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울산음악사 연구 = A Study on the History of in Modern and Contemporary Ulsan Music
저자
발행사항
부산 : 부산대학교 대학원, 2021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박사) -- 부산대학교 대학원 , 예술·문화와영상매체협동과정 , 2021. 8
발행연도
2021
작성언어
한국어
주제어
DDC
780.9519 판사항(23)
발행국(도시)
부산
형태사항
xiv, 279 p. : 삽화, 악보 ; 30 cm
일반주기명
지도교수: 이순욱
참고문헌: p. 268-274
UCI식별코드
I804:21016-000000151944
DOI식별코드
소장기관
본 논문은 근대계몽기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울산지역 음악문화의 형성과 전개과정에 관한 연구다. 울산의 사회적, 문화적 변동에 따른 음악사회의 변화에 주안점을 두고 울산지역에 서양음악이 어떤 과정을 통하여 유입·전파되었으며, 오늘날까지 어떻게 발전되어왔는지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울산의 지역학 연구 자료, 원로 음악가와 울산 예술가들의 구술기록, 음악 및 예술 관련 단체의 저작물 및 팸플릿 등 활동자료, 경상남도와 인근 지역의 사료, 교육 관련 사료, 울산의 문화예술 기관과 단체의 자료집, 학교발간 자료, 종교 및 사회운동 사료를 두루 살펴보았으며, 『동아일보』, 『조선일보』, 『부산일보』, 『국제신보』, 『대구매일신문』 등 여러 신문매체의 기사와 광고를 폭넓게 검토하였다.
서양음악의 울산지역 유입은 미국 선교사들이 기독교 전파 목적으로 보급한 찬송가로부터 비롯되었다. 찬송가가 학교 음악교육뿐만 아니라 사회음악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찬송가는 순수한 종교적 목적뿐만 아니라 음악교재로도 활용되고, 세속적인 생활 내용을 도입하여 창가로 발전하였으며, 한국인의 생활 표현을 찬송가라는 새로운 도구로 노래했다. 애국가, 계몽가, 독립군가 등을 포함하는 폭넓은 창가들은 찬송가의 선율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 울산에도 베어드, 안의와, 손안로, 왕길지, 맥켄지, 예원배 등 선교사들의 전도 여행이 이루어졌고 1895년 병영교회를 시작으로 교회들이 생겨났다. 각 교회에서는 예배 중에 찬송가를 불렀으며 전도단을 겸한 찬양단을 조직하기도 하였다. 한국의 1세대 가수인 고복수도 선교사에게서 음악을 배웠으며, 울산기독교 청년회가 발족하고 강연회 겸 음악대회를 열었다. 이처럼 기독교의 찬송가와 창가는 울산에서 서양음악이 대중화되는데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학교 음악교육을 통해서도 서양음악 활동이 이루어졌다. 근대의 울산교육은 사립학교로 개진학교, 영명학교, 일신학교, 개운학교, 보성학교가 세워지면서 시작되었다. 1919년 3·1운동 이후 등장한 소년회와 청년회는 여러 학교의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중심이 되었다. 학교나 야학교에서 열리는 운동회와 학예회, 음악회, 소인극, 강연회 등의 행사는 통합의 장이 됐다. 서양음악이 유입되고 3·1운동과 함께 민족 문화를 부흥시키려는 운동이 일어나면서 어린이문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어린이, 별나라, 신소년 등 어린이 잡지나 언론매체의 독자투고란을 통한 동요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울산에서도 정인섭, 서덕출, 오영수, 신고송 등의 어린이문학과 동요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특히 정인섭의 <산들바람>이나 <물방아>는 지금도 많이 불리어지고 있으며, 서덕출의 <봄편지>, <눈꽃송이>는 교과서에 실려 널리 사랑받은 노래이다. 오영수는 <박꽃 아가씨>가 있으며, 신고송은 <귀ㅅ속임>, <가을날의 시>, <가을날의 저녁>, <우리는 대장쟁이>, <우리들>, <아침>, <고초장> 등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울산 출생이지만 지역에 머물지 않고 어린이 잡지와 언론매체를 통한 동요보급에 앞장서는 등 전국적인 어린이 문화운동에 참여하였다. 당시 창작동요 1세대의 어린이문학은 동요의 창작과 보급이 확산되었으며, 동심주의와 계급주의, 민족주의적 계몽의 어린이문화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울산의 정인섭, 서덕출, 오영수는 주관적 동심주의를, 신고송은 계급주의를 표방한 사회적 현실주의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1930년대에 음반이 보급되면서 우리의 애환이 담긴 대중가요 또한 불리게 되었다. 특히 고복수의 <타향살이>는 전 국민에게 사랑받았다.
식민지시대 울산지역의 문화공간은 극장공간과 준극장공간이 있다. 극장공간은 대정관, 상반관, 울산극장이고, 준극장 공간은 회관이나 여관, 학교, 야학관 등이다. 극장공간에서는 일본의 공연작품이나 타지의 순회공연 등 큰 규모의 행사들이 많이 이루어졌으며, 준극장공간에서는 울산지역의 크고 작은 단체들의 자체적인 공연 활동들이 많이 이루어졌다. 특히 울산의 극장은 일본인을 위한 전용극장이거나 한국인을 위한 전용극장이 아니라 한국인이나 일본인들이 함께 관람하였다. 하지만 일본인이 우선하고 남는 자리에 한국인이 들어 갈 수 있었으며 극장을 이용하는 부류 중에 권번 예기들이 많았다. 이러한 공간들은 특정한 목적의 행사가 기획되었으며 그것을 향유하기 위한 많은 관중이 운집하는 공간이라는 측면에서 공적공간으로의 역할을 하였다. 이들 극장에서 개최된 공연의 내용을 통해 당시 울산지역 극장의 사회적 역할과 의미를 밝힐 수 있었다.
극장은 영화 상영과 함께 공연이 이루어지는 공간, 예술가와 관객이 만나는 공간으로서의 복합적인 문화공간이었다. 나아가 무대 공간의 의미를 넘어 식민지 근대화의 경험, 근대 도시의 형성, 새로운 대중문화 주체의 출현 등 다양한 이슈들이 생성되고 향유 하며 소비되는 특수한 경험 양식이었다. 울산의 극장들도 지역극장의 건립 목적에 맞게 외래문화 수용과 여가활동 및 유희로서의 관람 행위를 갖는 콘텐츠의 상연과 관람 기능을 수행하였으며, 지역예술가들의 예술적 기량을 펼칠 수 있는 장으로서 기능을 하였다. 그리고 정치집회나 모임, 강연 활동, 각종 대회 등 사회적, 지역적 활동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다. 정치집회는 연주회와 겸하였고, 계몽활동은 영화 상영과 겸하였으며, 음악연주는 무용공연, 자선모임과 결부되기도 했다. 특히, 울산 최초의 극장이라고 볼 수 있는 상반관, 그리고 공회당의 역할을 겸한 울산극장은 영화 상영과 함께 음악극, 동요대회, 동화구연대회, 소인극 공연, 가극 및 무도회 등 다양한 공연이 이루어졌으며, 강연회와 토론회, 웅변대회 등 계몽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대규모 집회장소로 널리 활용되었으며 외부 극단 방문지로의 역할을 하는 등 공회당으로의 역할을 감당하였다. 이처럼 극장공간은 지역의 문화적 수준을 향상시켜 지역민들의 심미적 욕구 충족과 아울러 지역 문화의 근거지이자 여론과 의제를 선도하는 공론의 장, 그리고 근대사회의 대안적 공공영역으로 위치하며 지역의 문화적 자산으로의 기능과 공공기관으로의 역할도 수행하였다.
광복에서 전쟁기에 이르는 형성기에는 온 나라의 음악활동이 일시적으로 중단되다시피 하였다. 당시 울산에는 건국청년단이 결성되어 나라의 치안을 유지하면서 악대부를 조직하여 위문 활동을 하였으며, 울산초등학교 합주부와 장생포초등학교 합창단 및 울산농고 악단이 활동하는 가운데 합창경연대회가 열렸다. 또 광복을 맞는 시기에 울산지역에는 40여 개의 학교가 있으며 학교마다 교가가 지어져 불리어졌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분단사태의 출발은 비극적이었으나 전쟁으로 인해 세계음악의 동향을 접할 수 있게 되었고, 전시가요가 보급되었다. 또한 미8군 무대를 통한 팝 음악이 들어오고 유흥업소가 생기면서 악단이 등장하는 등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새바람이 불었다. 이 시기에 울산은 백양문화사와 울산음악동호회 등이 결성되어 클래식음악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는 일환으로 다방이라는 공간에서 음악연주를 겸한 음악감상회를 개최하였다.
1960년대의 울산음악은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1962년 울산이 특별공업지구로 지정되고 울산시로 승격되면서 지방자치 시대에 따른 문화 활동이 이루어졌다. 1964년 울산문화원이 개원하고, 1967년 울산연예협회와 울산음악협회가 설립되어 울산지역의 음악인들은 활동의 근거지가 마련된 셈이다. 울산문화원은 1967년부터 울산공업축제(처용문화제)를 개최하여 울산지역의 중심축제로 자리 잡았고 이 축제를 통하여 공연예술 활동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공연무대의 필요에 따라 1968년에 울산어린이합창단, 울산여성합창단, 울산MBC어린이합창단 등의 음악단체가 창단되었으며 합창경연대회와 함께 다양한 공연물이 나타나게 되었다.
1970년대는 클럽 문화가 형성되고 대학가요제 및 직장밴드 문화가 등장하였으며, 윤수일 등 대중가수가 나타났다. 그리고 클래식 부분에는 연주단체가 지속적으로 창단되었는데 1970년 울산어머니합창단, 1973년 울산여고현악합주단, 1974년 한국음악협회 울산지부 설립, YMCA청소년합창단, YMCA요들합창단이 창단하고, 1975년 YMCA어머니합창단, 울산YMCA합창단, 1979년에 울산실내악단이 창단되었다.
1980년대는 1973년 창립된 울산예총이 1981년부터 울산예술제를 개최하여 울산의 문화예술을 이끌어 갔다. 울산예총의 산하단체인 울산연예협회는 고복수가요제, 공단가요제, 경로위안잔치 등의 행사를 개최하였으며, 울산음악협회는 울산합창제, 클래식음악제, 한국가곡의 밤, 야외가족음악회, 초・중・고등학생 피아노 및 성악경연대회를 개최하여 공연문화의 질적 향상과 신진음악가 발굴하였다. 특히 울산관현악단이 1985년 7월 20일 전문음악단체로 창단되었으며, 1986년 1월 7일 울산합창단이 창단되었다. 그동안 아마추어 음악 단체의 성격이 강했으나 전문음악단체가 생겨나면서 차별화된 다양한 연주활동을 펼쳤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수많은 전문음악단체와 아마추어 음악단체가 창단되었다. 울산교향악단이 1990년 3월 9일 울산시립교향악단으로 재창단되었고, 울산합창단이 1993년 5월 울산시립합창단으로 재창단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또 1993년 5월 1일 윈드오케스트라가 창단 연주회를 하고, 아가페합창단이 1995년 12월 12일 창단연주회를 하였으며 울산어린이합창단이 1996년 9월 13일 창단연주회를 하는 등 민간 음악단체도 창단되었다. 그리고 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공연장이 필요하여 울산문화예술회관과 현대예술관, 한마음회관, 울산중구문화의전당 등 전문공연장이 건립되었으며 울산지역뿐만 아니라 국내외의 다양한 공연물을 제공하였다. 그리고 전문 음악교육기관인 울산예술고등학교가 개교하고 울산대학교 음악대학이 설립되었다. 그동안 울산의 음악지망생들이 울산에서 공부하지 못하고 외지로 유학하여야 하는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1997년 7월 15일 울산시에서 울산광역시로 승격된 이후 울산을 알리는 콘텐츠 개발이 가시적으로 드러났다. 울산시립합창단과 울산작곡가협회의 울산의 노래 발굴과 보급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많은 문화단체가 생겨났다. 울산남성합창단, 울산극동방송어린이합창단, 울산볼런티어예술단, 글리앙상블, USP쳄버오케스트라 등 연주단체들이 창단되었다. 또 울산시립청소년교향악단, 울산시립청소년합창단이 창단되고 울산예술고등학교 음악과, 울산대학교 음악대학 등 전문 음악교육기관에서 전문음악가들이 배출되면서 음악적 저변이 확대되고 음악활동의 폭이 넓어졌으며 전반적 수준이 향상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오페라단의 설립과 활동이 나타나게 되었다. 오페라는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솔로 등 모든 음악인이 참여하는 종합예술로 오페라의 수준이 그 지역의 음악적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늘어나는 공연물을 수용하기 위하여 많은 공연장이 건립되었다. 1995년 문화예술회관에 이어 2003년 울산북구문화예술회관이, 2009년 울주문화예술회관이 개관하였으며, 2014년 울산중구문화의전당이 콘서트 전용홀로 개관하여 시민들의 문화생활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민간공연장으로는 현대예술관, 현대아트홀, 근로자복지회관, 한마음회관, 가족문화센터, CK아트홀, 서울주문화센터 등의 시설이 건립되었다.
이상과 같이 근대계몽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울산의 음악사를 면밀히 살펴보고 정리한 결과,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울산의 음악사는 울산의 정치, 경제, 사회의 변화와 유기적으로 결합하며 발전하였다. 1962년 울산시 승격과 1997년 울산광역시로 승격이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둘째, 울산의 문화예술인들은 역사문화 주체로서의 정체성을 담고자 하는 노력을 꾸준히 기울이고 있다. 정인섭, 서덕출, 오영수, 신고송과 같은 울산 출신 문인들의 작품이 동요로 창작의 전통과 <울산아가씨>, <울산 큰 애기>, <울산행진곡>등 울산을 노래하는 곡들이 여럿 창작되었다. 대중음악에서도 울산을 담은 창작곡이 다수 발표되었으며, 울산의 노래 발굴과 창작 프로젝트가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셋째, 지역사회 안에서 음악의 위치가 변동했다. 근대계몽기 울산지역 음악은 교회나 학교 등 종교나 국가교육에 공헌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지만 점차 동요창작이나 클래식음악 활동으로 이어졌으며 1985년 울산교향악단이 민간 주도로 창단되면서 클래식음악의 연주활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창작활동도 활력을 얻게 되었다. 넷째, 과거에는 음악을 전공한 전문가를 중심으로 창작활동이 전개되었지만, 현대로 이르면서 시민들의 아마추어 음악활동이 양적으로 성장하였다. 이는 울산에서도 문화의 민주화에서 문화민주주의로 전환되는 문화적 흐름 속에서 시민들의 예술적 역량이 높아지고 음악을 즐기는 방식이 다각화되고 있었다.
이 연구를 통해 근대계몽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시기의 역사적 맥락 속에 울산지역 음악활동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으며, 그동안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던 지역 음악활동의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었다. 지역 예술은 지역문화의 독자성, 자율성을 바탕으로 지역의 정신, 지역 예술인들의 주인의식 속에 성장할 수 있다. 향후 울산 문화예술의 새로운 지표와 방향을 모색하고 나아가 국가음악사의 맥락에서 울산지역의 새로운 자리를 설정해 나가는 데 지역과 지역사회, 음악사회 전체의 노력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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