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대 明-스페인 교섭 연구 : 명 지방당국과 루손 마닐라政廳 교섭 과정을 중심으로
저자
발행사항
서울 : 연세대학교 대학원, 2021
학위논문사항
발행연도
2021
작성언어
한국어
주제어
발행국(도시)
서울
기타서명
The relationship between Ming China and Spain : on negotiations between Ming local authorities and Spanish government in Luzon
형태사항
ix, 192 p. : 삽화 ; 26 cm
일반주기명
지도교수: 차혜원
UCI식별코드
I804:11046-000000539322
소장기관
본고는 1575년부터 1605년에 이르기까지 명조 지방당국과 필리핀 루손(Luzón)섬 마닐라(Manila)의 스페인정청 사이에서 발생한 교섭에 대하여 다루었다. 1571년 스페인은 루손섬 마닐라에 정청을 수립하였고 이후 명과 수 차례 외교 교섭을 진행하였다. 교섭에서 스페인인들은 ‘우호(amistad)’ 결성이라는 명목으로 정주 항구 할양과 통상 허가를 요청하였다. 그때마다 명측은 이러한 요청에 대하여 ‘呂宋의 通貢 교섭’으로 이해하였고, 요청을 거절하였다. 기존 연구들에서는 ‘祖法’으로 내려오는 朝貢에 관한 원칙에 따라 명측은 유럽인들의 通貢 요청을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고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한문 사료와 스페인어 사료를 교차검증하여 명과 마닐라 양측의 입장을 조명하려 한다. 이를 통해 본고는 명이‘呂宋의 通貢 요청’을 거절한 이유를 살펴보고, 명과 스페인은 서로 어떠한 방식으로 관계를 규정하고 결성하려 하였는지에 대해 규명하고자 한다.
1575년 마르틴 데 라다(Maritín de Rada) 신부가 지휘하는 사절단이 福州에서 수행한 교섭에서, 喬懋敬은 ‘우호(amistad)’ 결성을 위해 스페인국왕의 서신을 요구하였다. 喬懋敬은 ‘呂宋’이 아닌 ‘佛郞機國王’의 ‘表文’을 황제에게 올려‘通貢’을 성사시킬 수 있다고 제안한 것이었다. 1580년 스페인국왕 펠리페2세(Felipe II)는 실제로 萬曆帝에게 서신과 선물을 보내려고 하였으나 중단하였다. 1582년 마닐라정청은 알론소 산체스를 廣東에 파견하여 ‘우호’ 결성을 요청하였다. 廣東당국은 사절단의 요청을‘呂宋 通貢’ 요청으로 인식하였고, 스페인국왕의 表文을 가져와서 의례를 수행한 前例가 없다는 이유로 요청을 거절하였다.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스페인인들을 ‘고양이눈(ojos de gato)’이라는 뜻의 ‘猫兒眼’이라고 칭하며 경계하였다.
1592년 朝鮮에서 전쟁이 발발한 가운데, 1593년 필리핀총독 고메스 페레스 다스마리냐스가 원정 도중 중국인 선원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1594년 福建巡撫 許孚遠은 무관과 상인으로 구성된 7명의 사절단을 마닐라에 파견하였다.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유랑 중국인들의 송환과 일본 첩보 수집이 목적이었지만, 스페인인과 일본인 간의 결탁이 있었는지를 조사하는 한편 군사 지원 제공을 제안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다. 총독 루이스 페레스 다스마리냐스는 군사 지원 제공 제안을 거절하였으나, 우호적인 관계와 교역을 지속하겠다는 것에 동의하였다. 또한 중국인들을 송환하는데 사용하고자 7명이 마닐라로 끌고 온 상선 52척에는 화물을 싣고 있었다. 이는 전쟁 후 海禁으로 중단된 무역이 재개되면서, 福建당국이 대량으로 상선을 파견하여 교역을 수행하고 이로부터 징세를 하여 군비를 충당하려 한 것이었다.
1598년 총독 프란시스코 테요는 후안 데 사무디오 등을 廣東당국에 파견하여 엘피냘(el Piñal) 항구 교섭을 진행하였다. 자료 검토 결과, 엘피냘은 마카오 서쪽 虎跳門 일대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테요는 전쟁 기간 동안 대중국 무역으로부터 발생한 무역적자를 만회하기 위하여, 중국 상인들의 활동을 통제하고 중국 현지에서 직접 거래를 진행하며 나아가 정주항을 할양받아 영구적인 현지 교역을 추진하려 하였다. 사무디오는 명 황제에게 정기적으로 入貢하고 필요시 명으로부터 군사 지원을 받는‘暹羅의 사례’를 廣東당국에 제시하였다. 廣東당국은 이를 ‘呂宋 通貢 요청’으로 인식하고 요청을 거절하였지만 상거래는 허락하였다. 1575년에도 라다 일행은‘暹羅의 사례’를 福建당국에게 제시한 바가 있었다. 스페인국왕의 表文과 方物이 사절단을 통해 황제에게 전달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스페인인들에게 暹羅와 같은 정기 入貢을 불허하겠다는 것이 廣東당국의 입장이었다. 한편 루이스 다스마리냐스는 캄보디아 원정대를 이끌고 항해하다가 엘피냘 항구에 불시착하면서 교섭에 간여하게 되었다. 廣東稅監 李鳳은 루이스 다스마리냐스에게 엘피냘 항구 할양을 조건으로 금액 지불을 강요하였지만, 루이스 다스마리냐스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李鳳의 교섭 시도는 유럽인들이 중국 현지 교역을 수행하는데 있어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2년 뒤 네덜란드인들도 廣州에서‘通貢’ 교섭에 실패하고 李鳳과 접촉한 사례가 있었다.
1603년 상인 張嶷 등의 제안으로 명측은‘機易山’이라고 표기된 루손섬 카비테(Cavite)에 조사단이 파견된 사건을 다뤘다. 스페인어 사료를 통해 海澄縣丞 王時和와 百戶 干一成 외에도 福建稅監 高寀의 參隨(criado) ‘Au參將’이 총지휘관으로 조사단에 파견된 사실이 확인되었다. 조사단은 마닐라에서 스페인으로 귀화한 중국인들을 체포하고 심문하며, 고문과 협박을 가하였다. 총독 페드로 데 아쿠냐는 이를 중지시키고 체류 중국인들에게 이들과의 접촉을 금지하였다. 스페인인들 사이에서는 명이 체류 중국인들과 내통하고 마닐라로 침공할 것이라는 소문이 확산, 후에 1603년 중국인 대학살 사건의 한 단초가 되었다.
1604년 高寀는 중국상인들에게 유혹되어 澎湖를 점거한 네덜란드인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이들의 교역 행위를 비호해 주었다. 高寀의 행동은 福建 지역 사회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1604년 福建巡按御史 方元彦과 福建巡撫 徐學聚가 부임하면서 高寀가 저지른 일들에 대하여 수습하기 시작하였다. 두 명은 大學士 趙志皐와 학연과 지연으로 이어져 있었으며, 趙志皐와 함께 稅監들의 비리를 적발하였다. 沈有容을 파견하여 네덜란드인들을 澎湖에서 철수시켰고, 1605년 한문과 스페인어로 된 서신을 작성하여 마닐라정청을 회유하고자 하였다. 이들은 朝鮮의 사례를 제시하며 한문으로는 ‘投款孝順’로 표현된 ‘우호(amistad)’ 결성을 아쿠냐에게 제안하였다. 또한 이들은 네덜란드인 출현에 대한 공동 대처도 요청하였다. 임진전쟁 이후 日本이 琉球를 서서히 점령해 나가면서 명은 朝貢國 琉球는 물론 인근 呂宋까지 일본에 넘어갈 것을 우려하였기에, 처음으로 명측이 먼저 마닐라당국에 우호를 제안한 사례였다. 아쿠냐는 국왕의 表文과 의례가 필요한 명측의 ‘投款’ 제안을 거절하였지만,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려 했던 네덜란드인들의 침공을 대비하기 위하여 명에게 군사 협력을 약속하였다.
스페인인들이 ‘우호’를 요청할 때마다 명은‘呂宋 通貢 요청’을 거절하는 것이 반복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명측 관원들은 呂宋에게 朝貢 의례, 군사 협조, 상거래 유지를 통한 ‘우호’, 즉 朝貢 관계를 요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의 요구는 ‘呂宋’의 본국인 ‘佛郞機’즉 스페인 본국에 대한 것이었다. 마닐라당국은 명조의 제안을 거부하였고, 대신에 정주항 할양 및 교역 허가를 ‘우호’의 표상으로 제시한 사실도 드러난다.
명조는 ‘佛郞機國王’의 表文과 方物, 사절단 파견 등이 있을 경우 ‘佛郞機國의 入貢’ 혹은 스페인의 朝貢이 가능하다고 제안하였으며, 스페인측은 이를 거절하고 ‘呂宋國王’ 명의로 교섭에 방식을 고수하였다고 정의할 수 있다. 이는 명이 유럽 국가들과의 관계 결성에 있어 朝貢의 틀 대신에 공식 외교 의례와 절차가 수반되지 않는 ‘互市’ 형태의 교섭을 선호하였다는 기존의 견해와는 다름을 알 수 있다. 명은 은의 공급처이자 필요한 경우 군사 동맹이 가능하였던 마닐라의 스페인인들과의 관계를 놓으려 하지 않았다. 마닐라의 스페인인들 역시 중국으로부터 공급되는 화물을 포기할 수 없었으며, 일본과 네덜란드의 세력이 해상에서 강해지면서 명과의 군사 협력이 필요하였다. 그러나 朝貢이라는 질서를 준수할지 여부를 둘러싸고 양측은 합의를 이루지 못하였다. 명측 입장에서 呂宋國 혹은 佛郞機國은 일종의 ‘유예된 朝貢國’이었던 것이다.
This dissertation examines how Luzon Spanish Government, known as ‘呂宋’ in
Chinese literatures, had establish a relationship with Ming dynasty between
1575 and 1605. In 1571, Spain established a government in Manila, Luzon, one of
the islands belonging to the Philippine archipelago. Spanish Luzon began to
take negotiations with Ming China. Luzon persuaded Chinese officers that Ming
achieve ‘amistad’ with it, which implicated that Ming would allow Spanish to
settle in some ports at the coast of China, along with commiting free trade
with China and missionary work authorized by Ming government. Ming denied its
offer in terms of the traditional principal of the tribute system, only to
maintain its trade with Luzon. But it should be reexamined that Ming denied
Spanish’s strategy to approach Ming China in terms of the pricipal of the
tribute system, because Ming had not always been stubborn to take the
‘newcoming countries’proposals for presenting regular tributes to China. It
indicates that we should review Spanish attempts to negociate with Ming in
terms of the tribute.
In 1575, Luzon dispatched a delegation to Fuzhou(福州), the capital of the
province of Fujian(福建), which was led by Maritín de Rada, a Dominican father.
Qiao Maojing(喬懋敬), a Chinese officer who committed a mission to receive the
delegation, suggested to him that ‘amistad’would be achieved effectively if
King of Spain wrote letters to the Emperor of Ming. Accordingly, The court of
Spain prepared to send to Beijing letters of the King of Spain, Felipe II,
though it soon abandoned its attempt. And then Luzon sent to China Alonso
Sanchez, the Dominican father. He presented the offer to make ‘amistad’ with
China, but Canton(廣東) authority didn’t take it into account, in the basis of
the traditional principal of the tribute system. Meanwhile, coastal Chinese
labeled Spanish was labelled as the potential intruder, naming as‘ojos de
gato’, deriving from their notable appearances with big round eyes like cats.
In 1593, Gómez Pérez Dasmariñas, the general-governor of the Philippine
Islands, had killed by his Chinese crews, Xu Fuyuan(許孚遠), the governor of
Fujian province, dispatched a delegation to Luzon to investigate sequences
related to the general-governor’s death. The members of the delegation had the
main intent to collect information about Japan, which was waging war against
Korea since 1592. But in fact, they were more concerned about the confidential
alliance between Spain and Japan, and to offer to Luzon the military aid
against Japan. Luis Pérez Dasmariñas, the son of the late governor, denied the
offer but he showed his will to maintain the friendship with China. Besides,
the delegation took 52 vessels with it, and they acomplished the trade with
Spanish.
In 1598, Francisco Tello, the general-governor, sent to Canton a delegation
led by Juan de Zamudio. Zamudio had the mission to achieve settlement in El
Piñal, a port near Hutiaomen(虎跳門) at the Canton coast. Canton authority
determined not to take his offer, because of its unqualified offer to make
‘amistad’ with China as equivalent to Siam, one of the most known vassal
states of Ming to pay a regular tribute. Luis Pérez Dasmariñas, who once was
the general-governor, led his soldier to conquer Cambodia, but in the middle of
his voyage he was forced to enter El Piñal after encountering a typhoon. During
the stay, he was forced by Li Feng(李鳳), a Chinese eunuch, to establish
settlement in El Piñal, but he succeded to depart from there without any
response. But after 2 years, Li presented another offer to the Dutch merchants
at the same context of failed proposal for tribute.
In 1603, Ming dispatched three ambassadors to investigate allged burial sites
of gold and silver in Cavite(機易山). One of them was Au Chamchiam(Au參將), the
commander of Fujian province, whose appearance was only described in Spanish
documents, not in Chinese literature. He was a servant or ‘criado’ of Gao
Chai(高寀) who was a greedy eunuch of Fujian province, his mission to impose
taxes on the merchandises and vessels involved in trade with foreign countries.
Au ordered to arrest and torture christian Chinese who had pledged in their own
will to be people of the King of Spain. Furthermore, Zhang Yi(張嶷), a
deceptive merchant who claimed the alleged burial sites of gold and silver,
bluffed Spanish into believing the invasion of Ming. Pedro de Acuña, the
general-governor, stopped Au to exert unqualified jurisdiction in Luzon. From
then, Spanish in Manila began to suspect an invasion of Ming, which could be a
cause of Chinese massacre in 1603.
In 1604, Chinese merchants in Patani induced Dutch merchants to settle in
Penghu(澎湖) island, located between Fujian and Taiwan(臺灣). They bribed Gao
with a large mount of silver, and Gao allowed Dutch to engage in trade with
China in Penghu. In could interfere with Fujian-Luzon trade, and Chinese
merchants in Fujian began to express concern about Dutch settlement in Penghu.
Fang Yanyuan(方元彦), the visiting inspector(巡按御史) of Fujian province, and
Xu Xueju(徐學聚), the governor of Fujian province, tried to recover relation
with Luzon, because there was Japan’s threat to the ocean. Luzon also agreed
to them, because of Dutch, traitors of Spain.
In short, Ming suggested Luzon to send King’s letters to Beijing, for the
purpose of establishing the tribute relation between Ming and Spain, but Spain
had never responded to it, and Luzon tried to make relationship with Ming
independent of the n court of Sp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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