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문제제기로서 처음 시작하였다. ‘왜 우리는 “썸”만 타는가?’의 문제이다. “썸”이라는 관계형태의 양성화, 미디어의 노출, 주변에서의 “썸”의 범람과 잦은 종료. 연구자는 20대 후반의 청년세대 중 한명으로서 왜 우리가 그러한 관계만을 반복하는 것인지를 탐구해보고자 했다. 이는 신자유주의라는 맥락 아래, 소위 “헬(Hell)조선”이라는 시대담론을 공유하는 우리들의 친밀성의 영역, 그 가장 아래의 단계에서 어떠한 변동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들여다보고자 한 시도였다.
연구자는 이러한 관계가 신자유주의시대 한국 사회에서 새로운 친밀성의 양상으로서 등장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즉, 전지구적으로는 신자유주의라는 맥락, 그리고 그보다 아래에서는 ‘한국’이라는 친밀성의 공간 안에서, 연구자는 “썸”이라는 관계를 통해 청년세대들이 어떠한 관계맺음을 실천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려 했다.
이를 위해 연구자는 실제로 이러한 관계를 실천하고 있는 청년들 11명과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연구자는 “썸”이라는 친밀성의 양상을 크게 세 가지의 연구문제로서 탐구하였다. 첫째는 “썸”의 실천양상, 둘째는 관계인식, 그리고 마지막은 실천논리이다. 연구자는 이러한 세 가지의 연구문제들로부터 도출된 결과들을 종합해, “썸”을 신자유주의시대 한국 사회라는 맥락에서 어떻게 이해해볼 수 있을 것인지를 결론으로서 제시하였다.
“썸”의 실천양상과 관련하여, “썸”은 개인들에 의해 하나의 독립적인 관계 형태로 실천되고 있는 관계였다. 개인들은 “썸”을 유지하면서도, ‘연애’로 넘어가지 않기 위해 소위 ‘밀당(밀고 당기기)’의 전략을 구사하며 관계를 “썸”에 고정시키고 있었다. 먼저 ‘당기기’의 전략으로, 이들은 오프라인/온라인으로서 인상 관리를 통해 좋은 모습만을 보이며 관계를 유지하려 했는데, 이때 SNS는 자신의 자아 연출과 상대의 취향 확인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연락은 카카오톡을 통해 수시로 이루어졌고, 공백의 시간에는 SNS의 ‘좋아요’ 기능을 통해 지속적인 연락을 취했다. SNS는 이들에게 상대와의 관계를 시작하고 유지하는 데 있어, 개인의 노력과 감정의 부담을 줄여주는 가장 경제적인 관계맺음의 방식이었다.
이들의 데이트는 연인간의 데이트와 다름없었지만, 스킨십에 있어서는 의견이 갈렸다. 11명의 인터뷰이들 중 8명이 “썸”에 있어 성관계까지 가능하다고 밝혔고, 이들 중 6명은 실제로 이러한 경험이 있어 대체적으로 스킨십에 있어 자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이러한 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상대와 “사귀자”라는 발화 행위를 통제하고, 호감 표현을 적절히 조절하면서 상대와 ‘연인’으로의 관계 전환을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때 “썸”은 명시적으로 합의되기도 했는데, 몇몇 인터뷰이는 상대와 ‘이러한 관계를 유지할 것’을 합의한 후 관계를 지속하기도 하였다. 곧 “썸”은 독립적인 관계에서 나아가, 합의되어 유지될 수 있는 관계의 형태로까지 실천되고 있었다.
관계의 인식과 관련해서는, 인터뷰이들에게 이러한 관계는 ‘연애의 부담’은 없으면서, ‘연애 감정’은 누릴 수 있는 준(準)연애 관계로 인식되고 있었다. 즉, 이들은 ‘연애’가 가져올 수 있는 부담들은 피하는 한편, 그러한 관계에서 오는 감정들은 획득할 수 있는 관계로서 “썸”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남성들의 경우 ‘여자친구의 행복’을 하나의 부담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연애를 할 경우 ‘여자친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고 있었다. 곧 ‘연애’가 부담으로 다가오는 이들에게 있어 “썸”이라는 관계는, 그러한 부담 없이도 ‘연애’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이들에게 있어 실행 가능한 관계맺음의 방식이었다.
인터뷰이들은 “썸”이라는 관계를 유지하면서, 연애의 부담은 소거된 상태로 재미, 즐거움과 같은 연애의 감정들을 누렸다. 이들에게 있어 썸남, 썸녀의 존재는 때로는 외로움, 상실감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었고 때로 의지가 되기도 하였다. 몇몇 인터뷰이는 이러한 관계에서 오는 감정이 가장 ‘순수한 감정’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즉, 이는 ‘연애’나 ‘결혼’과 같은 구속적인 관계에 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할 것이 없는 ‘자유로운 관계’로부터 오는 즉흥적이고, 순수한 감정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관계는 다양한 이성 탐색이 가능한 열린 관계로 이해되었는데, 실제로 많은 인터뷰이들이 “썸”을 타는 동시에 다른 이성과 데이트를 즐겼고, 복수의 “썸”을 유지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썸”은 공식적인 연인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이성을 만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말하였다. 또한 이들은 현재의 썸남, 썸녀를 미래의 보험적인 이성으로 생각하기도 하였는데, 즉, 현재 사귀지는 않지만, ‘미래에 사귈 수도 있는’, 잠재적 연인으로서 상대를 남겨 놓은 것이다. 연구자는 이를 연애 시장에서의 우위를 점하려는 개인의 전략적인 선택이라 해석하였다.
한편, “썸”의 관계는 ‘연인’이라는 존재가 부재한 불완전한 관계로 이해되기도 하였다. 즉, ‘연애’라는 공식적인 울타리가 없기 때문에 상대가 언제든 나를 떠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내재된 관계인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썸”에서는 상대에게 온전한 의지를 하기란 불가능하고, 이는 공식적인 ‘연인’이 아니기 때문에 남들에게 공표할 수 없는 떳떳하지 못한 관계였다.
연구자는 그렇다면 이들이 이러한 불완전한 관계맺음을 실천하는 논리는 무엇인지를 알아보았다. 이들은 먼저 자신의 커리어에 있어서의 불안정성(precarity)을 경험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커리어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이들은 상대와 ‘연애’를 시작하더라도 관계가 어차피 깨질 것이라는 관계적 불안정성의 문제까지 갖고 있었다. 이들은 현재에 있어 ‘커리어’를 친밀성의 영역에 우선하는 양상을 보이며 끊임없이 자기계발하는 개인의 모습을 보였는데, 곧 이들에게 있어서 ‘연애’라는 친밀성의 양상은 하나의 ‘리스크’로서, 항상적으로 커리어의 이후에나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였던 것이다. 커리어를 계발하는 데 있어 마주하는 현실적인 조건들은 이들로 하여금 안정적인 관계를 갖지 못하게 하는 기제로서 작용하고 있었다.
또한 이들은 한국에서 규정되고 있는 ‘연애’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이들에게 ‘연애’가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의 ‘연애’의 모습이 소비와 밀접하게 연관된 ‘낭만적 사랑’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남성의 경우 낭만적 사랑의 이미지와 관련해 여성에게 무엇인가를 ‘해줘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규정된 연애의 모습은 이들로 하여금 그러한 수행 능력이 갖춰지지 않았다고 판단되어질 때, ‘연애’라는 관계를 포기하게끔 하고 있었다.
개인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경제적인 개인의 모습으로 돌아서서, 감정의 득실을 고려해 상대와의 관계에 감정을 투자할지 말지를 결정했다. 이들은 상대와 헤어질 것을 예상하기 때문에, 감정을 쏟게 되는 ‘연인’이라는 관계를 피하려 했고, ‘연애’의 관계에서 쏟아야 하는 감정의 투자를 하지 않기 위해 “썸”의 관계에 머무르고 있었다. 또한 이들은 “썸”이라는 열린 관계 속에서 보다 다양한 이성을 만나면서 감정을 분산 투자하고, 다른 이들도 모두 그렇게 하기 때문에 ‘나만 손해볼 수 없어’ 다양한 이성을 만나려 하고 있었다. 결국 이들은 경쟁이라는 시장 논리를 내재화해, 감정이라는 친밀성의 영역에서도 득실을 따지며 관계에 대한 투자를 결정하는, 지극히 경제적인 신자유주의적 개인의 모습으로 제시되었다.
연구자는 이러한 연구 결과들을 토대로, “썸”이라는 친밀성의 양상이 신자유주의 한국 사회에서 신자유주의적 개인성의 문제, ‘한국’이라는 친밀성의 공간, 그리고 테크놀로지의 세 가지의 축으로 구성된, 청년세대들이 가장 경제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한 친밀성의 양상이라고 제시하였다. 청년들은 ‘연애’라는 것이 하나의 리스크로 다가오는 한국의 현실 속에서,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아 가장 경제적인 방식으로 이를 재구성해 실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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