제적 변주
저자
발행사항
서울 : 고려대학교 대학원, 2016
학위논문사항
발행연도
2016
작성언어
한국어
주제어
발행국(도시)
서울
형태사항
ii, 191 p. ; 26 cm
일반주기명
지도교수: 김기형
참고문헌: p. 185-191
DOI식별코드
소장기관
본고는 총 83종의 심청전 이본군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그 계열을 분류하여 계열별 통시적 흐름을 파악하고, 이를 통해 작품의 주제가 변모하는 과정을 탐색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그리고 심청전에 내재되어 있는 희생제의적 구조가 ‘孝’라는 윤리규범을 산출해내는 지점을 탐색함으로써 효 담론이 변화하는 과정까지 포착하고자 했다.
심청전은 다른 고소설 및 판소리 작품들과는 다르게 문장체 소설과 판소리계 소설이 병존해왔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전체 이본군을 같은 층위에서 다루기 위해 심청전을 ‘서사장르類’로 취급하고, ‘장승상부인’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계열분류를 시도했다. 주제 연구의 경우, 효의 성격을 규정짓기보다는 심청의 행위를 ‘효행’으로 인식시키는 ‘가능성의 조건들’을 탐색하고자 했다. 계열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이 조건들은 ‘변주(變奏)’라는 용어로 포착했으며, ‘희생’이 생성하는 담론을 역동적으로 바라보고 그 과정에서 산출되는 효 담론의 변화를 추적함으로써 심청전의 문학사적 위치를 가늠해보았다.
Ⅱ장에서는 심청전 이본군을 계열화하여 그 통시적 흐름을 보이고, 이를 기반으로 심청전의 전승 양상과 향유 방식의 변화를 고찰하고자 했다.
먼저 Ⅱ장 1절에서는 계열 분류의 기준을 제시했다. ‘장승상부인’은 심청전의 통시적 변화 양상에 따라 ‘장자→장자부인→장승상부인’으로의 이행을 보여준다. ‘장자’는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호출되는 관념적 인물로 설정되어 있고, 아직 고유명사화되지 않은 보통명사로서 기능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다가 남성 인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개입되면서 ‘장자부인’이 등장할 수 있었는데, ‘여성성’을 강조함으로써 심청을 둘러싼 성(性)적인 위험성을 제거하고, 향후 장승상부인으로 이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장승상부인’은 심청의 사회적 신분과 희생을 선택하는 심청의 행위를 상층 계층의 시각에서 공인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각각 다르게 나타나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심청전을 장자 계열(A), 장자부인 계열(B), 장승상부인 계열(C)로 분류할 수 있었다.
Ⅱ장 2절에서는 심청전의 서사단락을 10개로 분절해서 각 계열별 서사단락의 구성 및 특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심청의 출생’, ‘심청의 성장’, ‘심청의 매신’, ‘심청의 인당수행’, ‘심청의 투신’, ‘심청의 환세’, ‘맹인잔치 배설’, ‘심봉사의 황성행’, ‘부녀상봉과 봉사개안’, ‘후일담’ 단락을 중심으로 계열 분류의 실제를 제시하고자 했다.
Ⅱ장 3절에서는 심청전의 전승양상과 향유방식에 대한 탐색을 시도했다. 한남원본계가 장자 계열(A)의 서사를 토대로 숙향전의 구조 및 세계관을 수용해서 재구성된 개작본임을 밝히고, 이를 통해 독서물에 대한 향유층의 요구가 존재했음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한남원본계가 등장하기 전 시기에 초기 심청전이 판소리로도 향유되었지만, 필사본을 통한 독서물적 향유가 더 대중적인 지지를 얻었음을 유추해낼 수 있었다. 그 이후에 장자부인 계열(B)부터 한문투의 수사와 고사의 활용을 통해 서사가 확장되었고, 한문투에 익숙치 않았던 광대는 <관우희> ‘序’나 정현석의 편지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비판에 부딪치면서 향유층의 확대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점차 그 한계를 극복해나가면서 결국 장승상부인 계열(C)에 와서 전 계층을 아우르는 대중예술로서 그 입지를 굳힐 수 있게 되었다. 독서물로서의 향유와 판소리로의 향유가 상호 교섭하며 전승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으며, 어느 한 향유방식이 지속적으로 우위를 점하지 않고, 두 향유 방식이 단층적이기보다는 연속적인 성격을 지녔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Ⅲ장에서는 각 계열에 대한 작품론을 순차적으로 시도함으로써 심청전의 주제적 변주를 파악하고자 했다.
Ⅲ장 1절에서는 장자 계열(A)의 주제의식을 파악했다. 심청전에서 제기하고 있는 ‘가난-결핍’과 ‘안맹-결핍’이라는 이중적 결핍은 심청의 불가피한 희생을 부르고, 이 과정에서 심청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기제는 ‘천명(天命)’으로 나타난다. 장자 계열(A)에서 천명은 이중적 결핍의 해소에도 직접적으로 관여하며, 천륜의 가치가 인륜의 가치를 포섭함으로써 희생을 효로 전환시키는 양상을 잘 보여준다. 이후 한남원본계로 분화되는 과정에서는 천정론(天定論)으로까지 나아가게 되는데, ‘효’는 부친을 위한 희생에서 발생하지만, 그 희생을 ‘효행’으로 규정하는 근본적인 요소는 천정론에 입각한 세계관으로, 전생의 업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도출된다는 특징이 있다.
Ⅲ장 2절에서는 장자부인 계열(B)의 주제의식을 살펴보았다. 장자부인 계열(B)에서는 현실에서의 탈주에 대한 욕망과 그 탈주를 가로막는 현실의 벽이 끊임없이 길항작용을 하면서 천명이 부재한 자리를 현실적 인식의 강화로 대체하는 양상을 가진다. 이때 심청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대의명분은 ‘집단의 합의’로 나타난다. 즉, 심청전의 이중적 결핍이 집단의 문제로 부상하면서 그 문제의 해결책을 단 한 사람, 심청의 희생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공동체의 만장일치적 폭력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그 폭력의 흔적을 지움으로써 폭력의 초석 위에 세워진 희생을 ‘효’로 전환시킨다.
Ⅲ장 3절에서는 장승상부인 계열(C)의 주제의식을 고찰했다. 효행이 유교적 규범과 결합하면서 이데올로기로서의 효를 더 강화시킨 장승상부인 계열(C)은 효 이데올로기의 구축을 위한 하나의 도구적 장치로서 천명을 끌어들인다. 희생을 선택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기제는 심청의 육체에 기입된 유교적 이데올로기지만, 그런 유교적 이데올로기의 폭력성을 은폐하고자 천명이라는 요소가 활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효 이데올로기는 무조건적인 규범의 주입이나 강제된 실천 양식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심봉사의 서사를 통해 비판적 성찰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장승상부인 계열(C)에서의 효 이데올로기는 그 자체로 현실적인 결핍을 해소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뒤따라야 한다는 당위를 함께 보여준다는 특징이 있다.
Ⅳ장에서는 효 담론의 변화를 통해 심청전의 문학사적 의의를 조망하고자 했다.
Ⅳ장 1절에서는 심청전의 중층적 구조를 도출했다. 심청전에서는 불교적 사신시와 인신공희라는 두 가지 종류의 희생이 등장한다. 불교적 사신시와 인신공희라는 희생제의의 구조가 결합하는 과정에서 심청전만의 중층적 구조로 재구성되는데, 전체적인 구조는 희생제의의 것을 따르면서도, 희생제물을 드리는 자와 희생제물을 일치시킴으로써 ‘효’라는 가치가 틈입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 따라서 구조적으로 봤을 때 심청전은 ‘제의-축’과 ‘효행-축’이 결합된 형태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Ⅳ장 2절에서는 계열별로 ‘제의-축’과 ‘효행-축’이 통섭(統攝)과 전도(轉倒)를 일으키는 과정을 살폈다. 길항작용 끝에 최종심급의 자리를 차지하는 축이 통섭의 주체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장자 계열(A)은 효행을 둘러싼 도덕적 딜레마를 천명의 개입으로 해결해서 ‘제의-축’에 우위를 두고 ‘효행-축’을 구축하는 형태를 가진다. 천상계의 질서가 지상계의 질서를, 제의-축이 효행-축을, 종교가 도덕규범을, 성(聖)이 속(俗)을 통섭하고 있는 것이다.
장자부인 계열(B)은 제의-축의 외연은 유지시키되, 신의 관념을 제거함으로써 그 성격을 사회적인 것으로 전환한다. 신과 인간 사이의 계약관계에 기초하던 ‘제의-축’을 개인과 집단 사이에 일어나는 폭력적인 관계로 재구축한 것으로, 천상계의 질서를 지상계의 질서가, 제의-축을 효행-축이, 종교를 도덕규범이, 성을 속이 전유하면서 장자 계열(A)의 통섭 구도를 병합구도로 바꾼다.
장승상부인 계열(C)에서는 효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강화하여 ‘제의-축’보다 ‘효행-축’을 전경화 시킨다. 이때 유교적 이데올로기는 효녀로서의 삶을 지속시켜주는 요소이지만, 희생 그 자체에 대한 정당성 문제에 대해서는 슬며시 천명을 끌어들여 해결하는 모습을 보인다. 유교적 이데올로기를 강화해서 ‘효행-축’을 구성하는 데 있어 제기될 수 있는 이효상효의 역설을 ‘제의-축’을 통해 해결함으로써 ‘효행-축’이 ‘제의-축’을 통섭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지상계의 질서가 천상계의 질서를, 효행-축이 제의-축을, 도덕규범이 종교적 관념을, 속이 성을 통섭하고 있는 구도를 보인다.
이와 같은 성속의 통섭 양상은 고착화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상호간의 균열을 일으키며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Ⅳ장 3절에서는 심청전에 나타난 성속의 통섭과 전도를 통해 심청전의 문학사적 의의를 탐색했다. 성속의 통섭은 심청전에 나타난 현실성과 낭만성의 결합을 통해 나타나는데, 이때 낭만성은 현실에 맞서 현실 너머를 지향하고자 하는 태도 혹은 그와 같은 태도에서 비롯되는 어떠한 성향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심청전의 낭만성은 현실적인 여건에서 해결될 수 없는 결핍을 해소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발현된 것으로, 현실이 아닌 현실 너머의 영역에서 해결책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성과 속의 결합을 이끌어낸다.
장자 계열(A)에서 낭만성의 발현은 신과 인간의 소통에 기반한 성의 영역에서 일어나며, 현실의 한계를 종교적인 관념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기초적인 인식을 보여준다. 그리고 장자부인 계열(B)에서는 종교적 관념이 사회적 관념으로 전환되고, 장자부인 계열(C)에서는 효 이데올로기가 종교적 관념을 대체하는 양상을 보인다. 성이 속을 통섭하던 단계에서 속이 성을 통섭하는 단계로 나아감으로써 ‘전도’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성속의 통섭과 전도는 유교적 이데올로기가 단순히 인간에게 강요되는 형이상학적 폭력이 아니라, 종교적 관념을 통섭함으로써 ‘초월성의 내재화’에 성공한 사회적‧집단적 규범임을 보여준다. ‘가난’과 ‘안맹’이라는 이중적 결핍으로 현실의 질곡을 그려내면서, 이를 저 너머의 종교적 관념이 아니라 바로 이 세계의 도덕적 관념인 효로써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심청전이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효 이데올로기가 초월적 근거를 확보했다고 해도 이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제기를 통해 효 이데올로기가 맹목적 추종의 대상도, 그렇다고 왜곡된 상상적 관계에서 도출된 것도 아님을 명시한다. 속이 성을 통섭하는 과정에서 제기되는 비판적 성찰의 필요성은 종교적 관념이 아닌 현실적 토대 위에서 규범으로서의 효를 바라보고자 하는 당대 향유층의 기대지평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Ⅴ장에서는 Ⅰ장에서 제기했던 문제의식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 Ⅱ~Ⅳ장을 통해 주장했던 바를 정리했다. 그리고 본고에서 다루지 못한 연구 영역을 지적한 뒤, 이를 토대로 향후 연구 과제를 제시하는 것으로 결론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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