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氏 西遷이 소그디아나 社會에 미친 影響 : 昭武九姓과 貴霜王朝의 種屬 問題를 중심으로
저자
발행사항
서울 : 명지대학교 대학원 일반대학원, 2016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박사) -- 명지대학교 대학원 일반대학원 , 사학과 , 2016. 8
발행연도
2016
작성언어
한국어
주제어
DDC
900 판사항(22)
발행국(도시)
서울
기타서명
The Impact of the Yuezhi Exodus on the Society of Sogdiana-Centered on the Ethnic Identity of Nine Oasis City-States with the Surname of Somu And of the Kushan Dynasty
형태사항
xi, 224 p. : 삽도, 지도 ; 30cm
일반주기명
명지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지도교수:정철웅
참고문헌 : p.208-220
서지적 및 설명적 각주 수록
소장기관
본 연구는 기원전 2세기 초반에 일어난 大月氏의 西遷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중앙아시아 소그디아나 사회에 미친 영향을 규명하려는 것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필자는 월지족 혹은 월지부족연맹의 種屬 문제를 규명하고자 시도하였다. 무엇보다도 중국 사서에 나타난 기록만으로는 진위를 확정할 수 없지만, 월지의 후손들이 소그디아나에 정착하며 수립했다는 昭武九姓의 형성 시기와 그들의 종족적 기원 문제를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또한 유대감을 공고히 해왔을 월지인들이 건설하고 발전시킨 오아시스 도시국가들 중 康國, 安國, 石國을 중심으로 동서 문명의 충돌과 교류의 양상을 검토하였다. 소무구성이란 기원전 2세기 흉노의 공격에 쫓겨 원 거주지였던 甘肅과 祈連山脈 일대의 목초지를 떠나 서천을 감행한 끝에 마침내 중앙아시아 소그디아나 지방에 정착한 월지의 후손들이 수립한 9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진 종족연맹체를 지칭한다. 대월지라 불리는 이들 월지인들은 중국인들이 嬀水라 부르는 아무다리야강 북안에 도읍을 둔 康國을 중심으로 강국왕의 支庶라는 혈통에 입각한 종족연합을 구성하였다.
패망 전 月氏는 부족연맹체 성격의 느슨한 준 국가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유목민의 특성상 한꺼번에 모든 구성원이 일사분란하게 이동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십중팔구 부족단위로 이동을 감행했을 가능성이 크다. 타림분지를 사이에 두고 북으로는 天山, 남으로는 崑崙과 연접해 형성된 沙漠北南路, 여기에 天山北路를 포함한 西域三道를 통해 月氏는 부족별로 시차를 두고 이동해 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때문에 서역삼도 상에 위치한 주요 도시국가들의 명칭을 분석함으로서 월지의 이동 경로와 흔적은 물론 종족연맹을 구성하고 있는 월지 부족의 이름을 알아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였다.
부녀자와 노약자들은 이주가 어려웠다. 사정상 잔류를 선택한 월지를 소월지라 하고, 蔥嶺과 천산을 넘어 마침내 중앙아시아 소그디아나에 도달한 월지의 무리를 대월지라 한다. 소월지 중 어떤 집단은 인근의 羌族 부락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다 종당에는 그들과 혼인을 하여 강족 사회 속으로 흡수되었다. 또 다른 소월지는 南山인 崑崙山脈 산자락을 따라 이동하다가 미처 총령을 넘지 못하고 중도에 멈추어 그곳에 정착하여 촌락이나 도시를 형성하기도 하였다. 또 다른 부류는 티베트, 네팔, 인도, 중국 서남부의 사천성과 운남성까지 남하한 경우도 있다.
서역삼도 상의 오아시스 국가들의 명칭 분석을 통하여 오늘날의 중국 신강성 위구르 자치주 서단의 도시 喀什와 또 다른 주요 도시들인 龜玆, 高車 등의 語音이 族名인 月氏 혹은 月支와 同價의 /Kash/ 또는 /Kush/임을 밝혔다. 그리고 이는 이동 중의 월지가 중도에 해당 지역에 일정 기간 체재했거나 지배계급으로 영구 정착 하며 자신들이 속한 집단의 명칭을 흔적으로 남긴 것임을 확인하였다. 이렇듯 여러 곳에 지명으로 남아있는 /Kush/ 또는 /Kash/라는 말과 慧琳의 『一切經音義』 등의 문헌 기록를 비교해 월지의 주요 구성 부족 중 하나는 ‘쿠시’족 즉 구슬족임을 밝혔다. 이렇게 해서 屈支種, 葛沙氏族, 仲雲族, 寄氏族, 囐噠, 滑족 등 월지연맹을 구성하고 있던 하위부족들의 명칭을 찾아냈다.
소그디아나에 진출한 대월지는 대략 기원전 140년을 전후하여 그리스인의 나라 박트리아(대하)를 정복하고 그곳을 다섯 구역으로 나눠 통치하는 5翕候制를 택했다. 이는 소그디아나의 선주세력 康居의 5小王制와 같은 통치방식으로 간주된다. 얼마 후 다섯 翕侯 중 하나인 貴霜翕候 쿠줄라 카드피세스(丘就卻: Kujūla Kadphises)가 나머지 네 흡후를 합병하고 박트리아 전역 및 주변 지역을 점령한 뒤, 남으로는 高附를 합병, 서쪽으로는 安息을 점령하여 쿠샨(貴霜)제국을 건립했다. 대월지 다섯 翕翁 중 하나인 貴霜흡후 쿠줄라 카드피세스(丘就卻: Kujūla Kadphises)가 나머지 네 개의 흡후를 합병하고 박트리아 전역과 주변 지역을 점령한 뒤, 남으로는 高附를 합병하고 서쪽으로는 安息을 점령하며 貴霜제국을 건립했다. 쿠샨왕조는 카니슈카(迦膩色伽: Kanishka)대왕 시대에 전성기에 달했으며 간다라(犍陀羅: Gandhara)와 카시미르(克什米爾: Kashmir)가 정치와 종교적으로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간다라의 어원분석을 통해 이곳이 월지의 도읍지임을 밝혔다. 또한 왕조명 貴霜과 Kashmir에서도 ‘玉’을 뜻하는 Kush와 Kash가 사용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서기 3세기 때 쿠샨(貴霜)왕조는 이미 몰락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康居國은 존재했다. 때문에 대월지의 후예가 이룩한 昭武九姓은 소그디아나 전역을 지배하지 못했다. 이는 昭武九姓이 대월지의 서천에 뒤이어 이뤄진 일이 아니라 훨씬 후대의 사실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康國이 중심이 된 소무구성에 의한 소그디아나 지배는 대월지의 후손임을 주장한 奇多羅와 그의 支庶들에 의해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만일 소무구성이 키다라와 그의 세력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는 가정이 맞다면, 소무구성의 종족적 기원은 일단 월지에게로 귀속되어야 한다. 그런데 월지는 강거와 풍속이 같고, 오손, 격곤 등과는 신체적 특징이 닮았다. 강거는 Kangar라 불린 유목집단이다. 이들은 월지가 소그디아나애 유입되기 전부터 그곳에 거주하고 있었다. 강거를 위시해 엄채국, 속특국이 자리 잡고 있던 지역이 소그디아나였다. 그리고 소그디아나는 기원전 6세기경부터 페르시아의 23개 사트라피(satrapy) 중 하나였다.
소그디아나(Sogdiana)라는 명칭은 ‘소그드(粟特)인의 땅’이라는 말이다. Sogd[Soghud]는 Saka, Scythai와 같은 ethnonym(종족명)이다. 중국의 사서에는 塞[索]種으로 기록되어 있다. 불교의 창시자 釋迦牟尼는 바로 Shakya족의 聖者로 그의 조상도 애초 중앙아시아 스텝을 삶의 터전으로 하던 유목민이었을 것이다. 월지가 소그디아나에 도래하기 전부터 강거는 그 땅의 주인이었다. 그들은 의당 소그드인 즉 塞種이었다. 돌궐제국 하에서 캉가르는 돌궐종에 포함되었다. 몽골제국 시절에는 유목민 투르크[돌궐]로 오구즈종족 24개 지파 중의 하나였다. 이렇듯 캉가르의 종속은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양상을 보이지만 기실 그들은 돌궐과 마찬가지로 색종이었다. 아시나씨족이 득세하여 지배세력으로 군림한 돌궐제국도 다수의 부족들의 연합체였다. 그래서 제국에 속한 많은 부족들이 돌궐족임을 표명했다. 월지, 오손, 격곤 등은 공히 유목민이었다. 다 같은 색종인 것이다. 만일 강거 즉 캉가르족이 초원의 지배자가 되었다면 상당수의 집단이 캉가르족이 되었을 것이다.
필자는 소무구성을 昭武를 공통의 氏로 삼는 아홉 개의 서로 다른 姓을 가진 국가 또는 도시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昭武를 공통의 氏로 삼는 이유는 월지가 흉노에 쫓겨 소그디아나에 오기 전 자신들이 주거처가 기련산 북쪽의 소무성이었으므로 그를 잊지 말자는 취지라고 사서의 기록은 전한다. 이 용어의 語音과 語義에 대해서도 논의했지만 확실한 결론을 내린 상태는 아니다. 그러나 월지나 강거 등의 유목민이 색종인 소그드인이라면 昭武城의 ‘소무’가 스키타이인들이 축제를 즐길 때 마시는 ’소마(soma)’라는 환각유도음료이어도 크게 이상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중원 사람들이 8세기경부터는 소그드인을 胡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梵語雜名』은 胡를 /suli/로 표기했다. 티베트인들은 sogpo라고 불렀다. 그런데 얼핏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 표현들이 같은 의미를 지니고 같은 대상을 지칭한다. 경멸적으로 말해서는 ‘오랑캐, 야만인’라는 의미로 쓰이는 이 용어들이 궁극적으로는 스키타이요, 사카인이요, 색종 즉 소그드인을 지칭하는 종족명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월지, 강거, 오손, 돌궐 등 塞種의 초원유목민은 드넓은 초원을 자유롭게 이동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의 문화 내지는 풍속습관을 아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주제어: 월지(月氏), 소그디아나, 소무구성(昭武九姓), 귀상왕조(貴霜王朝), 소리(蘇哩)
At the beginning of the 2nd century B. C. E, it happened that under a leadership of the Xiongnu chief(匈奴單于) named Modu Chanyu(冒頓單于) had attacked and driven the neighboring Yuezhi(月氏) away out of their homeland of the Somu Fort(昭武城), forcing them to migrate thousands of miles further west into Central Asia, as far as the banks of the Amu Darya(嬀水), so-called the Oxus, in the land of Daxia(大夏), the old Bactria of the Hellenized Persian Empire. The Great Yuezhi(大月氏) accepted their fate, and decided to move away, following the common route of the Western Regions(西域).
By the time of Modu's death in 174 B. C. E, the Xiongnu had driven the Yuezhi from the Hexi Corridor(河西回廊) of Gansu(甘肅), killing the king of the Yuezhi in the process and asserting their presence in the Western. In 162 B. C. E, under Jizhu Chanyu(稽粥單于), also known as ‘Laoshang'(老上), the Xiongnu defeated the Yuezhi for the fourth time. After this defeat, the majority of the Yuezhi (referred to by the Chinese as the Da Yuezhi(大月氏) fled to the northwest, crossed the Pamir, and finally settled down in the region of the Amu Darya River, whereas a smaller group (referred to by the Chinese as the Xiao Yuezhi = ‘Lesser’ or ‘Smaller’ Yuezhi(小月地)) fled into the southern mountains(南山, i.e., the Kunlun Mountains and settled down amongst some of the Qiang tribes(羌族) there.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effect of the Yuezhi exodus on the Sogdiana(소그디아나) society in Central Asia where the Kangar tribal confederation has already existed for a long time before the advent of the Yuezhi from the east.
First of all, my chief concern goes to the ethnic identity of nine oasis city-states with the surname of Somu(昭武九姓) and of the Kushan Dynasty(貴上王朝). Somukusong, which literally means ‘the nine oasis city-states with the same surname of Somu’, is believed to have been established by the descendants of the Yuezhi proper.
Once again, Somukusong is referred to as the tribal confederation consisting of nine small countries found by the descendants of the Great Yuezhi, who were trailed by the Huns and finally settled in the region of Sogdiana in Central Asia, after transferring to the West from leaving their grassland between Gansu(甘肅) and the Qilian Mountains(祈連山脈).
The people of the Great Yuezhi finally settled down with its capital on the northern bank of the Gui[Oxus] river, in the region of Transoxiana (modern Tajikistan and Uzbekistan), just north of the Hellenistic Greco-Bactrian Kingdom, and formed a tribal alliance based on the blood line of the King of Kang and his sons.
It is important to seek into the aspects of collision and interchange between the Eastern and Western civilization centered on the three states of Kang, Ahn, and Seok amongst oasis city-states constructed and developed by the Yuezhi who made endeavors to strengthen the solidarity among the community members.
Before being defeated by the Xiongnu, the Yuezhi had the political entity of a loose semi-state system. It might be said that all members of the state could not move along in perfect order to the unknown place.
There were three main routes to the Western Regions: the Southern Tien Shan Route(or the Northern Desert Route), the Northern Tien Route(the Steppe Route), and the Southern Desert Route. It might also be possible that the members of the defeated Yuezhi managed to move along in the unit of the tribes in all probability.
Therefore, it is expected that we can find out the ethnonyms of the Yuezhi’s sub-tribes by the analysis of the place names, personal names, and a variety of titles.
Women and the old and the weak were difficult to move and chose to remain. The group of people who would rather choose to stay were called the Lesser Yuezhi, whereas the majority of the Yuezhi who decided to leave and join the marching troop, and passed over the Pamir were called the Great Yuezhi. And we saw the latter reach Sogdiana in Central Asia. The tribesmen of the Lesser Yuezhi were associated with the people from nearby Qiang(羌族) villages, eventually marrying them and were absorbed into the society of the Qiang
And another group of the Lesser Yuezhi moved along the foot of the Kunlun Mountains, stopped in the way, settled in there and formed villages and cities. And there were some who liked to try their fate in such alienated places as Tibet, Nepal, India and China(particularly Sichuan and Yunnan provinces).
In terms of analyzing the place names of the oasis cities situated along on the three routes to the Western Regions, the ancient pronunciation of such cities as 喀什, 龜玆, 高車, and others is the same as that of seemingly 月氏 or 月支: /Kash/ or /Kush, which means that the mainstream or the main ruling group of the migrating Yuezhi was a jade-totem clan or a tribe.
Through the linguistic findings we could presume that people in the past tended to employ their ethnonyms to mention the places where they chose to stay for a good period as a trace of their dwelling. In other words, linguistic forms including place names are the very remnants of human life and culture. It is not difficult to discover that one major tribe consisting of the Yuezhi confederation is Kush, jade-totem tribe. To say least, we might conclude that one major tribe constituting the Yuezhi-confederation is a Kush tribe
Around 140 BCE, the Great Yuezhi advanced in Sogdiana, and conquered a Greek colony of Bactria(大夏). The Kushans(貴霜) were one of five branches or aristocratic tribes(翕候) of the Yuezhi confedereation. Kujūla Kadphises, the great grandfather of Kanishka, established the Kushan Empire.
The Kushan Dynasty was a syncretic empire, formed by Yuezhi, in the Bactrian territories in the early 1st century. flourished during the reign of Kanishka the Great, a devout patron of Buddhism. Gandhara and Kashmir used to be important places politically and religiously. Kanishka is renowned in Buddhist tradition for having convened a great Buddhist council in Kashmir. By the analysis of the etymology of Gandhara and Kashmir, I have found that the place was the capital of Yuezhi, and that Kashmir is a term with two meaning elements of Kash and mir, which signify ‘jade’ and ‘hill’, respectively.
Keyword: Yuezhi, Sogdiana, Somugusong (nine city-states with a common sirname of somu), Kushan Dynasty, Su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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