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신앙의 인지적 기반에 관한 연구 : 강우의례를 중심으로
저자
발행사항
서울 : 서울대학교 대학원, 2017
학위논문사항
발행연도
2017
작성언어
한국어
주제어
DDC
200 판사항(22)
발행국(도시)
서울
기타서명
A study on the cognitive foundations of folk beliefs : a focus on rituals for rain
형태사항
vii, 300 p. ; 26 cm
일반주기명
참고문헌 수록
DOI식별코드
소장기관
이 논문의 목적은 인간 마음의 자연스러운 직관과 추론과 기억에 작용하는 여러 가지 인지적 제약들이 민속신앙의 관념, 실천, 전승을 위한 자연적 토대가 된다는 것을 한국의 강우의례들을 사례로 삼아 체계적으로 해명하는 것이다.
민속신앙은 특정 종교에 배타적으로 속하지 않는 종교적인 생각과 행동 및 그 문화적 분포 양상을 논의하기 위한 개념적 범주다. 민속신앙은 미시적으로 지역 및 집단의 고유성이나 특수성을 위한 지표라 여겨지기도 하지만, 거시적으로는 세계의 다양한 문화권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패턴을 보이는 일반적인 현상으로서의 특징도 갖는다.
민속신앙에 대한 과학적 접근은 성립종교들의 총합보다 훨씬 광범위한 인류의 종교문화를 분석적으로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를 위한 체계적인 이론과 방법이 한국의 사례에 대한 분석과 함께 제시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에 본고는 지난 수십 년 간 인지과학과 진화심리학의 성과에 힘입어 전개되고 있는 자연주의적 종교연구들, 그중에서도 특히 인지종교학(cognitive science of religion)의 주요 이론과 발견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한국 강우의례의 사례를 통해 민속신앙에 접근한다.
강우의례는 이러한 민속신앙의 문화적 현존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양질의 종교사적 사례를 제공한다. 조선시대의 강우의례와 근현대 강우의례의 몇 가지 형태들은 모두 전적으로 특정한 종교전통의 교리적 신념이나 의례적 규범에 의해 뒷받침되는 것이라기보다는 가뭄이라는 현실적 위기와 잠재적 위험에 대한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의례적 반응을 반영하고 있다. 강우의례에서는 초자연적 강우 행위자에 대한 관념이 환기되며 정해진 절차를 엄격히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강력하게 작용한다. 또 이러한 강우의례는 독특한 양식을 획득하면서 문화적으로 전승된다. 본고는 명시적인 교리적 신념이나 의례적 규범을 전제로 하지 않은 채 어떻게 사람들이 그러한 관념, 실천, 전승을 향유할 수 있는지, 또 어떤 부류의 관념, 실천, 전승이 문화적 성공을 거두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진화된 인간 마음의 작동방식에 비추어 분석한다.
첫 번째 분석은 민속신앙적인 관념에 대한 것이다. 수많은 강우의례에서 반복적으로 환기되는 특정한 관념들이 있다. 비를 내리게 한다고 믿어지는 특정한 인과체계에 대한 관념들, 혹은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는 신이나 정령 혹은 동물 등 특별한 강우 행위자에 대한 관념들이 그러한 예이다. 특히 서로 다른 강우의례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초자연적 행위자에 대한 다양한 관념들은 <사람>이나 <동물>과 같은 존재론적 범주에 대한 직관 및 추론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인지과학의 다양한 증거들은 이러한 관념들이 모듈화된 인지적 기능들의 종합적인 작용에 의해서 직관적으로 환기되거나 쉽게 추론되고 회상될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 번째 분석은 민속신앙의 실천적 차원에 관한 것이다. 강우의례의 실천에는 특정한 부류의 규칙들이 요구되지만 그 실질적인 이유는 모호한 경우가 많다. 또 사람들은 그 실천들의 의미론적 근거를 확인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행하는 일이 의미 있다고 여기며 심지어 매우 엄격하게 지켜 행해야 한다고 여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실천은 선례를 참조하는 것으로 정당화된다. 이러한 강우의례의 특수한 규칙성은 인지적으로 제약된 직관과 추론이 작용하는 민속신앙의 실천적 차원이 갖는 특징을 보여준다. 이러한 특징은 특히 진화된 인간 마음이 지닌 행위표상체계, 위험예방체계, 메타표상체계 등의 종합적인 작용에 기반을 두고 있다.
세 번째 분석은 민속신앙의 전승(傳承, transmission) 양상과 관련된 것이다. 가뭄의 절박한 현실에서 행해지는 강우의례는 예견되는 불행의 긴박함 속에서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곤 한다. 그러나 그 모든 의례적 방식이 문화적 성공을 성취하는 것은 아니다. 그 세부적인 형식이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널리 행해지는 강우의례의 특성은 비교적 소수의 패턴으로 수렴한다. 특히 강우의례들의 정서적 분위기나 형식은 마치 어떤 ‘끌개 위치(attractor positions)’가 있는 것처럼 유사한 패턴의 양상이 부각되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강우의례들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패턴은 무속과 유교의 의례적 지향이 제공하는 사회·역사적 요인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서 부분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유사한 패턴이 세계의 여러 문화권에서도 발견되는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점에서 이 패턴에 대한 보다 일반적인 설명이 요구된다. 장기기억체계와 문화 전승의 관계에 대한 고찰은 이러한 패턴이 자극의 ‘화려함’에 의해 강화되는 일화기억과 자극의 ‘빈도’에 의해 강화되는 의미기억 등 장기기억의 두 가지 메커니즘에 의해 뒷받침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민속신앙에 대한 이상의 논의들은 인류의 종교문화가 성립종교들의 교리와 규범에 의해 전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설명 불가능한 신비적인 원인을 갖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지적한다. 인류의 종교문화가 지닌 특정 양상들은 인간이 지닌 여러 인지체계들의 종합적인 작용에 의해 체계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인간 마음의 일반적이면서도 이종혼성적인(heterogeneous) 작동방식들에 의해 민속신앙의 관념, 실천, 전승을 설명하는 본고의 논리는 인간의 종교적 삶이 지닌 역동적인 양상을 단일한 종교적 본성으로 환원시키는 선험적 관념론이나 후천적인 다양성과 차이만을 강조하는 상대주의에 함몰되는 것을 거부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엄밀한 의미에서 아직 과학적으로 충분히 입증된 것이 아니고 여전히 논쟁적인 이론적 가설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증거들을 필요로 하며, 반증에 의해 언제든지 수정되거나 폐기될 수 있다. 종교에 대한 자연주의적인 접근들은 여전히 많은 비판과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이 연구 역시 그러한 비판과 논쟁에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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