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글로벌 자동차기업 GM(General Motors)의 두 자회사인 GM 유럽과 한국지엠 사례 연구를 통해 초국적기업이 작업장체제에 가하고 있는 변화 압력의 과정과 성격을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초국적기업 노사관계에 관한 기존의 논의들은 노사관계 혹은 노동조합의 성격이 초국적기업의 투자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 논문은 반대로 초국적기업의 특성이 자회사 노사관계 변화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기존의 많은 논의들은 자회사의 노사관계를 초국적기업을 매개로 모기업 본국의 제도와 관행이 이전(transfer)되는 과정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비해, 이 논문은 초국적기업의 위계적인 조직 통합과 이것이 야기한 자회사간 경쟁에 주목하였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본 논문은 GM의 두 자회사가 그간 상반된 수익성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상반된 사업 전망을 가지게 된 이유를 작업장체제와의 관계 속에서 찾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이 논문은 모기업 GM의 글로벌 통합 과정에서 자회사간 경쟁 구조가 어떻게 산출되었으며, 이 자회사간 경쟁 구조 아래에서 전개된 생산의 정치의 과정을 분석하였다. 결론적으로 이 논문이 제시하는 주장을 밝히면, 최근 두 자회사의 상반된 사업 전망은 GM의 위계적인 글로벌 통합 과정과 이로부터 유발된 자회사간 경쟁의 결과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작업장체제는 글로벌 통합 과정과 자회사간 경쟁 구조 아래에서 변화의 압력을 받고 있는 것이었지, 작업장체제가 모기업의 투자 결정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아니었다. 연구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1980년대 수익성 위기에 대응하여 GM은 다양한 방식의 처방을 내놓았는데, 이 과정에서 GM은 생산정책 측면에서 플랫폼 통합을, 생산조직 측면에서는 지속적 개선의 관리 원칙 도입을 골자로 하는 변화를 이루어낸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자동차기업들의 세계화가 진행됨에 따라 GM은 변화한 생산모델을 해외 자회사에 부과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은 다국가적(multi-domestic) 기업에서 다지역적(multi-regional) 기업으로의 전환이라는 맥락에서 이루어졌는데, 다국가적 기업에서 자회사들은 개별적으로 기술 개발과 생산을 주도하는 자율성을 가지고 있었다면, 다지역적 기업에서는 모기업의 개입이 증가하고 자회사들은 플랫폼 통합에 따라 상호간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자회사간 경쟁 구조에서 자회사들의 위치는 주로 플랫폼 개발 기능과 판매지의 중요성에 따라 위계화되고 변화되었다.
2) 1980년대 이전까지 GM 유럽의 자회사들은 모기업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았던 독자적인 민족 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모기업 GM이 1986년 유럽 본부 설치를 통해 유럽 사업을 통합하려고 시도하면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모기업의 개입을 증가시키려는 GM의 시도는 1990년대 전까지는 자회사의 반발로 별다른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1990년대 유럽 생산지가 확장되고 이로 인해 자회사간 경쟁 관계가 보다 강화되면서, 모기업의 영향력은 보다 강해졌고 노조의 개별적 대응은 한계에 부닥쳤다.
GM 유럽은 이미 1970년대 후반부터 플랫폼이 통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회사간 경쟁의 구조가 다른 지역에 비해 잘 갖추어져 있었다. 1990년대 해외 생산지 확대에 따라 자회사간 경쟁이 강화되면서 유럽의 노조들은 양보 압력을 받게 되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연대적 대응을 모색하였다. 그리하여 유럽의 노조들은 유럽종업원평의회 제도를 이용하여 유럽적 연대체를 구성하였고, 유럽종업원평의회의 노사 협의는 구조조정과 생산 배치를 둘러싼 GM 유럽의 생산의 정치에서 중심적인 영역이 되었다. 플랫폼 통합에 따른 자회사간 경쟁의 조건 아래에서 진행된 노사 교섭은 주로 이 경쟁을 ‘공정하게’ 만드는 방안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그 결과 GM 유럽의 작업장체제는 기존의 ‘갈등의 제도화’ 체제에서 ‘경쟁의 제도화’ 체제로 전환되었다.
3) 2000년대 GM의 한국지엠에 대한 통합 작업은 지속적 개선의 관리 원칙 도입이라는 생산조직 측면에서만 진행되었다. 반면 생산정책 측면에서의 플랫폼 통합은 지체되었는데, 이는 GM이 한국지엠을 인수한 직후 대우자동차에서 개발되었던 플랫폼에 기반하여 생산을 이어나갔기 때문이었다. 플랫폼 통합 지연에 따라 한국지엠의 글로벌 통합 과정은 지체되었고, 이로 인해 한국지엠은 자회사간 경쟁 구조에 형식적으로만 노출되었다. 형식적인 경쟁 구조는 위협으로서만 작용하여 노조의 변화된 대응을 이끌어내기에는 큰 효과가 없었다. 그리하여 작업장체제는 기존의 ‘기업 수준 갈등의 제도화’ 체제가 지속되었다.
2005년 한국지엠은 GM의 소형차 플랫폼 개발 권한을 공식적으로 부여받는데, 이는 한국지엠의 높아진 위상을 반영하는 동시에 한국지엠이 향후 자회사간 경쟁 구조에 실질적으로 편입되는 시작점이 되었다. 플랫폼 개발 권한의 확보라는 점에서 보면 한국지엠이 GM의 자회사간 분업 구조에서 상위에 위치하고 있지만, 플랫폼 생산 측면에서 보면 이 시점부터 동일한 플랫폼을 생산하는 다른 자회사들과 경쟁 관계에 들어선 것이었다. 전차종의 플랫폼 통합이 점점 가시화되고 이로 인해 자회사간 경쟁의 압박이 강화되는 상황에 대해 한국지엠노조는 - 연대적 대응을 모색한 유럽과 달리 - 기존과 마찬가지로 기업별 교섭 제도에 근거하여 개별적인 대응을 했고, 이는 기존 작업장체제의 규칙에 근거하여 ‘미래 발전 전망’을 요구하고 협의하는 교섭 형태를 낳게 되었다.
4) 2010년 전후 모든 차종이 GM 플랫폼으로 통합되면서, 한국지엠은 GM의 글로벌 통합화 과정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 시기 GM의 글로벌 통합화 과정에서 과거 플랫폼 개발 기지를 중심으로 하는 위계의 원칙에 변화가 발생하는데, 그것은 ‘판매지 생산 원칙’에 대한 강조였다. 2000년대 GM의 글로벌 통합화가 플랫폼 개발 기지들인 미국-독일-한국을 축으로 하는 과정이었다면, 2010년대는 대규모 판매지인 미국-중국-독일을 축으로 하는 과정으로 그 성격이 변화하였다. 변화된 위계적인 글로벌 통합 과정에서 이제 한국지엠은 대규모 판매지의 중심 기지를 확보한 미국-중국-독일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하위에 위치하게 되었다. 최근 나타나는 유럽과 한국에 대한 상반된 투자 흐름은 GM의 위계적인 글로벌 통합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위계의 상대적 차이에서 기인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GM의 생산 배치에 있어 노사관계 요인을 강조하는 설명과는 반대로 GM의 생산 배치 과정이 개별 작업장의 노사관계에 더 많은 영향을 주고 있음을 의미한다.
2010년대 GM의 글로벌 통합 과정은 또한 자회사간 경쟁의 범위를 보다 전세계적인 차원으로 확대하였다. GM 유럽의 노조들과 한국지엠 노조의 상이한 대응은 이러한 새로운 자회사간 경쟁 구조에 대한 두 가지 반응이었다. GM 유럽의 노조들이 고용 협약을 통해 경쟁적 원칙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 노동조건을 양보하고 고용을 보호하고자 했다면, 한국지엠노조는 기존의 기업별 단체교섭을 통해 경쟁적 원칙을 반대하면서 노동조건과 고용 모두를 보호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지만, 두 노조 모두 노동의 힘의 약화를 특징으로 하는 작업장체제의 변화 압력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종합적으로 보면, GM의 두 자회사의 작업장체제는 미국식 혹은 GM식의 제도 혹은 관행이 적용된 결과로 변화하고 있다기보다는, GM의 위계적인 글로벌 통합 그리고 이것이 유발한 자회사간 경쟁 구조로 인해 변화의 압력을 받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자회의 작업장체제의 변화 유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인적자원관리 관행이나 성과주의 임금제도와 같은 모기업 제도의 도입 여부보다는, 자회사간 경쟁 구조 아래에서 나타나는 생산 배치를 둘러싼 생산의 정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GM 유럽의 경우 유럽적 노사협의가, 한국지엠의 경우 ‘미래 발전 전망 교섭’이 GM이 자회사 작업장체제 변화에 가져온 영향력을 볼 수 있는 주요한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이들 교섭의 중요한 특징은 노동조건을 둘러싸고 갈등을 조율하는 전통적인 노사 교섭과 달리, 투자(고용)와 노동조건을 연계하여 이를 교환하는 형식으로 교섭이 벌어진다는 점에 있다. 투자를 동의의 대상으로 하는 노사 교섭의 등장은 한편으로 전통적으로 경영권의 배타적 권한으로 간주되었던 사항에 대해 노조가 개입한다는 점에서 노조의 권한 확대로 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교섭이 노동조건과 연계되면서 많은 경우 노조의 양보를 동반하는 까닭에 노조의 교섭력 약화를 반영하기도 한다. GM의 글로벌 통합화의 진전과 위계적이고 경쟁적인 자회사간 관계의 강화가 가져온 새로운 노사 교섭에서, 자회사의 노조들은 생산 배치를 보장받기 위해 다른 자회사의 희생을 전제로 한 생존 경쟁에 몰입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글로벌 자본이 가져온 변화는 ‘GM 유럽종업원포럼’이나 ‘GM 노동조합 국제 네트워크’처럼 초국적 협력의 진전을 보여주는 국제적 노사관계를 형성시킴으로써 새로운 생산의 정치의 가능성을 열어 놓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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