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修好條規 체제의 성립과 운영 연구 (1876~1894)
저자
발행사항
서울 : 고려대학교 대학원, 2017
학위논문사항
발행연도
2017
작성언어
한국어
주제어
발행국(도시)
서울
기타서명
A study on the establishment and operating of the Korea-Japan treaty of amity system (1876~1894)
형태사항
vi, 253 p. ; 26 cm
일반주기명
지도교수: 崔德壽
참고문헌: p. 235-247
DOI식별코드
소장기관
조선과 일본은 1876년 2월 「朝日修好條規」를 체결하였다. 이것은 양국 관계를 새로 설정해 나가는 데 하나의 출발점이었다. 1894년 청일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조일 간 조약운영은 「조일수호조규」 체결 이후 개항장으로 드나드는 사람과 물자를 관리할 수 있는 관리규정을 지속적으로 논의하면서 운영체제를 정비해 나간 과정이었다. 조일수호조규 체제의 성립은 장기간에 걸친 사안별 교섭을 통하여 진행되어 나갔다.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현장에서 운영을 담당하는 감리나 영사의 의견수렴을 거쳤고, 정부 차원에서 협상을 하여 개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개항장에서의 조약운영은 여기에 관계한 여러 주체의 행동과 판단, 이해, 각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조문을 해석하고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과정에서는 기존에 체결하였던 조약을 협상 논거로 끌어오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조약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조일 양국은 기존 관행을 유지하려 하거나, 조약 균점 요구를 통해 자국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고자 하면서 입장이 충돌하는 경우도 많았다. 반면에 공동으로 대처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개항장을 중심으로 하여 협조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경우도 존재했다. 조약 운영체제는 두 가지 양상이 혼재되어 개항장에서 복잡하게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운영 과정에서는 조선에 주재하고 있던 타국 외교관들의 개입과 승인을 통해 조정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조약 체제의 운영에는 조일 양국을 비롯하여 조약을 체결하고 있던 여러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중층적으로 얽혀 있었다. 조약 체제가 기본적으로 ‘불평등조약’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으나, 여러 주체들의 대응논리가 어떻게 나타나고 있었는지를 감안하면서 운영 양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 논문에서는 조일수호조규 운영체제의 제도적 정비와 운영과정을 통상관계의 정비와 운영(1부), 거류민 단속규칙의 제정과 운영(2부), 거류민 보호 조치의 실시와 규칙 제정(3부)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Ⅰ장에서는 1876년 「조일수호조규」 체결 이후부터 현안으로 떠오른 통상문제에 대하여 조일 양국이 대응해 나간 과정을 살펴보았다. 특히 기존 연구에서 활용하지 않았던 자료들을 중심으로 하여 조일 양국이 세칙 문제에 접근하는 양상을 살펴보았다. 부산 두모진 수세의 경우 조선정부에 수세 형평성의 문제를 제기한 의주 상인들의 항의에서 비롯되었다. 일본상인들은 수세 정지를 요구했고,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를 대리공사로 파견하여 무력으로 과세를 정지시키고 배상교섭을 진행하도록 했다. 1879년 조일 간 교섭은 주로 통상 문제를 중심으로 하여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 때 조선 정부에서는 세칙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성을 자각했다. 이것은 1880년대 초 두 차례에 걸쳐 일본으로 수신사를 파견하고, 세칙 초안을 마련하여 협상에 임하게 하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세칙 초안을 작성하는 과정에서는 능동적으로 정보를 수집하였으며, 그것을 협상안에 반영하여 교섭에 임하려 했다.
Ⅱ장에서는 「朝日通商章程」 체결 과정에서 각 주체의 인식과 대응은 어떠하였는지를 살펴보았다. 이것은 미국공사 푸트와 함께 조선으로 건너왔던 일본인 사이토 슈이치로(齋藤修一郞)가 남긴 보고서 기록을 중심으로 검토하였다. 이 자료를 통해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와 다케조에 신이치로(竹添進一郞) 간의 협상에 대한 입장차, 조선에 이익을 부여하고자 한 푸트의 입장 등을 구체적으로 확인했다. 아울러 「朝日通商章程」이 개항장 내에서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조관별 운영사례 두 가지를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일본 측에서는 「朝日通商章程」 제18관에 기초하여 이중과세를 폐지해 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청했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내지로 출입하는 물자에 대한 과세를 통해 지방관청이 재원을 마련하고자 한 현실적 필요성도 존재했다. 한편, 조선정부는 면세와 무검사 통관 규정을 악용하여 홍삼이 몰래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려 했다. 이를 위해 「朝日通商章程」 제16관을 엄밀하게 해석하고 적용하여 공사관이나 영사관의 수출품목에 대하여 단속을 실시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정부는 『萬國公法』의 구체적인 조관을 논거로 들어서 협상에 임하고 있었다.
Ⅲ장에서는 「朝日修好條規附錄」에서 처음에 10리였던 ‘間行里程’이 임오군란을 전후로 하여 100리까지 확장되어 간 과정과 그 속에서 거류민을 관리하기 위한 단속규칙을 제정했던 과정을 살펴보았다. 특히 1882년 3월 안변부에서 발생하였던 살상사건의 사례를 조명함으로써, 이 사건이 임오군란 발발 후 ‘間行里程’ 확장 교섭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그 와중에 조일 간에는 조영조약 제4관 제6항을 근거로 하여 균점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일본정부에서는 1883년 거류민을 전반적으로 단속하고 관리하기 위해서 「淸國及朝鮮國在留日本人取締規則」도 제정하였다. 이것은 1885년에 한 차례 개정된 이후 1896년까지 단속규칙으로 기능하였다.
Ⅳ장에서는 「朝鮮國內地旅行取締規則」의 제정하고 위반자를 단속해 나간 과정을 검토했다. 「조선국내지여행취체규칙」은 호조를 발급하는 문제와 맞물려 있었다. 조선 내지로 왕복하는 일본 상인들이 증가함에 따라 호조의 발급 절차는 점차 간소해졌다. 이 과정에서 조선정부는 개항장을 출입하는 조선인과 외국인에 대하여 관리 감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대처하고 있었다. 일본정부는 상인들의 내지 진출에 편의를 제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조관을 수정하여 적용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間行里程’ 규정을 위반한 일본인들에게는 영사재판을 거친 후 비교적 경미한 벌금이 부과되었으며, 자수를 통해 감형을 받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를 통해 일본정부가 단속규정을 자국민에게 느슨하게 적용하면서 일본인들의 내지 진출을 권장하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물론 단속규칙과 재판절차를 마련한 것은 서구의 문명화를 달성했다는 대외적으로 보여주려는 목적이 강했다.
Ⅴ장에서는 갑신정변 이후 조선의 정세가 불안정해지는 상황 속에서 발생했던 두 차례의 병력 이동 문제를 중심으로 여기에 얽혀 있는 조약운영 양상을 다루었다. 여기서는 특히 1888년 ‘유아납치’ 소동의 전말을 중심으로 하여 「天津條約」 위반 문제에 대하여 각 주체들이 어떻게 대응하였는지를 살펴보았다. 조선정부에서는 국왕이 각국 병력의 입경을 긴급하게 허가했기 때문에 1885년에 제정한 「各國公館護衛章程」을 적용할 수 없었다. 일단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도성 내 단속을 실시하였고, 외교단 회의 앞으로 고시문 초안을 회람한 후 자구 수정 의견을 받아들여 이것을 게시하는 방향으로 대처해 나갔다. 아울러 일본 측의 병력 이동에 대해서도 동향을 파악하면서 곧바로 철수시켜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일본 측에서는 인천영사와 공사 사이에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가운데, 무장해제 형식을 취하기는 했으나 병력을 한성 내로 이동시켰다. 이것은 「天津條約」 제3조를 위반한 외교적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았다. 때문에 일본 대리공사는 급히 병력을 철수시키고 사태를 수습하는 방향으로 대응하였다.
Ⅵ장에서는 거류민 보호를 위해 조일 양국 정부가 개항장을 중심으로 하여 검역규칙을 정비해 나간 과정을 살펴보았다. 치사율과 전파력이 높은 콜레라와 같은 전염병이 개항장을 통해 유입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개항 이후 대두한 문제 가운데 하나였다. 1880년대 중반 이후로 조일 양국은 개항장을 중심으로 하여 전염병 유입을 방지할 수 있는 검역제도를 정비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여기서는 「朝鮮通商口防備瘟疫暫設章程」이 제정되던 전후시기를 중심으로 하여 각 개항장별로 전염병에 대처해 나간 양상, 감리나 영사의 인식과 대응 등을 살펴보았다. 검역규칙의 제정에는 조일 양국을 비롯하여 각국 외교관들이 개입하고 있었다. 개항장 내에서 검역규칙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각국의 검토와 동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朝鮮通商口防備瘟疫暫設章程」을 개항장에서 시행하는 과정에서는 세부적으로 보완하거나 수정해야 할 사항들이 대두하였다. 이 문제에 대하여 개항장 내 여러 주체들이 의견을 제시하고, 그것을 수렴하면서 개정안이 도출되는 과정까지 살펴보았다.
조약 운영의 각 사례는 청일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개정을 위한 교섭이 수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일본 측이 조선 개항장으로 진출하여 정착하고, 내지로 진출해 나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조선정부에 조문의 개정이나 확대적용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기는 했다. 하지만 조선정부에서도 개항 이후 유동하는 인원이 증가함에 따라 이를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관리규정을 만들어 개항장과 지방관청에 고시하였다. 일본 측에서는 자국인들에 대한 통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여겨지는 내용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朝日修好條規」나 「朝日修好條規附錄」과 같은 조약 내 명확한 내용이 없다는 것을 근거로 단속규정의 강화에는 항의하였던 것이다. 조일 양국은 개항장을 중심으로 하여 조약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관리 감독을 강화하고자 했고, 상대방에 대해서는 주도권을 행사하고자 하였다. 이것이 관철되는 경우도 있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게 존재했다. 조일 양국 간의 역학관계도 영향을 미쳤지만, 청국을 비롯하여 서구 열강과 조약을 체결하고 있다는 요소도 조선 내에서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존재를 끊임없이 의식하고, 이들로부터 동의를 구해야 하는 문제가 조약 운영상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대외적으로 인정을 받아야 하는 문제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1894년 청일전쟁 발발은 조약운영에서 일대 전환점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일본이 군사력을 동원하여 7월 23일 조선의 경복궁을 무단으로 점령한 사건은 조일 양국이 조약문의 논리에 기초한 외교교섭을 통해 사태를 수습할 수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이것은 1894년 이전까지 조일 양국이 협상을 통해 조약의 운영방향을 조율해 나가던 양상과는 분명 달랐다. 일본정부로서도 더 이상 「朝日修好條規」 체제에 기초하여 조선과 교섭을 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우위에 있는 군사력에 입각하여 자국의 입장을 관철시키려는 방향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 조약 운영이 현실적인 힘의 역학 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국면이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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