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麗時代 打出工藝品 硏究 = (A) study on repousse> Artefacts of the Koryo˘
저자
발행사항
서울 : 弘益大學校 大學院, 2003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석사) -- 홍익대학교 대학원 , 미술사학과 한국미술사전공 , 2003. 8
발행연도
2003
작성언어
한국어
주제어
KDC
609.11 판사항(4)
DDC
739.5 판사항(20)
발행국(도시)
서울
형태사항
iii, 158p. : 삽도 ; 26cm
일반주기명
참고문헌: p. 99-110
소장기관
打出(repousse´)은 금속판의 안팎에서 釘과 망치로 두드려 도드라진 문양을 표현하는 것으로써 入絲와 함께 고려시대 금속공예의 대표적인 장식기법이다. 이는 본래 사산朝(Sasanian, 224∼651)에서 발달한 것이나 중앙 아시아를 거쳐 중국 唐代에 발전하였으며 이후에는 宋·遼, 특히 燕雲16州(河北, 山西 北部)를 차지하고 漢族의 官制와 文化를 흡수한 遼가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따라서 삼국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타출이 고려시대에 갑자기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은 당시 遼와의 긴밀했던 관계가 주목된다. 본 논문의 목적은 타출공예품의 전반적인 고찰을 통하여 고려시대 금속공예의 발전 양상을 알아보고 遼와의 대외교섭 정황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打出' 의 용어는 근래에 붙여진 것으로 이는 사산조 이란에서 발달하여 중국, 우리나라에 전해졌기 때문에 각국에서 부르는 용어가 아직 통일되지 않았다. 또 한 타출기법에 관한 문헌자료도 전하지 않아 당시에는 어떤 단어로 불리웠는지 알 수 없지만 「高麗史」중 國信物에 대한 묘사 기록을 통하여 '鏤', '鈒' 이 '起突', '滿' 字와 함께 표현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우리나라의 전통 장인들은 '高刻' 과 '肉刻', 흑은 더 입체적인 것은 '高肉刻' 으로 도드라진 문양의 표현기법을 일컫기도 하며 현재는 일본과 같이 打出로 통용된다.
우리나라 타출공예품의 이른 예는 백제 무령왕릉 출토의 <金製뒤꽂이>와 신라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銀製盞>, <金製팔찌>, 그리고 식리총의 <金銅飾履>를 들 수 있다. 이 유물들은 타출의 낮은 단면에서 벗어난 수준을 보이며 신라의 경우에는 사산조 이란과의 관계에 대한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통일신라시대에는 舍利器를 중심으로 魚子文기법과 함께 간략적으로 타출을 표현하였다. 그러나 고려 文宗 年間(1047∼1082) 중심의 11, 12세기에는 「高麗史」의 國信物 품목에 대한 언급을 통해 宋·遼와 많은 은기를 주고 받았던 것이 확인되었다. 더욱이 「宣和奉使高麗圖經」(1123)의 기록에 의하면 遼의 기술자가 관영수공업에 투입되었다고 전하므로 遼의 타출기술이 고려에게 영향주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高麗史』 卷16(仁宗2年, 1129)에서 고려인들이 신분의 관계없이 사치하고 거란의 풍속을 본받아 고치지 않는 한탄의 내용에서도 알 수 있었다. 즉 12세기를 중심으로 遼의 영향 아래 高肉刻의 타출기법이 발전하였으며 이는 남아 있는 유물의 종류와 문양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확인되는 고려 타출공예품은 약 40여건이며 대부분 銀製鍍金에 高肉刻으로 표현한 것이 주류를 이룬다. 이것은 좋은 탄성력을 지닌 銀이 金에 비해 값이 저렴하고 銀所를 통한 銀의 공급이 풍부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타출공예품은 일상용구(식기류·화장용구·장신구)와 불교용구(경갑 및 향합·불감)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이 중 장신구인 팔찌, 裝刀, 과대 및 교구와 불교용구인 경갑 및 향합 종류가 많이 전한다. 이는 곧 타출이 실용적인 것보다 장식적인 器物에 보다 폭넓게 응용된 것을 알 수 있으며 당시 수요층도 상류계층인 왕과 귀족들이 향유했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12세기에 발전한 타출기법의 특징은 高肉刻으로 타출된 단면이 높고 오메가형[Ω]이다. 銀製鍍金에 打出한 瓢形甁의 경우에는 금속판의 안쪽에서 두드린 뒤, 다시 바깥쪽에서 그 여백면을 눌러주는 방법으로 나타내었다. 더욱이 세부는 陰刻으로 세밀하게 표현하여 전체적인 문양이 마치 따로 떼서 붙인 것처럼 입체적이다. 이외에도 국립중앙박물관의 經匣를 보면 半鑄造로 만든 틀 위에 판을 덧댄 뒤 두드리는 압출기법으로 제작하였으며 몇몇 사례에서는 동일한 釘의 사용도 확인하였다.
일부 器皿을 중심으로 타출이 응용된 宋과는 달리 遼는 여러 종류에서 높은 단면의 타출기법을 나타내어 고려와의 연관성이 보였다. 표형병의 기형은 遼에서 원류를 찾을 수 있는 것으로 고려는 高肉刻의 타출표현과 함께 매와 같이 큰 코에 양날개끝이 둥글고 긴 꼬리가 없는 봉황을 독특하게 표현하였다. 팔찌와 裝刀에 표현된 海棠花紋(菱形紋)이나 타원형의 葵花紋은 元代 유행 이전에 遼의 영향으로 성행하였음을 추측하였다. 경갑 및 향합은 유목민족인 遼의 영향으로 신라 시대에 존재했던 요패장식이 새롭게 재등장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고려는 遼의 花形 盒과 달리 方形과 圓形을 이루며 연꽃을 잡고 있는 동자들을 원앙, 오리, 학과 함께 배치하는 주체적인 수용과정을 나타내었다. 또한 원앙과 오리의 많은 표현들은 당시 유행했던 蒲柳水禽紋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었다. 국립춘천박물관 소장의 香盒은 遼代 河北省 宣化區 張文藻(1029∼1074)墓의 벽화와 유사하면서 배경이 야외로 바뀐 모습이며 여기서 출토된 <木製鏡架> 역시 국립중앙박물관 <金銅製거울걸이>와의 관련성을 확인하였다. 이외에도 표형병과 팔찌, 裝刀는 유사한 타출표현으로 셋트제작되고 하나의 고분에서 동반출토된 유물이었음을 추정하였다.
고려시대 후기에는 元에 의한 수탈과 銀의 부족, 도자기의 본격적인 생산으로 타출단면이 낮아지고 점차 줄어들었지만 고려 말의 불감, 사리기와 조선 초기의 기록을 볼 때 金銀器는 계속 제작된 것으로 판단되었다. 조선시대 이후에는 많은 타출공예품이 보이지 않지만 법주사 팔상전의 舍利具와 金銅받침(1605)이 전하는 것으로 볼 때 타출기법의 명맥은 계속 이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고려시대의 高肉劑 타출은 이전시대부터 있었던 타출이 唐의 문화를 계승한 遼의 영향에 의해서 본격적인 장식기법으로 이루어졌으며 당시 뛰어난 수준의 금속 공예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앞으로 고려와 遼의 문화교류를 알 수 있는 타출공예품이 더 발굴되기를 기대하며 더 나아가서는 고려와 遼의 관계가 새롭게 재조명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This study aims to examine the development of metal artefacts of Koryo˘ period through general investigation of repousse´(打出) artefacts. Also to figure out international negotiation conditions between Koryo˘ and Liao(遼). Repouss6, a representative method of metal artefacts in a ornament method that expresses plastic design through hitting inside and outside of the metal plate by a chisel. This was generated in Sasanian(사산朝) in the first place, than after via mid-Asia got later developed in Tang(唐) period. After that Song(宋) and Liao, especially Liao which adopted Han's(漢族) system and culture and dominates Yeonun sixteen province(燕雲16州) agressively adopted repousse´. Therefore state that repousse´ which had existed before Three Kingdom was notable in Koryo˘ is related with the close relationship between Koryo˘ and Liao at the time.
'Repousse´' is a term recently used. As repousse´ appeared in Sasanian at first than went through mid-Asia, China and later was introduced to Koryo˘ the term wasn't unified at that time. In addition, there isn't any precedent record about the term so it's hard to reveal the word that was used for the term at the day but through description of guksinmul(國信物, offical barters between countries) from Koryo˘sa(「高麗史), Histories of Koryo˘) the fact that the word 'lu(鏤, engrave)' , 'sab(鈒, engrave)' was expressed with 'gidol (起突, projection)' , 'man(滿, full)' was presumed. Korean traditional craftsmans used .the term 'gogak(高刻)' , 'yukgak(肉刻)' or 'goyukgak(高肉刻)' for three emboss design method and now repousse´ is commonly used in Korea and Japan.
First, gold-hairline(金製뒤꽂이) excavated from the Paekjae's Muryo˘ngwang-nung(백제 무령왕릉), silver-cup(銀製盞), gold-bracelet(金製팔찌) excavated from the Hwangnam-Dech'ong(皇南大塚) and gilt-bronze shoes(金銅飾履) of Shingni-ch'ong(飾履塚) are considered as artefacts that were attempted a precedented method of repousse´. These remains show the level beyond repousse´ of low section and provide important records about relation between Silla and Sasanian. During Unified Silla period, sari-ra case(舍利器, Buddha's bones vessel) was briefly presented with ring punched ground(魚子文) method. But after that in the time of Munchong(文宗, rgn. 1047∼1082) in 11th and 12th century, many records of guksinmul from Koryo˘sa prove that Koryo˘ interchanged lots of silver vessel with Song and Liao. Furthermore according to the record of Seonhwabongsakoryo˘dogyong(「宣和奉使高麗圖經」) Liao artisans were ordered in Government Industry(宣營手工業) so it's regarded that Liao's repousse´ craft had influenced Koryo˘. This could be confirmed from the content of Koryo˘sa volume16 that Koryo˘ people regardless of their social positions adopted Kitan(契丹) way of life and indulged in luxury. So We could find out that Koryo˘ repousse´ mathod of goyukgak and this could be confirmed by kinds and design of remains.
Up to now about 40 items of Koryo˘ repousse´ artefacts are discovered and most of them are presented by gilt-silver with goyukgak. This is due to lower price of silver than gold and it's elasticity which was suitable for manufacture and silver mines made sufficient supply of silver. Repousse´ artefacts classified into things of daily necessity(tab1e waresㆍpersonal ornamentsㆍmake-up set) and things of Buddhism(sutra boxesㆍincense boxesㆍshrine), especially bracelet, knife case and belt ornaments which are personal ornaments and sutra boxes(經匣) and incense boxes(香盒) which are mostly found in Buddhism. Judging from these, we can figure out that repousse´ was not applied at practical things but demanded greatly by king or the nobility as an ornament.
Characteristic of repouss6 method of goyukgak developed in 12th century is the method that hits inside of a metal plate and presses the outside of the design which can be found at gilt-silver repousse´ the bottle gourd. Intaglio presented minute parts.
Unlike Song that applied repouss6 to same vessels, Liao used various sorts of repouss6 method of high section and presented the relevance to Koryo˘. The bottle gourd could find its orgin from Liao and Koryo˘ which presented a Chinese phoenix that has big nose like a falcon and wings with rounded tip without a long tail in a unigue way. Sutra boxes and incense boxes prove the reappearance of belt ornaments that existed in Silla under the influence of Liao. Koryo˘ indepently accepted it by arranging children who are grabing lotus flower in squre and round shape with mandarin ducks, ducks and cranes.
Gilt-silver the incense box from National Museum of Chuncheon has the similarity with the wall painting from the tomb Jangmunjo in Hubei country (河北省 張文藻墓). The fact that made wood mirror-stand which was excavated from the same place has relevancy to gilt-bronze mirror-stand from National Museum of Korea could also be confirmed. Besides, a set of the bottle gourd, bracelet and knife case were manufactured with similar repousse´ presentation and assume that they were the remains excavated from the same tomb.
In the late Koryo˘, although repousse´ section got lowered by the exploitation by Yu¨an, shortage of silver and full-scale manufacture of pottery, judging from shrine and sari-ra case in the late Koryo˘ gilt-silver case was produced continously. After Choso˘n(朝鮮) period, a number of repousse´ artefacts can't be seen from gilt-bronze sari-ra case of Beopjusa(法住寺, a temple of Beopjusa) tells that repouss6 method was used continually.
Repousse´ which had existed before Koryo˘ periodd developed into full-dress ornament in Koryo˘ under the influence of Liao that succeeded to the culture of Tang and it showed high level of metal artefacts.
More examine of repousse´ artefacts should be conducted to examine the cultural exchange between Korybo˘ and Liao and continous interest from various field of art history is required to shed a new light on the relation between Koryo˘ and Li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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