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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沙 李廷龜의 戊戌辨誣 陳奏副使와 관련된 送別 기록 연구 = A Study of the Parting Records Related to Wolsa Yi Jung-gui’s Musulbyunmu Jinju B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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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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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per is a study of the five parting records related to Wolsa Yi Jung-gui’s Musulbyunmu Jinju Busa (1598) and will look into the following topics of Ding Yingtai’s false charges against Joseon, Wolsa Yi Jung-gueui‘s diplomatic endeavors to clear Joseon from Ding’s charge, and an analysis of the parting records related to Musulbyunmu Jinju busa.
Ming Dynasty’s zanhuazhushi Ding Yingtai brought false charges against Joseon three times as Imjinwaeran was ending and ceasefire negotiations between the Ming Dynasty and Japan were beginning. The first charge arose from differing points of view surrounding the defeat of Joseon-Ming allied forces in the Battle of Dosan Fortress which took place between December 22 of the 30th year of Seonjo’s reign (1597) January 4 of the 31st year of Seonjo’s reign (1598), but was resolved thanks to the endeavors of diplomatic envoys from both countries. Ding made his second false charge in June of the 31st year of Seonjo’s reign (1598), saying Yang Hao was trying to stop Japanese forces by building a fortress, but Joseon prevented conflict by reacting strongly to the charge. The third false charge made against Joseon on September 21 on the 31st year of Seonjo’s reign (1598) was resolved with the dispatch of investigators from Ming, King Seonjo’s strong reaction, and the selection of Wolsa Yi Jung-gui’s written documents defending Joseon’s name by envoys sent to China.
Wolsa Yi Jung-gui’s diplomatic work to defend Joseon involved composing a document clearing Joseon from false charges by refuting the claims one by one in four arguments. Jeongsa Yi Hangbok, Busa Yi Jung-gueui, Seojangwan Hwang Yeoil left Hanyang in November in the 31st year of Seonjo’s reign and arrived in Peking on January 24 in the 32nd year of Seonjo’s reign (1599). Wolsa accompanied Jeongsa Yi Hangbok and participated actively in clearing Joseon’s name, contributing to settling the problem of Ding Yingtai’s false charge. He returned to Hanyang on April 13 in the 32nd year of King Seonjo’s reign (1599). Keunmuk, edited by Wichang Oh Sae-chang and containing parting records relating to the Musulbyunmu Jinju Busa, contains five farewell records by writers and time periods that are clearly known and that are not in the collections with their handwriting. The writers are Kim Deok-gyeom, Kim Soon-myung, Yoon Geun Soo, Yi Dal and Hwang Jin. Of the poems, one is a quatrain with five characters, two are pentasyllabic regulated verses and two are heptasyllabic regulated verses. Of the rhyming characters which are in the neutral tone, ji is used twice, han once, gyeong once, and won once. The greater part of the poems express sadness over Wolsa Yi Jung-gui’s lonely and difficult task in taking care of Ding Yingtai’s false charge which so humiliated Seonjo, all in spite of Wolsa Yi’s poor health. Nevertheless, the poems also wish that Wolsa, with his well-turned verse and diverse diplomatic language, will induce the Emperor into resolving the conflict wisely. On parting with Wolsa, they record at length for Yi to be careful in the snow, that the moon will grow full and wane several times before he returns from the ten million ri journey, and that they shed tears over their hat strings thinking of Yi’s long journey and the difficulty of the task.
This study will be used in the basic future studies of private records as well as in those of bibliography, record management, history and Korean language.
이 글은 현재 남아있는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 1564∼1635)의 무술변무(戊戌辨誣) 진주부사(陳奏副使)(1598)와 관련된 5편의 송별 기록을 대상으로, 정응태의 조선무고사건, 월사 이정귀의 무술변무를 위한 외교활동, 무술변무 진주부사와 관련된 송별 기록의 내용분석 연구이다.
명의 찬획주사(贊畫主事) 정응태(丁應泰)는 임진왜란이 끝나가고 명․일 간에 정전협상이 시작되던 무렵에 조선에 대해서 세 차례에 걸쳐 참소하였다. 제 1차 참소는 선조 30년(1597) 12월 22일부터 이듬해 1월 4일까지 있었던 도산성 전투에서 조․명연합군의 패배로 인한 입장 차이에서 비롯되었지만 양국 간 외교 사절들의 노력으로 해결되었다. 제 2차 참소는 선조 31년(1598) 6월 정응태는 양호(楊鎬)가 성을 쌓아서 일본군을 막으려고 한 것에 대해 무고하였지만 조선의 강력한 대응으로 해결되었다. 제 3차 참소는 선조 31년(1598)의 9월 21일 조선을 대상으로 무고한 것인데 명의 조사자 파견, 선조의 강력한 대응, 월사 이정귀가 작성한 변무주문을 채택하여 중국에 파견된 사신들의 노력으로 잘 처리되었다.
월사 이정귀의 무술변무를 위한 외교활동에 있어서, 선조 31년(1598) 10월 21일 변무주문을 작성하여 조선을 무고한 각 사항에 내해 네 가지로 조목조목 논박하였다. 정사 이항복, 부사 이정귀, 서장관 황여일 일행은 선조 31년(1598) 11월에 한양을 떠나 선조 32년(1599) 정월 24일에 북경에 도착하였다. 월사는 정사 이항복을 따라다니며 변무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정응태의 무고를 해결하는데 일조하였고, 선조 32년(1599) 윤 4월 13일에 한양으로 돌아왔다.
무술변무 진주부사와 관련된 송별기록은 위창 오세창이 편집한 『근묵』에는 인물과 연대가 분명하면서 문집에 수록되지 않은 김덕겸(金德謙), 김순명(金順命), 윤근수(尹根壽), 이달(李達), 황진(黃璡) 5명 송별 기록이 필자의 필적과 함께 남아 있다. 시의 형식은 오언배율 10구 20행 1편, 오언율시 2편, 칠언율시 2편이다. 운자는 지(支)자 운통의 평성운자 2회, 한(寒)자 운통의 평성운자 1회, 경(庚)자 운통의 평성운자 1회, 원(元)자 운통의 평성운자 1회가 사용되었다. 시의 내용은 대부분 선조가 정응태의 무고로 심한 치욕을 당하여 깊은 원한을 품게 되었고 외로운 신하인 월사 이정귀가 이를 해결하는 임무를 맡았으니 이 여정이 얼마나 힘들 것인지를 가슴 아파하고, 월사의 문장과 외교사령의 문채가 다채로워 정성을 다하여 외교를 펼쳐 황제가 현명하게 해결해 줄 것이라고 기원하고 있다. 또한 그를 떠나보내는 마음들의 표현은 요동의 매서운 눈에 조심하기를 바라고, 서로 그리워하는 길이 천만리여서 달이 몇 번이나 차고 이지러질 것이며, 떠나는 먼 길과 일의 어려움을 생각하니 눈물이 흘러 갓끈을 적신다고 절절하게 기록하였다.
이 연구는 향후 민간기록의 연구는 물론 서지학, 기록관리학, 역사학, 국어학계에 가장 기본적인 연구 성과로 활용될 것이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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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9-03-20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The Institute of Korea Bibliography -> Korean Society of Bibliography | KCI등재 |
2019-03-19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Journal of the Institute of Bibliography -> Journal of Studies in Bibliography | KCI등재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3-05-06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서지학회 -> 한국서지학회영문명 : The Institute Of Bibliography -> The Institute of Korea Bibliography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4-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1998-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47 | 0.47 | 0.46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45 | 0.42 | 1.107 | 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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