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study examines the marine network of the Hansŏng(漢城) period of Paekche(百濟), which was essential for international relations, focusing on the relationship with China and Japan; it also explores the meaning of the marine network in East Asia
In the 3rd century, the Shinbun'goguk(臣濆沽國) grew into a maritime force of Mahan(馬韓) in the Kyŏnggiman Gulf(京畿灣) inside the network of the Yellow Sea Coastal Route(黃海沿岸航路, the lane sailing along the coast of Yellow sea) centered on China. However, in the late 3rd century, “Mahanju(馬韓主)" (the king of Paekche) newly rose, controlling the right to foreign negotiations of Mahan and negotiating with the Western jin(西晉) on the Yellow Sea coastal route. The limitation of this period is that the number of small countries negotiated with Western Jin through "Mahanju" was marked in history, and some small countries' one-time independent negotiations coexisted outside the control.
Since the Yellow Sea Coastal Route Network was strained in the early 4th century, Paekche has frequently negotiated and exchanged with the Eastern Jin(東晉) since the late 4th century, by accepting the skills and experiences necessary for the use of the Yellow Sea Central Cross Route(黃海中部橫斷航路, the lane sailing across the Yellow sea). However, since the end of the 4th century, Koguryŏ(高句麗)'s threat has reduced the stability of route utilization and sharply reduced the frequency of negotiations and exchanges.
With the Yellow Sea Coastal Route Network strained, Paekche frequently conducted economic and cultural exchanges and political, military, and diplomatic negotiations with Wa(倭, Japan) through the South-west Coastal Route(西南海岸 沿岸航路, the lane sailing along the coast of Yellow sea and Southern sea) Network from the late 4th century. In the 5th century, the qualitative aspect of Wa negotiations with Paekche was maintained, but the frequency of negotiations decreased. Wa independently negotiated with China, but the negotiation route was the Yellow Sea Central Cross Route through Paekche. Paekche controlled the negotiation right of entire Mahan and incorporated it into its sphere of influence in the late 4th century, reorganized the local governance system by giving down the prestige goods after the 5th century, and operated the long-distance the South-west coast route to Wa in the form of a network.
The marine network during the Hansŏng period of Paekche was established by utilizing the nautical skill and universal routes of East Asia, bound to the structure of the marine environment of East Asia. Ancient East Asian navigation techniques developed from the costal navigation inside of the viewing distance to the celestial navigation in the ocean, and shipbuilding techniques developed from the semi wooden ship to the wooden ship. Paekche accepted and utilized marine technology in the Celestial navigation and the wooden ship, which developed in China during the same period. In addition, Paekche connected the East Asian world using the Yellow Sea Coastal Route, the Yellow Sea Central Cross Route, and the South Sea Coastal Route.
This study introduces a methodology called 'network analysis' for the study of ancient Korean history - an approach to analyze the marine network during the Hansŏng period of Paekche in a pluralistic and complex ancient East Asian world. The result of the negotiation data analysis shows that Paekche operated a maritime network which monopolized the gateway connecting Mahan, Kaya, Wa and China while having the next status to Liu Song(劉宋) and Koguryŏ in East Asia. The marine network during the Hansŏng period of Paekche is divided into three periods. The 3rd century was a time when "Mahanju" (the king of Paekche) negotiated with Western Jin through the Yellow Sea Coast route. The 4th century was a time when Paekche pioneered the Yellow Sea Central Cross Route after the crunch of the Yellow Sea Coastal Route, negotiated and exchanged with Eastern jin, and negotiated with Wa through the reconstruction of the South-west Coastal Route Network. The 5th century was a time when Paekche negotiated and exchanged with the Northern and Southern dynasties(南北朝) through the Yellow Sea Central Cross Route and negotiated with Wa through the South-west Coastal Route Network, and was a time of pluralistic maritime exchanges of network members.
Paekche used East Asian marine technology and routes to connect the East Asian world of China-Paekche-Wa through the Yellow Sea Central Cross Route and the South-west Coastal Route Network. Mahan, Kaya, and Wa contacted with East Asia through the Paekche’s Marine Network. However, Paekche's limitations were the deterioration of the safety of the Yellow Sea Central Cross Route due to the threat of Koguryŏ and the independent negotiations with China by Wa. Paekche's dominance was not fulfilled throughout the coastal route network, and it was maintained in the form of a network. The East Asian network, which Paekche connected through the Yellow Sea Central Cross Route and the South-west Coastal Route Network, was a pluralistic order.
이 연구에서는 한성기 백제가 바다를 통해 중국-마한-가야-왜 등을 연결해가는 과정을 탐색하고, 백제 한성기 해양 네트워크의 동아시아적 의미를 분석하였다.
3세기까지 동아시아 세계의 연결망은 연안항로 네트워크였으며, 중원 왕조와 낙랑군 등을 중심으로 왜까지 이어지면서 운영되었다. '신분고국'은 3세기 중국 중심의 황해연안항로 네트워크에서 경기만 일대의 ‘마한’ 해상세력으로 성장하였으나, 기리영 전투의 패배 이후 쇠퇴하였다. 3세기 후반 ‘마한주’(백제왕)가 등장하여 한강 하류 등 가까운 지역을 세력권으로 편입하여 대외교섭권을 통제하고 황해연안항로로 서진과 교섭하였다. 하지만 ‘마한주’와 함께 교섭한 소국의 운동성이 남아있었고, ‘마한주’ 통제 바깥에서 일부 소국의 1회성 독자 교섭도 공존했다는 한계가 있었다.
4세기 초 기존 연안항로 네트워크가 경색된 이후, 백제는 낙랑과 대방 주민들로부터 황해중부횡단항로에 필요한 기술, 경험 등을 수용하여, 4세기 후반 황해중부횡단항로로 동진과 빈번하게 교섭 및 교류하였다. 백제는 연안항로, 횡단항로, 한강 수계의 결절점이라는 경기만의 지정학적 이점을 활용하였고, 가야, 왜 등 주변 세력은 백제를 경유하지 않고서는 중국과 관계를 맺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4세기 말 이후 고구려의 위협으로 인해 항로 활용의 안정성이 떨어지는 한계를 맞이하였다.
5세기 백제는 고구려·왜 견제, 선진문물 도입, 왕권 강화 등 복합적인 배경에서 송과 교섭을 진행하였고, 도자 교류도 지속되지만, 교섭 및 교류 빈도는 급감하였다. 빈도 감소의 원인은 황해도 남부를 장악한 고구려의 위협이었다. 당시 교섭항로는 장거리의 황해연안항로도 아니고, 고구려의 수역과 멀리 떨어진 황해남부사단항로도 아니라, 황해중부횡단항로였다. 그런데 황해도 남부의 상실에 따라 고구려 수역을 거치게 되면서, 항로의 안정성에 타격을 받아 교섭 및 교류 빈도가 감소하였다. 개로왕은 이러한 한계를 타개하려고 군사행동을 벌였고, 북위에 군사 원조를 요청했지만, 한성함락으로 인해 끝내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였다.
황해연안항로 네트워크가 경색된 상황에서, 백제는 4세기 후반부터 서남해안 연안항로 네트워크를 통해 왜와 빈번한 교섭, 교류를 진행하였다. 5세기에 백제와 왜의 교섭은 질적으로 유지되었으나 빈도가 감소하였다. 이른바 왜 5왕은 독자적으로 중국과 교섭하였으나, 교섭 경로는 백제를 경유하는 황해중부횡단항로였다.
백제는 4세기 후반 마한 전체의 대외교섭권을 장악하여 자신의 세력권에 편입하고, 5세기 이후 지역별로 위세품을 내려 주면서 지방지배체제를 정비하였으며, 가야의 여러 국가와 우호 관계를 맺으면서, 왜까지 이어지는 장거리의 서남해안 연안항로를 네트워크 형태로 운용하였다. 영산강유역은 백제의 세력권에서 간접지배 영역으로 포함되어 가면서, 연안항로의 기항지로서 가야, 왜 등과 다원적인 해양교류를 펼쳤다. 한성기에 등장하여, 웅진기 초에 전방후원형 고분으로 확산한 왜계 고분은 다원적인 해양교류를 보여주는 자료이다. 해양교류에 활용된 항로는 남해사단항로의 개연성도 있지만, 교섭항로와 마찬가지로 남해연안항로가 주로 활용되었을 것이다.
백제 한성기 해양 네트워크는 동아시아의 해양기술과 항로를 활용하면서 구축되었다. 고대 동아시아 항해술은 ‘시인거리 연안항해’ 단계에서 ‘천문관측 대양항해’로 발전하였고, 조선술은 ‘준구조선’ 단계에서 ‘구조선’ 단계로 발전하였다. 백제는 중국의 ‘천문관측 대양항해’, ‘구조선’ 해양기술을 수용하고, 황해연안항로, 황해중부횡단항로와 남해연안항로라는 동아시아 보편항로를 활용하여 동아시아 세계를 연결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다원적인 고대 동아시아 속의 백제 해양 네트워크를 분석하기 위해, ‘네트워크 분석’이라는 방법론을 한국 고대사 연구에서 시론적으로 도입하였다. 교섭 데이터 분석 결과, 백제는 동아시아에서 송, 고구려 다음의 위상을 갖고 있으면서, 마한, 가야, 왜와 중국을 연결하는 창구를 독점하는 해양 네트워크를 운영하였다.
백제 한성기 해양 네트워크의 변화과정을 시기별로 정리하면, 3시기로 구분된다. 1기(3세기)는 황해연안항로를 통한 ‘마한주’(백제왕)의 서진 교섭, 2기(4세기)는 황해연안항로 경색에 따른 황해중부횡단항로 개척과 백제왕의 동진 교섭과 교류, 서남해안 연안항로 네트워크의 재구축을 통한 왜와의 교섭, 3기(5세기)는 고구려의 위협이라는 한계 속에서 황해중부횡단항로를 통한 남북조 교섭과 교류, 서남해안 연안항로 네트워크를 통한 왜와의 교섭과 네트워크 구성원의 다원적인 해양 교류의 시기이다.
백제는 동아시아의 해양기술을 활용하여, 황해중부횡단항로와 서남해안 연안항로 네트워크로 동아시아 세계를 연결하였다. 백제의 해양기술 수용과 중국과의 빈번한 교섭, 교류는 다시 해양기술을 빠르게 수용하는 것으로 이어져,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마한, 가야, 왜 등은 백제 해양 네트워크를 통해 동아시아 세계에 연결되었다. 하지만, 고구려의 위협과 황해중부횡단항로의 안전성 저하, 왜의 독자성이라는 한계도 분명하였다. 연안항로 전체에 백제의 지배력이 관철되지 못한 상태에서, 서남해안 연안항로는 네트워크 형태로 유지되었다. 백제가 황해중부횡단항로와 서남해안 연안항로 네트워크로 연결한 동아시아 네트워크는 한반도 중부 이남의 다른 정치체가 달성할 수 없었던 성과이자 다원적인 질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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