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화폐유통 연구
저자
발행사항
서울 : 高麗大學校, 2018
학위논문사항
발행연도
2018
작성언어
한국어
KDC
911 판사항(6)
DDC
951.9 판사항(23)
발행국(도시)
서울
형태사항
v, 181 p. ; 26 cm
일반주기명
지도교수: 李鎭漢
참고문헌: p. 171-181
DOI식별코드
소장기관
고려시대에는 실물가치를 가지고 등가물이 되어 화폐역할을 하던 물품화폐, 최초의 금속화폐인 철전과 숙종대 주조된 동전, 칭량화폐로서의 銀, 銀이 제도권으로 편입되며 주조된 금속화폐인 銀甁, 그리고 元에서 유입된 지폐인 寶鈔가 복합적으로 유통되던 시기였다.
철전은 성종대에, 동전은 숙종대에 주전되었으나 모두 유통이 부진하였다. 고려시대는 금속화폐가 널리 유통되기에는 시장 규모도 작고 경제 구조에도 한계가 있었다. 더불어 철전과 동전 자체의 한계도 있었다. 실물 가치로는 교환 매개물이 되기에 신용도가 부족한 철과 동을 사용해 경제행위자들로 하여금 그 가치를 의심하여 사용하지 않게 만들었던 것이다.
또 하나의 실패원인은 銅의 수출이었다. 宋錢은 꾸준히 주조되어 동아시아의 단일화폐블럭을 형성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일본에서는 아예 中國錢으로 공식화폐를 삼을 정도로 신용도 좋았다. 또 중국의 입장에서는 많은 양의 동이 해외로 유출되어 銅價가 등귀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고려 왕실은 동전유통보다는 동의 수출로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유통을 추진하지 않았다고 추측된다.
여기에 경제력의 차이도 한 원인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당시 중국에서도 일반 농민의 소규모 거래에서는 동전보다는 물품이 쓰였다는 점을 보면 이럴 가능성은 매우 높다. 고려의 시장 경제 규모가 작고 지방의 시장이 크게 발달하지 못해 물품화폐가 주로 쓰이는 상황이어서 동전 유통을 통한 이익이 적었다면, 고려 조정에서는 동으로 화폐를 만들기 보다는 수출을 통한 이익에 매진했을 수 있다.
동전이 주조되고 유통이 시작될 때 또 다른 금속화폐인 은병도 공식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했다. 숙종 6년 6월에 처음 표인이 되고 유통된 은병은 고려 전시기 동안 유통된 유일한 공인 금속화폐였다. 은병은 은의 가치에 따라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유통되던 칭량화폐의 하나였다. 숙종은 이를 표인이라는 과정을 거쳐 공식발행했던 것이다. 비록 동전은 실패했지만 운반과 보관의 용이성 때문에라도 화폐는 필요했다. 또한 명목가치에서 오는 재정적 이익도 있었다.
은병과 은은 상당히 폭넓고 다양하게 유통되는 흔적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기존의 화폐관련 논의에서는 은병과 은을 부호층을 중심으로 한 대도시의 상층경제층에서만 한정적으로 유통된 것으로 여기고 있지만, 여러 사례를 살펴본 결과 지방과 일반민들 사이에서도 일정정도 규모 이상의 무역에서는 화폐로 쓰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宋人 徐兢의 견문록 高麗圖經의 시장관련 기사는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서긍은 시장에서 화폐를 쓰지 않고 布와 은병을 사용한다고 기록했다. 제3자인 외국인이 바라보는 이 시각은 당시 고려의 화폐유통을 가장 정확히 보여준다.
원간섭기인 고려 후기에는 元 寶鈔가 유입되었다. 元이 寶鈔를 발행한 배경에는 오르톡 상인을 통한 서역과의 銀 무역이 있었다. 이들은 서역지방의 銀價가 더 높은 점을 이용해서 寶鈔 유통으로 확보한 황제의 銀을 유출시켰으며 이 때문에 元 帝國안에서는 만성적인 銀 부족을 경험했다.
이런 이유로 많은 고려의 銀이 元으로 유출되었다. 이는 고려의 은병제도에 변화를 가져왔는데 바로 충혜왕의 소은병 제작이다. 표인된 이후 없었던 제도변화가 충혜왕대에 생겼다는 것은 외부적인 요인 즉, 元의 영향이 때문이었다.
寶鈔의 유입은 공민왕 초까지 꾸준히 이어지지만 반원정책이 실시된 이후에는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이는 元의 실권과 그에 따른 寶鈔의 가치하락에 기인한 것이다. 때문에 새로이 銀錢 주조가 논의되었다. 그 이후 새롭게 등장한 明이 고려에 대한 주도권을 차지하여 고려의 화폐정책도 明의 大明錢貫이 유입되는 등 영향을 받지만, 明과의 관계가 元과의 관계와는 차이가 있어서인지 고려는 독자적인 楮貨 주조 논의를 거치게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은병과 함께 물품화폐가 유통되었다. 철전과 동전의 유통이 시도되었지만 곧 실패하였고, 고려시대는 米와 布가 주된 물품화폐로서 철전과 동전의 대신 화폐역할을 수행했다. 물품화폐의 기능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물품화폐는 贖刑 제도나 세금 등 납부 수단으로서 기능을 하고 있었다. 또한 물품화폐는 노비의 몸값이나 노동력에 대한 지불 등의 수단, 차대의 주요 수단으로 이용되는 등 교환수단으로도 쓰였다. 이런 점은 국가의 지출로 이어지는 녹봉이 布로 절가되어 지불되는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물품화폐의 화폐적 기능과 성격은 물품화폐 중심의 물가 표현 방식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고려시대에 있었던 가장 일반적인 물가 표현 방식은 米와 布의 교환 비율이었다. 다만 은병의 표인 이후 은병이나 은이 적극적으로 유통되던 시기에는 銀이 중심이 되어 米와 布의 교환 비율을 설정하기도 했다. 이에 고려전기에는 米와 布의 교환비율로 물가 표현이 이루어졌고, 은병이 적극 유통되던 시기인 인종 이후에는 은병 혹은 은과 米 혹은 布의 교환비율로 물가가 표현되었다. 하지만 고려의 화폐체계가 무너진 고려 말엽, 즉 공민왕 5년 이후에는 물가가 다시 米와 布의 교환비율로 설정되었다. 이런 점은 고려시대의 화폐유통이 단순히 물품화폐만을 통해서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해준다.
고려는 물가 표현 기사로 봤을 때, 물품화폐 위주의 시기, 물품화폐와 칭량화폐, 그리고 은병이 공존하던 시기, 그리고 다시 물품화폐만으로 표현되던 시기가 있었다. 전시기를 통틀어서 볼 때 米·布 중심의 물품화폐와 금속화폐인 은병, 칭량화폐인 각종 은이 공존하며 화폐의 역할을 나누어 담당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원의 영향력 하에서 유입된 寶鈔도 있었다. 이들은 각각의 역할을 하며 시대나 제도적 변화에 따라 서로 보완적으로 유통되었다.
고려시대는 고대사회보다 국내상업과 국제무역이 발달해 금속화폐의 필요성을 처음 깨닫고 시도한 변화된 사회였다. 이전보다 많아진 무역과 교역으로 宋의 동전 유통을 체득하게 되고 이를 모방하려 시도했지만 규모나 여러 면에서 덜 발달한 고려의 시장상황으로 유통은 실패했다. 반면 국제교역과 도시에서의 상업이 발달하며 고액권으로서 칭량화폐인 은이 유통되었고, 숙종은 동전 주조와 함께 이미 시장에서 교환수단으로 기능을 하던 은병을 공인함으로써 은을 제도권에 포함시켰다. 은병은 고려말까지 고려의 유일한 법정화폐로 기능했지만, 한계도 분명히 있다. 숙종은 은병을 표인하며 동전과는 달리 은의 유통을 금지하지 않았다. 이에 칭량화폐인 은과 명목가치를 가진 은병이 같이 유통되는 상황이었다. 이는 고려 정부가 은병을 표인하고 유통한 목적이 약간의 재정적 이익을 얻는 것에 그쳤기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결국 시장에서는 미·포 중심의 물품화폐와 은병만이 화폐로 기능을 했지만, 원간섭기에 보초의 유입과 은의 유출로 인해 은병제도 마저 폐지되게 되었다. 이에 고려 말에는 저화의 주조 논의가 이어졌고, 조선 초 저화의 유통으로 이어졌다. 물품화폐 또한 인장을 찍은 포화가 유통되게 되어 물품화폐 또한 발달한 형태를 갖게 되었다. 물품화폐가 포화로 발전하고, 제도적 보완을 통해 저화의 유통을 시도한 것은 모두 고려시대 각종 화폐의 유통을 학습하고 발전시켰기에 가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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