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향교 연구 = A Study on the Hyanggyo in the Early Chosun Dynasty
저자
발행사항
부천 :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2021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박사) --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 국사학과 전공 , 2021.2
발행연도
2021
작성언어
한국어
주제어
DDC
951.905 판사항(21)
발행국(도시)
경기도
형태사항
ii, 197 p. : 삽화 ; 26cm.
일반주기명
가톨릭대학교(성심)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지도교수: 허태구
참고문헌 포함
UCI식별코드
I804:41027-200000364241
소장기관
This thesis is a study on the operation of Hyanggyo(鄕校) in the 15th century. Specifically, the establishment of Hyanggyo in Hyangchon(鄕村) society, maintenance of the Instructor's office system, improvement measures for Hyanggyo, and the trends of the inhabitants in Hyanggyo were examined. Hyanggyo was established according to the state's will, but the establishment of Hyanggyo had to be relied on by the resources of the Hyangchon society. For this reason, the time and scale of establishment of Hyanggyo were not uniform, and each Hyangchon was different.
Hyanggyo, built after the founding of the Joseon Dynasty, was markedly separated from the domain of Shrine(廟) and the domain of Lecture(學). The center of Shrine(廟) was the Daeseongjeon(大成殿), and the center of the Lecture(學) was the Dongjae(東齋) and the Seojae(西齋). The center of the Lecture(學) was Jae(齋) because it was a space where practical lectures took place. Thought on the architecture of Hyanggyo was established during the reign of Seongjong(成宗), it was adapted to the situation of Hyangchon. Therefore, the shape of each Hyanggyo was different.
In addition to the establishment of Hyanggyo, the instructor system was also improved. Sejong(世宗) decided to send Gyodo(敎導), regular officials, to villages with more than 500 households(戶). This was virtually like sending an instructor to Hyanggyo across the country. With the expansion of the Gyodo(敎導), there was a tendency to get unemployed through the Gyodo(敎導). And soon after being appointed to the Gyodo(敎導) or taking office, it led to the phenomenon of quitting work soon. However, the selection through the expansion of Gyodo(敎導) and coverage conducted by the Sejong(世宗) was a rational measure chosen in the situation where civil serva(文臣) could not be sent to all counties. The Hundo(訓導) and Hundo(訓導) exams of Gyeongguk Daejeon(經國大典) were carried out in the extension of this keynote.
In accordance with the establishment of Hyanggyo, support for coordination was also provided for its operation. During the reign of Sejong, the cost of the Seokjeonje(釋奠祭) was covered by the government office, and the instructor was forced to receive an Gwajeon(科田). Hyanggyo Wijeon(位田) was used only for operating expenses for Hyanggyo, such as school meals.
As for the books, the country prepared and sent down good books(善本). Students' military transfer, which was implemented during the reign of Sejo(世祖), was suspended during the reign of Seongjong(成宗). Since it was not forbidden by law, military service could be imposed on students. In addition, students were subject to recruitment by Segongsaengdo(歲貢生徒). Being a Seoli(書吏) led to a decline in status. This became a factor that caused the local forces to move away from Hyanggyo. However, despite these problems, the state continued to show interest in Hyanggyo.
Hyanggyo edified the Hyangchon society through pursuit of study(講學) and rites. pursuit of study(講學) was the most direct means of edification through learning. The change of students through lectures changed the members of the village society, which meant the edification of the village society. Hyanggyo's rituals are typical of Seokjeonje(釋奠祭). The Joseon Dynasty enshrined only Mokju(木主) in the Daeseongjeon. Unlike traditional Hyangchon rites, the number of participants was limited. Therefore, it was difficult to edify the whole people as a ritual. In Hyangchon, the Seokjeonje(釋奠祭) and the traditional Hyangchon ritual were held together.
From the above review, this study can have the following significance. First, it traced the way the Hyanggyo of Joseon was being made. I think it is meaningful to examine the separation of the fields of Shrine(廟) and Lecture(學) through actual architectural style changes. It could be helpful in tracking the background in which the authority of Shrine(廟) and Lecture(學) could be raised in Joseon society. Second, it looked at the operation of the instructor system in the 15th century in a contemporary context. Through the difference between the appointment of instructors through test(取才) and the operation of instructors from Examinations(科擧) was possible to understand the aspects of instructor operation in the 15th century. Third, by examining not only the problems revealed in the operation of Hyanggyo, but also improvement measures, it was confirmed that the state had the will to solve the Hyanggyo problem.
본 논문은 15세기 향교 운영 양상, 구체적으로 조정의 향교 설치에 짝하는 향촌 사회의 향교 설립, 조정의 교관직제 정비 양상, 향교 운영에 따른 조정의 개선책, 향교에서의 교화에 대응하는 재지 세력의 동향 등을 살펴보았다.
조정의 의사에 따라 향교는 설치되었지만, 실질적인 향교 설립은 향촌 사회의 재원에 의해 의지해야 했다. 이로 인해 향교 설립 시기와 규모 등은 일률적이지 못하고 군현마다 다르게 되었다. 조선 건국 이후 지어진 향교는 廟의 영역과 學의 영역이 확연하게 분리되었다. 廟의 중심은 大成殿, 學의 중심은 동ㆍ서재였다. 학의 중심이 齋였던 것은 실질적인 강학이 이뤄지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향교 건축에 대한 典範은 성종 대에 갖춰졌지만, 일괄적으로 강제하지 않고 향촌의 상황에 따라 적용시켰다. 그렇기 때문에 향교마다 그 형태는 다르게 나타났다.
향교 설치와 더불어 교관직제 또한 정비되었다. 세종은 500戶 이상인 고을에 정규 관원인 교도를 파견하기로 했다. 이는 사실상 전국의 향교에 교관을 파견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교도직 확대에 따라 교도직을 통해 실직을 얻으려는 경향이 나타났고, 이는 곧 교도직에 임명되거나 혹은 근무지에 부임한 이후 곧 일을 그만두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세종 대의 교도 확대 및 취재를 통한 선발은 문신을 모든 군현에 보낼 수 없는 상황에서 택한 합리적인 방안이었다. 경국대전의 훈도와 훈도 취재는 이러한 기조의 연장선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향교 설치에 따라 그 운영을 위한 조정의 지원 또한 마련되었다. 세종 대에 석전제 등 향교에서의 제수 비용은 관에서 마련하도록 했고, 교관에게는 과전을 지급했다. 향교 위전은 교생 공억 등 향교 운영 비용으로만 사용되었다. 서적은 조정에서 善本을 마련하여 내려 보내줬다. 조정에서는 선본을 마련하기 위해 전국을 대상으로 선본을 찾아 매매하거나 명으로부터 수입하여 각 향교에 내려주었다. 세조 대 취해졌던 액외 유생의 군적 편입은 성종 대에 유예되었지만, 항식으로 마련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액외 유생에 대한 군역 부과가 재기될 가능성은 열려있었다. 또, 校生은 세공생도의 충원 대상이었다. 서리가 되면 신분이 떨어질 수 있었기 때문에, 세공생도 차출은 재지 세력들이 향교에서 멀어지는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學田을 지급하여 향교의 운영을 좀 더 원활하게 하는 등 향교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표했다.
향교는 강학과 제의를 통해 향촌 사회를 교화해 나갔다. 講學은 학문을 통한 가장 직접적인 교화 수단이었다. 향교에서의 강학은 교관이 매 교생을 직접 가르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강학의 범위는 과거 시험의 대상이 되는 서책이었지만, 주요 대상은 소학과 四書였다. 강학을 통한 교생의 변화는 향촌 사회의 구성원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이는 곧 향촌 사회의 교화를 의미했다. 향교에서의 제의는 석전제로 대표된다. 조선은 대성전에 木主만을 안치했다. 석전제는 전통적인 향촌 제의와 달리 참여 인원이 제한적이었다. 따라서 제의로서 백성 전체를 교화시키는 것은 어려웠다. 현실에서는 석전제와 더불어 전통적인 향촌 제의 또한 행해지고 있었다.
이상의 검토를 본고는 다음과 같은 의의를 가질 수 있다. 첫째, 조선의 향교가 만들어져 가는 양상을 추적했다는 것이다. 廟ㆍ學 영역의 분리를 실제 건축 양식 변화를 통해 살펴보았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 사회에서 廟ㆍ學의 권위가 제고될 수 있었던 배경을 추적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15세기 교관직제 운영 양상을 당대적 맥락에서 살펴보았다는 것이다. 취재를 통한 교관 운영과 文臣 출신 교관 운영의 차이를 통해 15세기의 교관 운영 양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 셋째, 향교 운영 상 드러나는 문제 뿐 아니라 개선책도 함께 살펴봄으로써, 조정이 향교 문제에 대한 해결 의지를 갖고 있었음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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