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初期 王命文書 硏究 : 經國大典體制 成立까지를 中心으로
저자
발행사항
성남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2012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박사)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 고문헌관리학 , 2012. 2
발행연도
2012
작성언어
한국어
발행국(도시)
경기도
형태사항
; 26 cm
일반주기명
지도교수: 전경목
소장기관
본 논문은 傳存하는 조선초기 王命文書의 현황 파악과 경국대전체제 성립까지의 왕명문서 양식 변화를 규명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왕명문서는 크게 왕명을 직접적으로 문서화하여 발급한 양식의 문서와 官司에서 왕명을 受命하여 발급한 양식의 문서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연구에서는 前者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필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여기에 해당하는 문서는 169건으로 파악되었고, 문서 종류별로는 敎書 15건, 告身 126건, 紅牌 13건, 白牌 5건, 賜牌 6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교서는 고려시대로부터 이미 功臣敎書, 獎諭敎書 등이 존재하였고, 조선초기에도 開國功臣, 佐命功臣, 敵愾功臣, 佐理功臣에게 발급된 공신교서와 李澄石, 權柱에게 개별적으로 발급된 교서가 확인된다. 본 논문에서는 조선초기 교서를 문서 양식에 따라 크게 공신교서, 장유교서, 기타 교서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이 가운데 공신교서의 양식이 가장 먼저 정착된 것으로 판단되고, 결과적으로 여타 교서의 양식도 공신 교서에 나타난 양식에 맞추어 정립된 것으로 보인다. 교서에 사용된 寶印은 시기에 따라 高麗國王之印, 朝鮮王寶, (朝鮮國王之印), 國王信寶, 施命之寶, 施命, 朝鮮國王之 印, 施命之寶의 순으로 변천되었다.
둘째, 고신도 975년(고려경종원) 金傅 고신, 1216년(고려고종3) 慧諶 고신을 통해 고려시대로부터 이미 제도에 의거하여 문서가 발급된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조선초기 고신의 원형에 해당하는 양식은 고려말 원간섭기를 거치면서 나타난 것으로 추정된다. 1344년(고려충목왕즉위) 申祐에게 발급된 왕지 양식의 문서 양식이 조선에 그대로 이어졌고, 조선초기에는 시기에 따라 문서의 첫머리에 ‘王旨’, ‘敎旨’, ‘徽旨’가 사용되었다. 1434년(세종16)에 ‘왕지’가 ‘교지’로 바뀐 뒤 지속적으로 ‘교지’ 양식이 유지되다가 세종연간 말기에 왕세자 대리청정이 시행되면서 3품 이하의 고신에 ‘휘지’ 양식이 사용되었다. 고신에 사용된 보인의 변화를 살펴보면, 조선개국 직후에는 高麗 國王之印이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이후에는 시기에 따라 朝鮮王寶, 朝鮮國王之 印, 國王行寶, 施命之寶, 朝鮮國王之印, 王世子印, 朝鮮國王之印, 施命之寶, 施命, 朝鮮 國王之印, 施命之寶의 순으로 변천되었다.
셋째, 홍패 또한 고려시대로부터 문서의 연원을 찾을 수 있지만, 문서 양식은 다른 왕명문서에 비해 큰 변화를 보였다. 고려말의 홍패에 나타난 ‘王命准賜’ 양식이 조선에 들어와서 고신에 보이는 것과 같은 ‘왕지’ 및 ‘교지’ 양식으로 바뀐 것이다. 이를 통해 고려후기에는 官司에서 왕명을 受命하여 발급하던 문서 양식이 조선에 들어와 왕명을 직접적으로 문서화하여 발급하는 문서 양식으로 변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고려말에 비해 조선초의 홍패가 양식에 있어 위상이 높아진 것을 의미한다. 생원·진사시 입격에 대한 백패는 1438년(세종20) 이후에야 비로소 제도화 된 사실도 확인하였다. 보인 사용의 변화는 시기에 따라 朝鮮王寶, 國王信寶, 科擧之印의 순으로 변천되었다. 科擧之印은 인조연간에 이르러 科擧之寶로 바뀌었다.
넷째, 사패는 경국대전에 따르면 향리의 역을 면제한 경우와 노비 및 토지를 賜與 한 경우에 발급되었으나, 전존하는 문서 가운데는 노비 및 토지를 사여한 경우에 발급된 사패만 확인된다. 그리고 조선초기의 사패는 경국대전에 수록된 賜牌式과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대표적인 차이점은 문서의 前端部에 수취자의 具官姓名을 별도로 기재하는 점, 세조연간까지는 吏讀가 사용된 점, 문서 말미에 문서 발급을 주관한 知申事 또는 承旨의 具官姓(署名)이 기재된 점 등이다. 보인의 사용은 시기에 따라 朝鮮王寶, 朝鮮國王之印, 國王行寶, 昭信之寶, (朝鮮國王之印), 施命之寶의 순으로 변천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조선초기 경국대전체제가 성립하기까지의 왕명문서 양식 변화를 전존하는 고문서를 통해 실증적으로 규명하였다. 앞으로 조선초기 왕명문서 전반에 대한 후속연구가 진행되고, 나아가 고려시대 왕명문서에 대한 연구가 심화된다면 한국 고문서의 문서사적 실체 규명에 큰 기여가 될 것이다.
本论文为了掌握传存的朝鲜初期王命文书的现状,推究经国大典体制成立为止王命文书 的样式变化而撰写。王命文书大分为直接记载王命而发放的样式文书和官府接受王命而发 放的文书,本研究中以前者作为研究对象。根据笔者的调查,有关此类文书共有169件, 按照各文书种类组成为教书15件、告身126件、红牌13件、白牌5件、赐牌6件等。
第一,教书,从高丽时代开始已存在功臣教书、奖谕教书等,也确认朝鲜初期发放给开 国功臣、佐命功臣、敌忾功臣、佐理功臣的功臣教书和个别发放给李澄石、权柱的教书。在本论文中,根据朝鲜初期文书样式,大分为功臣教书、奖谕教书、其他教书进行了研 究。在其中判断为功臣教书的样式最早定型化。从结果上来看,其余的教书样式也根据功 臣教书中所出现的样式而定型化。教书中所使用的宝印根据时期,按照高丽国王之印、朝鲜王宝、(朝鲜国王之印)、国王信宝、施命之宝、施命、朝鲜国王之印、施命之宝的顺序演变。
第二,告身也通过975年(高丽景宗元)金傅告身、1216年(高丽高宗3年)慧谌告 身,确认了从高丽时代开始已根据制度发放文书的事实。但是,推断相当于朝鲜初期告身 原形的样式是经过高丽末的元干涉期而出现。 1344年(高丽忠穆王即位)发放给申祐的 王旨样式的文书原样传承到朝鲜,朝鲜初期分时期,在文书的开头使用了“王旨”、“教 旨”、“徽旨”。1434年(世宗16年)“王旨”变为“教旨”之后,持续维持“教旨”样式,到世 宗年间末期施行王世子代理听证,在3品以下的告身中使用了“徽旨”样式。查看使用在告身 的宝印变化,朝鲜开国之后推断为使用高丽国王之印,之后根据时期按照朝鲜王宝、朝鲜 国王之印、国王行宝、施命之宝、朝鲜国王之印、王世子印、朝鲜国王之印、施命之宝、 施命、朝鲜国王之印、施命之宝的顺序演变。
第三,红牌也从高丽时代开始能够找到文书的渊源,但是文书样式比其他王命文书展现 出大的变化。高丽末出现在红牌的“王命准赐”样式传到朝鲜,展现在告身一样,转变为“王旨”及“教旨”的样式。通过此可确认,高丽后期官府接受王命而发放的文书样式传到朝鲜, 转变为直接记载王命发放的文书样式的事实。这些意味着比起高丽末,朝鲜初的红牌,在 样式上其位相有了提高。也确认了用于生员、进士考试合格的白牌,到1438年(世宗20) 之后才制度化的事实。宝印的使用变化根据时期按照朝鲜王宝、国王信宝、科举之印的顺 序变迁。科举之印到仁祖年间变化为科举之宝。
第四,根据经国大典,赐牌是免除乡吏役和赐予奴婢及土地时所发放,但是传存的文书 中只能确认赐予奴婢及土地时发放的赐牌。还有,朝鲜初期的赐牌与收录在经国大典的赐 牌样式多少有差别。代表性的差别是,文书的开头部分另外记载收取者的具官姓名一点、 到世祖年间为止使用吏读一点、文书末尾记载主管文书发放的知申事或记载承旨具官姓 (署名)一点等。宝印的使用根据时期,按照朝鲜王宝、朝鲜国王之印、国王行宝、昭信 之宝、(朝鲜国王之印)、施命之宝的顺序变迁。
以上,将朝鲜初期经国大典体制成立为止王命文书样式的变化,通过传存的古文书实证 性进行了阐明。往后,如果对整个朝鲜初期王命文书进行后续研究,进而深化研究高丽时 代王命文书,将对韩国古文书的文书史的实体探究,成为大贡献。
本論文は、伝存している朝鮮初期の王命文書の現況把握と経国大典体制成立までの王 命文書样式の変化を糾明するために作成された。王命文書は、大きく王命を直接的に記 載して発給した様式の文書と官司で王命を受命し、発行した様式の文書に分けることが でき、この研究では、前者を研究対象とした。筆者が調べたところによると、ここに該 当する文書は169件が把握されており、文書の種類別としては教書15件、告身126件、 紅牌13件、白牌5件、賜牌6件などに構成されている。
まず、教書は高麗時代から既に功臣教書、奨諭教書などが存在し、朝鮮初期にも開国 功臣、佐命功臣、敵愾功臣、佐理功臣に発行された功臣教書と李澄石、權柱に個別的に 発給された教書が確認される。本論文では、朝鮮初期の教書を文書様式によって大きく 功臣教書、奨諭教書、其他教書に分けて検討した。このうち、功臣教書の様式が一番最 初に定形化されたものと判断され、結果的に、余他教書の様式も功臣教書に示された様 式に合わせて定形化されたものと見られる。教書に使用された宝印は、時期によって高 麗国王之印、朝鲜王宝、(朝鮮国王之印)、国王信宝、施命之宝、施命、朝鮮国王之 印、施命之宝の順に変転した。
第二に、告身も975年(高麗景宗元)金博告身、1216年(高麗高宗3)慧諶告身を通 じて、高麗時代から、すでに制度に基づき、文書が発給された事実が確認された。しか し、朝鮮初期、告身の原形に該当する様式は、高麗末、元の干渉期を経て現れたものと 推定される。 1344年(高麗忠穆王即位)申祐に発給した王旨様式の文書様式が朝鮮に そのまま受け継がれ、朝鮮初期には時期によって、文書の冒頭に、"王旨"、"教旨"、"徽 旨"が使用された。 1434年(世宗16)に"王旨"が"教旨"に変わった後、持続的に"教旨" 様式が維持されたが世宗年間末期に王世子代理聴政が施行され、三品以下の告身に"徽旨 "様式が使用された。告身に使用された宝印の変化を見ると、朝鮮開国直後には高麗国王 之印が使用されたと推定され、以降には時期によって朝鮮王宝、朝鮮国王之印、国王行 宝、施命之宝、朝鮮国王之印、王世子印、朝鮮国王之印、施命之宝、施命、朝鮮国王之 印、施命之宝の順に変転された。
第三に、紅牌もまた、高麗時代から文書の淵源を見つけることができるが、文書様式 は、他の王命文書に比べて大きな変化を見せた。高麗末の紅牌に現れた"王命准賜"様式 が朝鮮に入ってから告身に見えるような"王旨"及び"教旨"様式に変わったのだ。これによ り、高麗後期には、官司で王命を受命して発給していた文書様式が朝鮮に入って王命を 直接記載して発給する文書様式に変わっていた事実を確認することができる。これは、 高麗末に比べて、朝鮮初の紅牌が様式において、その位相が高くなったことを意味す る。生員。進士試入格の白牌は、1438年(世宗20)以降になって初めて制度化された事 実も確認した。宝印の使用の変化は時期によって朝鮮王宝、国王信宝、科举之印の順に 変転した。科举之印は仁祖年間に至って科举之宝に変わった。
第四に、賜牌は経国大典によると、郷吏の役を免除した場合と、奴婢及び土地を賜与 した場合に発給されたが、伝存している文書の中には奴婢及び土地を賜与した場合に発 給された賜牌のみが確認される。そして、朝鮮初期の賜牌は経国大典に収録された賜牌 式と多少の差を見せているが、代表的な違いは、文書の前端部に受取者の具官姓名を別 途記載する点、世祖年間までは吏読が使用された点、文書の末尾に、文書発給を主管し た知申事又は承旨の具官姓(署名)が記載された点などである。宝印の使用は、時期に よって朝鮮王宝、朝鮮国王之印、国王行宝、昭信之宝、(朝鮮国王之印)、施命之宝の 順に変転された。
以上で、朝鮮初期経国大典体制が成立するまでの王命文書样式の変化を伝存している 古文書を通して実証的に糾明した。今後、朝鮮初期の王命文書全般に対する後続研究が 進められ、さらに高麗時代王命の文書研究を深化すれば韓国の古文書の文書史的実体糾 明に大きな寄与になるだろ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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