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범천·제석천상 연구 = (A) study on the images of Brahma and Indra in the Unified Silla
저자
발행사항
서울 : 홍익대학교 대학원, 2002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석사) -- 홍익대학교 대학원 , 미술사학과 한국미술사 전공 , 2002. 8
발행연도
2002
작성언어
한국어
주제어
KDC
629.24 판사항(4)
DDC
730.951036 판사항(20)
발행국(도시)
서울
형태사항
iv, 229 p. : 삽도 ; 26 cm .
일반주기명
참고문헌(p. 159-175) 수록
소장기관
불교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인도의 바라문敎 신으로 숭배되었던 梵天(Brahma ̄)과 帝釋天(Indra)은 불교에 수용된 후, 각종 경전에서 불교의 가르침을 돕거나 보호하는 호법신으로 함께 등장하게 된다. 경전에서는 불교의 天部神으로서 행하는 일반적인 역할과 함께 범천은 부처에게 설법을 권청하고, 제석천은 불사리를 받드는 등의 개별적이고 특화된 행위를 일정하게 반복하는데, 이는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다룬 佛傳경전의 내용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범천과 제석천의 이와 같은 전형적 성격은 훗날 불교미술에서도 이들의 형상화에 일정한 영향을 끼친다.
인도와 간다라에서 범천과 제석천상은 불전미술품에 주로 보이며, 수행자형 범천상의 도상은 고대 인도의 四姓제도에서 제1계급인 바라문을, 그리고 왕공형 제석친상의 도상은 제2계급인 크샤트리아를 모델로 하여 성립되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불전미술을 포함하여, 본존상과 그 좌우에 범천·제석천상이 등장하는 형식은 이후 전개되는 불삼존상의 기원으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중국에는 범천·제석천상이 등장하는 불전미술품이 많이 남아있지 않으나, 명문을 통해 확인되는 소라형 머리를 한 螺계梵王이라는 특정한 도상의 범천상이 남북조시대 6세기에 활발히 제작되었다. 범천상의 나계는 교리적으로 불교적 세계관에 관련 된 가르침을 함축하며, 그 도상적 연원은 범천을 받들었던 바라문집단의 외모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나계범왕상은 착의형식에 따라 몇가지로 분류되는데, 양식변천은 다른 상들과 비슷하여 동시대 불교조각의 보편성을 공유한다. 한편 동아시아 초기의 또 다른 범천상의 예로, 통일신라 초인 689년에 제작된 己丑銘 아미타여래불비 상에서 건물을 들고 있는 인물상 두 구를 주목했다. 본고에서 '捧宮殿 범천상'으로 명명한 이 상들은, 「법화경」 을 비롯한 각종 경전에서 부처께 자신의 궁전을 바치며 설법을 권청하는 범천의 전형적인 행위를 도상적 근거로 하여 형상화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 唐代의 범천·제석천상은 거의 전하지 않으나 문헌기록과 벽화자료를 통해 불 때 도상과 양식에서 점차 중국의 전통적인 요소를 흡수하며 중국화를 진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盛唐期 이래 제작된 중국의 전통적 관리형, 제왕형, 여성형 범천·제석천의 도상은 인도나 서역에서는 전혀 볼 수 없던 것으로 중국적 사고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같이 중국화된 범천·제석천 도상은 우리나라에도 수용됨으로써 통일신라 후기에 제작되는 범천·제석천상에 영향을 미쳤다.
통일신라 범천·제석천상 제작의 배경으로는 불교의 범천·제석천 신앙과 결합된 재래의 전통적인 천신신앙의 기반과, 화엄의 영향 하에 전개된 신중신앙의 성행을 들 수 있다. 통일신라 초기, 제석천상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지닌 사천왕사의 五方神將像에 대해서는, 이 상들 속에 제석천상뿐만 아니라 사천왕상 역시 포함되지 않았으며, 「濯頂經」 의 내용 그대로 다섯 구 모두 활을 쥔 무장형 상으로 만들어졌다고 보았다. 제석친상과 사천왕상의 결합은 오히려 통일신라 후기에 제작된 실상사 백장암 석탑의 1층 탑신에서 확인된다. 백장암 석탑 1층 탑신의 모습은 제석천을 중앙으로 하는 불교의 수미산 세계를 뜻하므로 이 경우야말로 사천왕상을 포함하는 오방신적인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8세기 중반에 제작된 석굴암 범천·제석천상에 대해서는 상 자체의 분석과, 석굴암 전체구조 속에서의 배치 문제로 나누어 고찰하는 二元的인 방법을 택하였다. 우선 도상과 양식은 「陀羅尼集經」 卷3 般若畵像法에 수록된 범천·제석천상의 묘사와 거의 같다. 석굴암 범천·제석천상의 광배(파기광: 키 모양의 광배)·대좌(수유좌: 양탄자로 된 대좌)·지물(불자와 정병, 금강저)은 기원과 의미, 그리고 형태면에서 국제성 강한 모티프인 것이 확인된다. 또한 이 상들의 복식은 같은 시기인 일본 奈良시대의 범천·제석천상들과 비교되는 한편, 일부 도상이나 양식에서는 고식성과 보수성을 띤다. 석굴암 범천·제석천상이 지닌 국제적인 동시대성과 고식성이라는 상반된 성격은 통일신라 조각의 독자성과 특수성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석굴암의 설계와 불상군의 배치는 비슷한 시기에 동아시아에서 유행했던 원형구도를 기본형으로 하는 불교존상의 군상배치 圖本들과 비교된다. 그러나 범천·제석천 상의 좌우위치와 배치면에서는 차이를 보이며 석굴암만의 특징을 지닌다. 석굴암 범 천·제석천상의 도상 자체는 「다라니집경」 과의 영향관계가 상정되나, 석굴암 내부에서 범천·제석천상의 위치와 배치상의 특수성이라는, 설계문제와 직결된 보다 근본적인 부분은 개별 도상집의 성격이 짙은 「다라니집경」 보다도, 석굴암 조영 당시 통일신라에서 유행했던 「화엄경」 이나 화엄사상, 화엄신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것으로 파악했다. 이는 석굴암 조영에 관여했던 주변 인물들의 화엄과의 관련성, 본존상의 성격, 그리고 화엄에서 범천·제석천이 차지하는 위상과 중요성으로도 뒷받침된다.
통일신라 후기의 범천·제석천상은 그동안 일부 부도의 예를 제외하면 거의 없는 것으로 소홀하게 인식되어져 왔으나, 막연하게 보살상이나 천부상으로 통칭되던 석탑과 석불 대좌 중대석의 상들 중에는 범천·제석천상이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다. 이 시기의 범천·제석천상은 복식과 지물, 자세에 의해 4가지 형식으로 분류된다. 석 탑과 사리기 표면에 새겨지는 범천·제석천상은 대부분 석굴암의 도상을 계승·변용 하였고, 이와 달리 부도와 석불 대좌 중대석의 범천·제석천상은 복식과 대좌 등에서 盛唐 이후의 중국화된 도상을 새롭게 수용하였다. 통일신라 후기의 서로 다른 계열의 범천·제석천상 도상은 함께 공존하며 각각의 양식적 전개를 보이는 한편, 고려 초기의 범천·제석친상으로 그 전통이 계승되었다. 이처럼 통일신라 후기의 범천·제석천상이 밀교도상을 따르지 않고, 오히려 고식적인 석굴암 범천·제석친상의 전통을 계승한 점은 같은 시기의 중국이나 일본과 차별화되는 독자적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다.
통일신라 후기에 제작된 불교 석조물의 범천·제석천상은 사천왕, 금강역사 등 다른 종류의 神衆像들과 함께 새겨지며 석조물 전체의 성격이나 상징성을 규정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러한 신중상들의 결합방식은 석조물의 종류, 범천·제석천상의 형식과 일정한 상관성을 보이며 몇가지로 구분되고, 이에 따라 범천·제석천상은 불세 계의 질서를 구현하거나 구조물 내부를 지키는 수호신의 뜻을 지니는 등으로 의미와 역할 면에서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인다. 범천·제석천상의 연구는 단순히 신중상의 연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 고대조각사 연구 전반에 새로운 시각과 몇가지 중요한 문제를 제기해주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Brahma and Indra worshiped as the gods in Brahmanism before Buddhism arose, served and guarded the Buddha's preaching in sutras appearing together within Buddhism. In the sutras on Sakyamuni's life they take special roles; Brahma persuades him to preach and Indra serves the Sarira as well as taking a general role as gods of devas. Some Iconographic features in Buddhist art are based on these typical roles.
In India and Gandhara, Brahma and Indra are shown in the art on Buddha's life. Followed the Brahmana and Ksatriya in the Caste system Brahma appears disciplinant and Indra appears noble. Including the art on Buddha's life, the statues with Buddha on the right and left side by Brahma and Indra originates the form of Buddha triad.
Even the art on Buddha's life rarely remains in China, in the 6th century, many records describe the icon of Brahma with shell-shaped head Nagye-Bumwang(螺?梵王). The shell-shaped head of Brahma expresses the instruction of Buddhism and the origin of the icon which comes from the appearance of Brahmanas worshiping Brahma. This kind of Brahma image can be classified according to its costume, and the changes of the style have also general issue with other Buddhist sculpture. On the other hand, there is another example of Brahma image in the early Unified Silla dated on 689 A.D. It is two figures that hold buildings in the stone monument with Amitabha inscribed the year of Gichuk(己丑). The Brahma called 'Brahma holding up a palace' in the thesis has much possibility to be formed by the scenes from many sutras including Saddarma-pundarika sutra(法華經); Brahma entreats for Buddha's sermon dedicating his palace.
Although the Brahma and Indra statues of Tang dynasty are seldom discovered, we can find that the icons and the style reflect traditional Chinese elements through records and mural paintings in the era. The images of Brahma and Indra in Chinese official uniform, emperor clothing and feminine garments produced during the high Tang, were very different from those of Indra and Central Asia. The Chinese icons of Brahma and Indra affected on those produced in the late Unified Silla.
In the Unified Silla, Brahma and Indra of Buddhism were accepted and produced based on the traditional religion on the gods of Heaven and the prevalence of the multitude of deites under Avatamsaka(華嚴). Five-direction-Guardians(五方神將)of Sachonwang-sa temple(四天王寺, the temple of Four Heavenly Kings)in the early Unified Silla have been presumed to include Indra. However, the status just consisted of five armed figures with bows not Indra nor Four Heavenly Kings according to GwanJeong sutra(灌頂經). Rather, in the late Unified Silla, the combination of Indra and Four Heavenly Kings around, which expresses the world of Mt, Sumeru in Buddhism.
It is needed to analyze in two ways on the Brahma and Indra of Sokkuram(石窟庵, late 8th century), which is the analysis on the status themselves and on the arrangement within the whole structure. At first, the icons and the style are from the description of the edited Dharani sutra(陀羅尼集經)by Atigosa(阿地瞿多). Their origins, meanings, and objects such as camera, kundika, vajra are common to the international motifs at those times. These reliefs have some elements comparable with the Brahma and Indra status of Tenpyo period in Japan, as well as respect of icon and style keep old fashioned and conservative aspects. This contrary aspects of the Brahma and Indra reliefs in Sukkuram between the contemporary and conservatory style explain the originality of the sculpture in the Unified Silla.
The design of the Sukkuram cave is similar to the circular plan of Buddhist deities pervading in East Asia of that period. However, the location of the right and left and the arrangement of Brahma and Indra reliefs are different from other works and it is another character of Sukkuram. It is true that the icons of Brahma and Indra in Sukkuram are closely connected with the edited Dharani sutra, but the location and the arrangement are more related to Avatamasaka sutra or Avatamasaka ideas which was prevalent in the Unified Silla. It is consistent with the religious tendency of the patrons to the construction of Sukkuram toward Avatamasaka, the character of the principal Buddha and the major roles of Brahma and Indra in Avatamasaka sutra.
Brahma and Indra statues in the late Unified Silla have not been recognized except for a few reliefs on pavilion stupas. We can rediscover Brahma and Indra among the images which have been recognized Buddhisttvas or devas. Brahma and Indra in the period are classified into four types by the costume, the holding of scared goods and their posture. Usually the engraved Brahma and Indra on the stone pagodas or Sartra casket adopt the icons of the status from those of Sukkuram. On the other hand, the images on the pavilion stupas or the pedestal of stone Buddha take Chinese style in their robes and pedestals. The icons of following era, Goryeo. Compared with Chinese or Japanese sculptures it is the distinguished character of Korean Brahma and Indra sculpture which succeeded to the Sukkuram' canon instead of following the icons of the Esoteric Buddhism.
Brahma and Indra engraved on the stone buildings are the important elements to determine the character of the buildings combining other deities as Four Heavenly Kings or Vajrapani, etc...They have roles that establish the order of the Buddhist world or protect the inner contents of the stone buildings. The ways of combining other deities suggests the relationship with not only the kinds of the stone buildings but also the types of Brahma and Indra ic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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