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의 近代化에 있어서 中人層의 활동에 관한 硏究 = A Study on the Activities of Chungin(中人) in the course of Korean Modernization
본서는 한국사회의 近代化 과정 속에 나타난 中人들의 활동에 관한 연구이다. 본 서는 2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장에서는 중인들이 開化思想을 수용하게 된 배경을 다루어 보았다. 2장에서는 한국의 개화를 위하여 중인들은 어떠한 노력을 하였는가를 짚어보았다. 그러니까 본서는 중인들의 개화사상 수용배경과 그들의 개화활동에 관한 연구가 되는 셈이다. 본고에서 다루는 시기는 대체로 19세기초부터 그 말까지다.
중인들의 개화사상 수용배경을 이해하기 위하여 필자는 다음의 두 가지 점에 주목하였다. 먼저 우리 나라의 開化思想이 實學의 近代 指向的인 성격을 계승하였다는 점을 감안하여 중인실학자를 살펴보았다. 본고의 처음에 실린 「徐慶昌의 학문과 활동-특히 그의「生財論」과 『種藷方』의 편찬을 중심으로-」가 그것이다. 다음으로는 조선후기 중인들의 사회적 지위와 그들의 사회인식을 알아보았는데,「金相淳의 활동과 사회인식」과「1851년의 중인通淸運動과 중인층의 동향」은 이 점과 관련된 것이다.
한국의 근대화를 위한 중인들의 구체적인 활동에 대해서는 제 2장에서 다루었다. 여기에 실린 글은 두 편으로「金景遂의 『公報抄略』」과「高永周와 그의 형제들」이다. 이들은 모두 1880년대 후반기에 개화사상가로 활동한 자들로 중인들의 개화운동의 실체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본서에서 논의될 사항들을 간략하게 요약해 보겠다.
서경창은 이서출신 중인으로 錢穀을 관리하던 자였다. 그는 특히 국가경제의 증진과 민생의 안정에 지대한 관심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 점에 대한 그의 견해는「생재론」에 잘 나타나 있었다. 여기에서 그는 유통구조의 개선, 무역의 중요성 등을 역설하였다. 이러한 것들은 흔히 실학사상의 근대 지향적인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어서 주목되었다.
『종저방』은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는 고구마의 재배법 등을 소개한 책으로 서경창의 과학적인 학문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이 책은 또 정부에 의하여 전국 팔도에 보급되어 고구마가 구황작물로 자리 잡고 백성들의 기근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서경창은 한글로 된 『종저방』을 만들어 한자를 모르는 농민들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여, 하층민을 배려하는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김상순의 활동과 사회인식」은 중인들의 사회적 지위와 그들의 사회인식을 살펴 본 글이다. 김상순은 특히 그의 아들 김경수가 훗날 개화사상가로 활동하였다는 점에서 중인들의 개화사상 수용배경을 이해하는 데 좋은 사례연구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김상순은 전형적인 중인집안 출신의 역관으로서 그 능력을 인정받고 있던 자였다. 이는 그가 2차례에 걸쳐 三代追榮을 받았으며 최종관직이 崇祿大夫 知中樞府事 였다는 점에서 알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여러 차례 燕行을 하였는데, 역관에게 있어 연행이 경제적인 이익을 취할 수 있는 기회인 점을 감안하면 그의 경제적 처지가 어떠하였을까는 짐작된다.
그러나 이러한 김상순도 중인이기에 겪어야 하는 사회적인 차별인 피할 수 없었다. 전통적인 신분질서에 대한 그의 불만은「自警文」에 잘 나타나 이었다. 그는 여기에서 "심지어 臺諫의 奴隸들조차 나를 사람으로 대하려 하지 않는다"하면서 강한 불만을 토로하였다. 그가 1851년의 소위 중인통청운동에 깊숙이 개입하게 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김상순의 예에서 보이는 것처럼 조선후기의 중인들은 사회에 대한 불만이 매우 강하였다. 그들이 비록 양반과 함께 지배계층에 속하였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처한 사회적인 지위는 양반과는 비교될 수 없었으며 많은 차별을 받고 있었다. 그 결과 중인들은 전통사회의 질서와 그 질서를 가능하게 한 전통사상에 깊은 불만을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조선후기 중인들이 누구보다도 먼저 새로운 문물에 눈을 돌리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조선후기 天主敎의 수용 과정에서 나타난 중인들의 행동으로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중인들의 개화사상의 수용 배경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하여야 한다고 본다.
「1851년의 중인통청운동과 중인층의 동향」에서는 통청운동자료에 대한 분석과 함께 통청운동의 배경 및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와 함께 통청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약 60여 명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그들 중 대부분은 저명한 중인가계에 속한 자들이었음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이 글에서 얻어진 것 중 가장 주목되는 바는 통청운동 가담자들의 후손들이 해외 문물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중인 개화사상의 수용배경이 사회에 대한 깊은 불만에서 비롯하였음을 입증하는 좋은 증거가 될 것이다.
중인들의 구체적 개화활동을 연구한 부분에서 처음으로 다룬 김경수는『공보초략』의 편자로 알려져 있는 자이다. 『공보초략』은 「敎會新報」·「萬國公報」 등 당시 중국에서 발간되던 신문에서 우리 나라의 개화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글만을 모아 편찬한 책이었다. 이 책은 편찬되자마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는데, 일부 논설이 우리 나라 최초의 근대식 신문인 漢城旬報에 소개되었다는 점이나 또는 異本의 『공보초략』이 나왔다는 데에서 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당시 적지 않은 중인개화사상가들이 있었겠지만, 김경수처럼 개화사상을 보급할 목적에서 어떤 저술을 남긴 예는 없지 않나 한다.
본고의 마지막에서 살펴본 고영주와 그의 형제들은 무엇보다도 형제 모두가 개화사상가로 활동하였다는 점에서 필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고영주의 형제라면 高永喜와 高永喆을 말한다. 고영희는 紳士遊覽團의 隨員으로 그리고 고영철은 領選使의 學徒와 報聘使의 수원으로 활동한 자이다. 특히 고영주는 위『공보초략』의 편자인 김경수의 제자라는 점에서 중인개화운동의 흐름을 짚어보는 데 도움이 있을 것이다.
The aim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activities of Chungin in the course of Korean Modernity in the late chosun dynasty. This book is divided into two parts. At first part, I tried to explained the reason why Chungin accepted enlightenment thought earlier than any other. At second, I introduced two translator-interpreter who did their best for korean Modernization. The term I have dealt with in this paper was from the beginning to the end of 19C.
For the purpose of understanding the reason of Chungin' s accepting enlightenment thought, I have focused my interest into two aspects in the I chapter. Considering the korean enlightenment thought being much influenced by Sil-hak(實學, Practical learning), I paid attention to a Chungin Sil-hak thinker. Seokyungchang's learning and his activity was written for it. Next I have looked around the status of Chungin class and their recognition to society in the late chosun dynasty. In this part I have discussed about Kim sang-soon(김상순) and Chungin Tongchung Movement(中人通淸運動) in 1851.
In chapter II , I have investigated concretely the endeavor of chungin for Korean Modernization. In here, I prepared two articles. that were Kim kyung soo and his Kongbocholtak and Koyoungjoo and his brothers. Both of them were enlightenment philosopher. in the late 1880s. Now Let me introduced briefly what I have explained in this paper.
Seokyungchang was a pretty official of Central Government, and he was in a position related to money and grain of country. So he could know well nation's economic situation. He cared much either for nation's wealth or stability of the lower classes. It was his Sangjealon(生財論) that involved his thought. In this, he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trade and insisted on the improvement of the method of transportation. Especially it was remarkable that what he said seemed to be modernistic factors of Silhak.
Chongjeobang(『種藉方』) was a book which introduced how to grow sweet potatoes. In here one could see that Seokyungchang was an experimentalist with scientific thought. Chongjeobang was distributed at all around the country by Government. So it gave a big help to common people who wanted to grow sweet potatoes. Also Seokyungchang made Chongjeobang in korean, let peasants who didn't know chinese characters read it easily. Here we perceived that he had sympathized low classes.
At Kim sang-sun's service and his recognition to society, I examined the social status and consciousness of Chungin in chosun dynasty. As one of his son, Kimkyungsoo(金景遂) was a enlightenment thinker, so it seemed to be a good example to understand the background of Chungin's accepting enlightenment thought.
Kimsangsun was born from a Chungin lineage where a large number of translator-interpreters(譯官) had come since the 17C, and so did he. He had both position and money. The government post of him was Sunglokdeabu Jeechungchubusa(崇祿大夫 知中樞府使). His three generation had conferment of honors because of him.
Also he had visited chinese many times as a translator-interpreters. Considering that it would be a good chance getting money for translator-interpreters to visit chinese, there can be no doubt that Kimsangsun made much money through it.
But Kimsangsun could not avoid distinction from Yangban(兩班). We are to pry into it through Chayungmum(自警文). In that he said that even a slave who worked at Daegan(臺諫) looked down upon him. So it was reasonable for him to play an important role in Chungintongchung movement(中人通淸運動) in 1851.
In fact Chungin class in Choson dynasty was unsatisfied with traditional korea. Although they were a part of ruling class with Yangban(양반), but status of both them could not never compatible. Chungin had to put up with the despair of yang ban. So it was natural that chungin changed his mind to a new material. It was the reason that chung in accepted The Cathoric in the late chosun dynasty.
At 1851 Chungintongchung movement and their tendency, I have analyzed the documents relating to that movement and explained the background of movement. Beside I watched out 60 persons who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that movement. In this essay. I concluded that even a distinctive Chungin was not a person who could avoid of despair of Yangban. I hope that it can give a Key to understand the background of Chung in's accepting enlightenment thought.
Kimkyungsoo(金景遂) was one of an enlightenment thinker. He had edited the book named Kongbocholyak(『公報抄略』) in 1879, which was compiled from such chinese newspaper as the Mission news(敎會新報) and the Grobe magazine(萬國公報). In these newspaper, Kimkyungsoo selected some articles that could be helpful to korean modernizing. As sorn as that book was out, many persons who had interested in korean modernizing, thought this book would be useful for korean modernizing. So some articles of it was reprinted on the Hansung sunbo(漢城旬報) the first modernistic newspaper in traditional korea. I suppose that Kimkyungsoo and his Kongbocholyak is a peculiar example in Chungin enlightenment movement.
Fanally I wrote Koyoungjoo(高永周) and his brothers. As all of them acted as enlightenment thinker, it stimulate me to interest in. For example Koyounghee(高永喜), one of his brother, was a member of Sinsayouramdan(紳士遊覽團) which was a mission to Japan in 1881. and Koyoungchul(高永喆) was a student at Youngsunsa(領選使) and a member of- Bobingsa(報聘使). But what I regarded attentively above all was that Koyoungjoo was a disciple of Kimkyungsoo who was an editor of Kongbocholyak(公報抄略). So I wish it could give a hint to understand how the Chungin enlightenment movement was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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