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70년대 수기문학의 영화화 연구
수기문학이란 전문적인 글쓰기 훈련을 하지 않은 작가들이 자신의 체험이나 경험을 글로 쓴 것으로서, 자기서사의 일종이다. 자기서사란 글의 저자, 글 속의 화자(서술자), 그리고 글의 주인공이 모두 동일한 인물로서, 일인칭 시점으로 서술되는 방식을 통해 독자들은 수기의 내용을 모두 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작가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드러내며 스스로를 재현한다. 그렇기 때문에 수기문학은 작가 자신이 어떤 인물로 인식되기를 원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자기서사에서 그가 말한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가려내는 것보다 왜 그렇게 자신을 표현하고자 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수기문학의 발전은 전후 대중잡지의 발달과 함께한다. 국가는 본격적인 문맹퇴치운동을 진행하면서 전후 초등교육을 의무교육으로 지정해 국민들의 문맹률을 낮추기 위해 노력했다.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동시에 대중잡지가 등장하면서 수기문학의 유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잡지사는 독자들을 모으기 위해 수기를 활용했다. 대중잡지는 잡지의 필진이나 유명인들이 수기에 대해 평가하거나 혹은 그들의 고민에 해답을 제시하며 독자들과 계속 소통하여서 그들이 잡지에 대한 충성도를 높여나갈 수 있도록 유도하였다. 유명인들의 피드백은 (예비) 수기작가들이 수기문학을 쓰기 위해 스스로 훈련할 수 있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신동아는 당선된 수기에 대해 평가한 글들까지 게재하며 좋은 수기를 쓰는 방법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교육했다. 수기 주제를 제시한 여원의 경우는 해당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평가를 통해 글쓰기를 도왔다.
라디오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났다. <인생역마차> 역시 대중잡지들처럼 더 많은 청취자들을 모으기 위해 수기를 모집하였고 선정된 글은 드라마화한 뒤에 유명인이 해결책을 제시하는 방식을 취했다. <인생역마차>의 인기는 수기 활용의 가능성과 효과를 증명하였다. 뿐만 아니라 독자와 청취자는 발표된 수기를 통해 유명인이 아닌 평범한 개인의 사연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더 나아가 대중은 자신의 사건과 경험을 공유하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본인의 수기쓰기를 실천해나갔다. 잡지나 라디오의 단편 수기는 곧 연재 수기로 발전했고, 연재 수기는 출판까지 이어졌다. <인생역마차> 역시 책으로 출간되고 영화화까지 이어지며 1960년대가 되면서 수기문학은 출판 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수기는 에세이 문학의 유행과 함께 1960년대 인기 있는 출판물이 된 것이다.
수기문학의 인기가 높아지자 영화계에서도 이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는 출판 시장뿐만 아니라 영화 시장 역시 급성장하던 시대였다. 영화의 수요는 증가했지만 시나리오는 부족했다. 게다가 영화법이 제정되면서 영화사는 국가가 지정한 제작편수를 채우지 못하면 운영도 불가능했다. 영화사는 많은 영화를 만들어야 했지만 영화로 만들 시나리오가 부족한 현실에서 당시 유행하고 있던 수기문학을 해결책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1960년대는 일본영화의 표절이 일상화되었던 시기였다. 이때 표절시비로부터 자유로우면서 원작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인기 수기문학은 영화계가 직면해있던 여러 문제들을 돌파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게다가 출판계에서 성공한 수기문학을 영화로 만든다면 수기의 화제성을 영화가 흡수할 수 있었고, 수기문학의 인기를 극장까지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실제로도 1960년대 수기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 중 큰 성공을 거둔 경우도 했다. 대부분 수기작가의 개인적 유명세와 함께 흥행한 것이 많았다. 수기의 인기는 곧 영화화까지 이어진 셈이다. 영화의 성공은 예비 작가들에게 수기를 통해 자신들이 어려운 상황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이 되는 것이기도 했다. 영화는 수기의 내용을 그대로 스크린으로 옮기는 데서 그치지 않고 수기를 통해 그들이 성공하는 장면을 추가하면서 수기쓰기를 통한 성공에 대한 기대와 환상을 보여주었다.
1960년대 수기는 고난과 실패의 서사가 주를 이룬다. 한국전쟁의 여파로 여전히 빈곤하던 한국은 고난의 서사를 공유하며 공동체 의식을 다졌다. 사람들은 수기의 비극적 내용에 함께 슬퍼하며 자신의 삶에 위안을 얻고 수기작가들을 동정하고 실제로 도와주기도 하면서 공동체로서의 연대감을 가졌다. 영화는 그런 수기의 기능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했다. 수기를 영화화한 작품들은 언론보다 더 크고 강력한 스피커 역할을 하며 더 많은 대중들에게 그들의 사연을 알려주었다. 그로 인해 수기의 저자들은 공동체 밖에서 공동체 안으로 진입했다. 그들은 동정받아 마땅한 공동체원이었고 그들의 비극은 공동체로 진입하기 위한 것으로 위로받아야 했다. 환언하면 수기는 수기작가들의 공동체 진입을 위한 수단이었고 영화는 공동체 진입의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었다.
수기는 출판이나 연재라는 검열과정을 통해 공개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영화화에 있어서도 안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출판보다 더욱 엄격한 검열을 통과해야 했기 때문에 많은 것들이 삭제될 수밖에 없었다. 감독은 수기작가들을 한국사회 안에서 분석하고자 했으며 그들을 통해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내고자 시도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국가가 요구하는 이데올로기를 더욱 강조하는 방식으로 영화화했다. 영화는 수기에서 불온한 것을 삭제하고 불온하지 않은 것은 드러내며 국가의 이데올로기를 투사했다.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수기의 자기재현을 영화 안에서 표현하고자 했으며 플롯을 확장하거나 재구성하면서 수기문학에서 부족한 갈등관계를 보완했다.
1970년대는 본격적인 산업화가 시작된 경제 성장 시기이자 박정희의 유신체제기였다. 이 당시 수기문학은 대중들에게 매우 익숙해진 장르가 되었다. 수기 형식의 소설이 등장하고 ‘수기’라는 말이 곧 ‘실화’를 의미하는 수준으로까지 이르렀다. 인기 있는 독서물로 자리 잡은 수기는 이제 국가가 자신들의 프로파간다를 홍보하거나 국민들에게 내재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도 활용되었다. 공장노동자들이 글을 배우고 수기를 쓰며 자신의 괴로운 처지에 대해 토로하는 동안 국가는 정부가 발간하는 잡지에 모범노동자의 수기를 게재했고, 새마을운동 잡지를 발간하여 새마을운동 지도자들의 수기를 모았다. 언론 역시 적극적이었다. 신문사들은 전향한 간첩들의 수기나 새마을지도자들의 이야기를 시리즈로 연재했다. 이제 수기를 통해 국가에게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게 인정받은 인물이 수기를 쓸 자격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대중잡지에서는 불행한 인물보다 성공한 인물들이 더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제 대중들은 불행하고 실패한 인물의 경험보다 고난을 극복하여 성공한 인물의 경험을 원했다. 이로 인해 1960년대 공동체 바깥에 존재하던 수기의 주인공들은 수기쓰기를 통해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다. 이러한 현상은 1960년대 중후반부터 대중잡지에서 수기쓰기를 훈련해온 결과이기도 했다. 수기는 고난-극복의 서사로 완전히 정착되었고, 고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제 극복이었다. 여기에서 극복은 개인의 노력보다는 국가의 방침에 순종할 때 가능한 것이었다.
국가는 수기문학을 영화화하는 데 있어서도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국가는 우수영화제도를 통해 영화계가 국가에게 순종하는 수기를 원작으로 영화를 만들도록 유도했다. 영화계는 자발적으로, 혹은 비자발적으로 수기를 영화로 만들었다. 당시 화제가 되었던 인물을 중심으로 영화를 만들거나 혹은 아예 국가의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운 인물들을 영화로 만들기도 했다. 그들은 모두 수기를 통해 자신을 긍정하고 성공을 자랑하였지만 이제 영화는 오히려 그들의 성공에 조건을 부여하고 제한하고자 했다. 더 이상 영화는 수기를 통해 수기작가들이 성공했다고 말하지 않으며, 수기를 영화의 전면에 내세우지도 않았다. 수기쓰기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수기작가를 영화의 주연으로 발탁할 정도로 영화의 리얼리티를 강조하는 데 더 중점을 두고자 했다. 그로 인해 수기작가들이 성공을 재현하고자 했던 시도는 영화화 과정에서 좌절되고 재현의 대상으로서 목소리를 잃어버리게 된다.
고난과 실패의 서사였던 1960년대의 수기는 1970년대가 되면 극복과 성공의 서사로 전환되었다. 수기작가/주인공을 동정하고 그들의 성공을 기원하던 1960년대의 영화는 1970년대가 되면서 오히려 그들의 성공을 제한하려 했다. 수기의 영화화는 재현의 주체이던 인물들이 재현의 대상이 되는 순간 어떻게 변화하고 또 목소리를 잃어가는지 그 과정을 보여준다. 각색 과정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굴절들은 1960-70년대 한국사회가 그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자 공동체 바깥에 있던 인물들이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국가가 제시했던 필요한 조건들을 확인할 수 있는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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