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영남지역 노론계 서원 연구 = A Study of Noron-line Seowon in the Youngnam Region during the 18th Century
18세기 영남지역 노론계 서원 연구
본고는 조선후기 존재는 했으나 학계에서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영남 노론계 서원을 대상으로 삼았다.
먼저 조선후기 영남 노론의 분포와 형성과정에 대해서 정언 이수해가 언급한 제 가문들을 대상으로 그가 속한 선산부의 덕수이문을 중심으로 추적해 보았다. 이들은 단순히 신향세력이 아니었음은 물론 혼반・학맥 등을 통해 밀접한 상호관계를 형성하고 있었으며, 서원 건립도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영남 노론계 서원 건립추이를 개관적 차원에서 정리하였다. 영남 38개 군현에 총 63개소가 건립이 되었고, 대구부・상주목・경주부・성주목 대읍에 그 숫자가 많았다. 시기적으로는 18세기의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중 사액 원사는 6개소에 불과했고, 대원군 원사 훼철령 당시 2개소만 존치를 한다. 또 송시열 제향 원사가 14개소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이・주자, 김상헌・김창집・윤봉구 등의 순으로 제향처 건립이 이루어졌다.
2장에서는 영남 남인계 지역으로 이주한 노론[서인] 사족과 영남 내에서 노론으로 전향한 사족의 서원 건립과 활동을 살폈다.
상주목의 창녕성씨 청죽공파의 파조 성람은 서울 출신이자 화담・우율 문인임에도 상주 정착 뒤 서애문인・임란 의병활동・도남서원 운영 등에 참여하면서 향촌사회에 착근하였다. 후손들은 서인계라는 기본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전통적인 남인지역에서 그 기반을 확립하려는 노력들을 경주한다. 삼안 입록이 그 노력이었고, 기호학 계승과 노론계 정치활동 등은 가문의 정체성 유지를 위한 수단이었다.
이러한 성향은 향촌사회에서 이들 가문이 주도한 흥암・서산서원, 충의단 건립과 운영 활동에서 잘 드러났다. 특히 영남의 대표 노론가문으로 성장시킨 성만징을 비롯해 그 후손들에 의해 건립 운영된 영남 노론계 으뜸서원 흥암서원, 자파의 또 하나의 거점이었던 낙론계 서산서원의 이건과 사액 사업, 남인계 충렬사에 비견되는 충의단 건립은 제향자와 시기는 다르지만 그 의미는 동일한 것이다. 즉 중앙 노론의 후원 속에 창녕성씨와 동지의식을 가졌던 지역 노론계 세력의 연대의 결과물로서 향촌사회 및 영남사회에서 자신들의 위상을 강화시켜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성주목 노강서원은 1702년(숙종 28) 벽진이씨 가문의 이지완에 의해 건원 발의 후 대구 옥천전씨 가문과 노론계 목사의 협조를 얻어 1712년(숙종 38) 영당으로 건립된 다음, 1740년(영조 16) 승격 및 서원 기반 구축이 이루어졌다. 1766년(영조 42) 윤봉구가 강학규목을 작성하고, 이후 문인 등에 의해 노론 호론 핵심 인사들인 권상하・윤봉구・한원진・송환기를 차례로 추향하였다.
원임안 분석을 통해 드러난 인적구성과 운영은 노론계 서원의 원임 구성 특징인 원장 – 장의 – 유사 체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원장 구성은 경원장과 원장 또는 향원장 체제를 유지했다. 1729년(영조 5)부터 도입된 경원장제는 영조연간 집중 운영되었다. 원임 구성의 또 다른 특징인 일・이유사 체제는 서원에서 보다 체계적이고 장기적으로 지방관을 원장 또는 일유사에 위촉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다. 노론계 서원의 특징인 지방관과의 연계성을 본 서원이 잘 보여주는 요소이다.
방문자의 거주지는 영남이 40개 지역으로 절반이 넘는 60%를 차지했는데 주로 우도 거주자들로 조선후기 노론계 인물들은 우도에 많았음을 알 수가 있었다.
1728년 무신난의 여파로 영남은 외부적으로는 반역향에 낙인 찍혀 중앙 환로(宦路) 진출의 어려움이 더욱 가시화 되고, 내부적으로는 집권 노론에 의한 지속적인 감시와 통제 나아가 노론화가 더욱 가속화 된 시기였다. 이는 영남좌도 보다 진원지 우도가 더욱 두드러졌다. 노론이 영남을 향촌 단위에서 붕괴시키는 방법의 하나로 서원 건립을 선택했고, 이 같은 정책의 모범적 사례가 바로 거창현 포충사였다. 무신난 때 순절한 좌수 이술원은 향촌사회와 집권세력에 의해 조명을 받는다.
이러한 이술원의 각종 현창 사업은 조야의 대대적인 지원 속에서 진행이 된다. 예장을 시작으로 1735년(영조 11) 마침내 서원 건립이 발의된다. 감사 유척기가 조정에 보고하고 노・소론 공동이 특별히 허가를 요청하자 영조는 건립을 재가한다. 이어 1738년(영조 14) 연명소(聯名疏)가 진달되자 이술원의 순절일에 직접 포충사라는 액호를 하사하고, 관의 지원으로 사당이 완공되기에 이른다. 이후 이술원의 현양 관련 문자 필진은 모두 노론계 관료학자들 손으로 작성이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포충사는 영남우도에서 남계서원과 함께 노론계 대표하는 원사로 역할을 했다. 이는 심원록에 입록 된 지방관, 중앙관료, 영남 노론계 인물, 송병선 주관 향음주례 참석자 등을 통해 그 실체를 확인 할 수 있다. 또한 한말까지 노론계와의 연관성은 일제 강점기에 작성된 원록에서도 찾아졌다.
3장에서는 영남우도를 중심으로 노론계 서원의 확산 주체와 경주부 장산서원과 영양현 운곡영당을 통해 그 갈등을 탐색해 보았다
노론계 영남문인에 의해 건립된 거제도 반곡서원은 영남 최초로 송시열을 제향자로 창건된 상징성이 큰 서원이다. 영남의 대표적 송시열 문인 가문인 대구 옥천전문이 주도하고, 지역 인사들의 동조와 관(官)의 후원 속에 이루어졌다. 이 서원은 영남 노론계 서원 확산의 계기가 된 동시에 창건 방식에 좋은 모범이 되어주었다. 또한 철종연간 안동김문의 정치적인 의도에 따라 사액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또 다른 노론계 영남문인이 건립한 삼가현 옥계서원은 윤봉구의 문인 최남두가 스승을 위해 세운 영당을 발전시킨 서원으로 그 건물과 운영에는 스승을 존모하는 정신과 철학이 반영되었다. 무엇보다 윤봉구의 영정을 이모(移摹)해오는 여정에서는 그 실상과 영남우도의 노론계 범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서원은 영남에서 드문 기호지역 노론계 학자와 영남 문인이 함께 제향 된 서원이기에 주목이 되었다.
다음은 문중서원에서 노론화 된 서원인 단성현 신안영당은 지역 노론계 두 개 가문이 연대해 주자와 송시열을 제향 한 문중 사우이다. 본 영당은 비교적 자료가 풍부해 노론계 서원의 직제・강규・경제적 기반・방문자 등 자세한 일면을 파악할 수 있어 관심을 살피기에 충분했다. 또 다른 노론화 문중서원인 수승대에 위치한 구연서원은 지역 출신인사들 모신 향현사 성격에서 출발한 서원이었다. 그러나 노론 낙론을 계승한 후손이 서원 운영을 관장하면서 노론계 문중서원으로 경도 된 경우였다. 이를 구심점 삼아 노론계 인사와 교류, 성천서원 이건 및 송준길 우거지 복원 등의 노론계 활동과 문중 현양사업을 병행해 나갔다.
장산서원의 제향자 경주 여주이씨 옥산파의 파조는 회재 이언적의 서자 이전인이며, 그의 후손들은 영남을 대표했던 서파 가문이다. 옥산파는 옥산별업을 기반으로 다양한 이언적의 현양사업과 옥산서원 창건에 큰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1665년(현종 6) 이전인이 회재의 학통을 계승했음을 시사하는 관서문답록을 간행하면서 적서 간 시비의 발단이 될 뿐 아니라 덕천・도산서원과의 갈등이 이어지면서 가문의 생존 차원에서 그들과 반대편에 있던 노론과 연대하게 된다.
옥산파는 이전인 문집 발간 이후 여러 곡절을 겪으면서도 비록 실패는 하지만 이전인의 정려 청원·서당 건립·경현서원 추향 등을 기획 시도한 바 있고, 1780년(정조 3)에 마침내 숙원 사업인 장산사 건립에 성공한다. 장산사 건립은 옥산파가 주도한 가운데 혼반 관계에 있던 의흥현의 사족 함양박씨의 도움이 컸다. 또한 미 사액 문중 서원임에도 이례적으로 관청의 지원이 이어졌을 만큼 여타의 서파 가문과는 그 위상이 남달랐다.
1797년(정조 21)에는 도내 범 노론계의 도움으로 장산서원으로 승원하면서 향사는 노론의 총 본산인 화양서원의 법식을 따랐고, 원임 직제는 안동 서간사의 사규(祠規)를 준용하였다. 그래서 원임 구성도 기존 옥산파 위주의 산장 1인 – 유사 1인 체제에서 도내 명망가를 선임한 도원장 1인과 – 유사 2인으로 전환하게 된다. 당시 도원장은 영남을 대표하는 노론계 가문 출신으로 선임이 되었다.
다음은 17세기 후반 복현 된 영양현에서 발생한 신구향 즉 남노간의 향전을 신향측의 기록인 운곡영당장고를 통해서 치폐과정을 재구성 해본 결과 다음과 같은 특징을 발견 하였다. 첫째 서원 신설 금령을 피하는 영당의 형식을 취하면서 반대 세력에게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주는 주자와 송시열을 제향인물로 선정하고 있다. 둘째 향중 공론이 아닌 성균관과 예조, 재경 고위관료 등 외부의 힘을 이용해 건립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하였다. 셋째 영남 감사의 당색과 의지가 훼철과 중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넷째 본 사건 결과 향촌 내 기존 사족 지배체제가 더욱 공고해졌다. 다섯 번째 조선후기 영남 특히 좌도에서 노론계 서원 건립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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