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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내 성지의 교회사적 의의
저자
정종득 (수원교회사연구소)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08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KDC
231
등재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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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7-46(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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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공처
‘미리내’는 은하수를 뜻하는 순우리말로 1840년대 경기도 양성현(陽城縣) 읍지(邑誌)에서 금곡면(金谷面)에 속한‘미이천리(彌迤川里 )’라는 동네 이름으로 그 명칭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곳은 1846년 병오박해 직후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방인성직자 김대건 신부님의 시신이 묻혔던 곳일 뿐만 아니라, 병오박해 직전인 1846년 1~4월 약 4개월간 김 신부님이 용인 은이 지역을 중심으로 사목활동을 할 당시에 이곳 미리내의 최 회장 댁에 설정되었던 미리내 공소에도 사목순방을 왔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김대건 신부님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유서깊은 성지이다. 또한 김대건 신부의 장상으로서 신학생 김대건에게 부제품과 사제품을 차례로 손수 부여한 제3대 조선대목구장 페레올 고(高) 주교의 무덤과 김 신부의 어머니 고 울술라의 무덤도 함께 묻혀 있는데, 페레올 고 주교는 김대건 신부의 영적인 지도자로서 아버지 신부님과 같은 분이시며, 김 신부가 철저하게 순명하고 정성을 다해 보필한 분이셨기에, 교회 장상에 대한 김 신부의 순명의 정신을 잘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고 울술라는 김대건 신부가 1846년 입국 이후 약 4개월간의 짧은 기간이나마 함께 모시고서 그동안 자식으로서 못다한 효성을 바치고자 했던 친어머니이므로 김대건 신부의 효심과 성직자를 아들로 둔 어머니의 자애심을 동시에 드러내주는 분이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분들의 무덤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김대건 신부 현양의 의미를 더욱 잘 드러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미리내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미리내는 또한 병인박해 직전인 1860년대 초부터 내한 프랑스 선교사 칼레 신부의 1862년 10월부터 1863년 10월까지 사목활동의 거점이었다. 또 뒤이어 내한한 오메트르 신부의 1864년 10~11월부터 1865년 11월까지 여름철 은거지 겸 사목활동 보고서와 서한을 작성한 곳으로서, 오메트르 신부님의 사목활동 거점이기도 했던 곳이었다. 이곳에서 박해시기의 프랑스 선교사들은 신심 깊은 교우들의 보호를 받으며, 공소순방 후의 피로를 풀고, 정기적인 기도생활과 묵상, 저술, 서한 작성 등의 여가활동을 통하여 다음 공소순방에 필요한 체력을 보강하고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미리내는 박해시기 선교사의 안전한 은신처이자, 공소순방에 필요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쉼터와 같은 곳이었다. 미리내 성지에는 병인박해기로 추정되는 시기에 인근의 수원 및 광주 유수부 관아에서 순교하여 미리내 인근의 응다라니, 수지, 한덕골 등지에 그 시신이 묻혔다가 이곳으로 이장된 순교자 17위의 무덤이 위치해 있던 곳으로서, 이윤일 성인으로 밝혀진 한덕골에서 이장된 묘를 제외하고 16기가 지금까지도 무명 순교자 묘역에 모셔져 있다. 그러므로 미리내 성지에는 세속적인 부귀영화는 물론이고 자신들의 이름조차 남기지 않고 하느님께 당신들의 모든 것을 온전히 봉헌하신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의 겸손과 봉헌의 정신이 묻어나고 있다. 그리하여 이곳을 찾는 순례객들은 이들 무명순교자들로부터 진실한 신앙생활을 귀감을 발견하고 본받을 수 있게 된다. 미리내는 김대건 신부님의 안장으로 인해 한국 순교자 현양의 근원지중 하나가 되었고, 뒤를 이어 기해·병오박해 순교자 82위의 가경자 선언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신 페레올 주교님의 안장, 1896년부터 1929년까지 33년간 미리내 본당에서 사목하면서 미리내를 성지로 가꾸고 김대건 신부 경당 등을 건립한 강도영 마르코 신부의 무덤으로 순교자 현양의 의미가 더욱 확대되고 굳어졌다. 여기에 무명순교자들의 묘소까지 이장됨으로써 박해시기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국 천주교회의 순교역사와 순교자 현양의 흐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게 함으로써,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순교성지, 순교자 현양의 대표적 근원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더보기The word Mirinae is originated from the village name Meecheonri(彌迤川里) which appeared in the provincial geography book of Yang-seong(陽城) county in 1840s, and the village was belong to Geum-gok(金谷) subcounty at that time. Mirinae shrine is a famous and historic holy place which has been closely connected with St. Rev. Kim Dae-geun Andreas. Here is the tomb of priest Kim Andreas who was the first native priest in Korean Catholic Church and was martyred in 1846. Besides this fact, it seems likely that father Kim Andreas has visited to this Kongso(公所) the secondary station whose master was catechist Choi(崔) during 4 months from January to April in 1846. And Mirinae has two more famous tombs, and the masters of them are all contemporary connected with priest Kim Andreas. One of them is Mgr. the 3rd Apostolic Vicar of Choseon, another Go Ursula the mother of priest Kim. Mgr. was the spiritual leader of priest Kim and was like his father as his senior, so we can see priest Kim's obedience to Mgr. Ferreol through the tomb. And we can also feel priest Kim's filial piety to his mother Go Ursula he tried to serve devotedly though the time was no more than about 4 months. Therefore we can say that These tombs makes the meanings of reverence for priest Kim more distinguished. Mirinae was not only the ministry base for priest Callais during one year from October in 1862, but also was priest 's one during one year from October or from November in 1864, and here they retired and have a good slack, writing letters, pastoral reports, doctrine publications, regular praying to God, being absorbed in meditation about 2 months long. And so they were able to prepare themselves for the next journey for ministry and to build up their physical strength. For these reasons, Mirinae was the safe selter and encouraging place for French priest during the persecution period. Mirinae had 17 anonymous tombs had been moved from neighboring Mirinae such as Eungdarani, Sooji, Handeokgol maybe in the Byeong-in persecution period. One of them from Handeokgol was known as the tomb of St. Lee Yoon-il John, and it was moved to the Archdiocese of Daegu in 1986, and there are 16 anonymous tombs remained in Mirinae now in 2008. And so very humble and devotional spiritual fragance of the anonymous martyrs is smelled in the Mirinae shrine, and consequently many pilgrims come here are able to find the example of their faithful lives. Mirinae has become to ones of the most honorable shrine because of the tomb of martyr priest Kim Andreas. And after that continuously the ones of Mgr. Ferreol who contributed decisively the 82 Korean martyrs' declaration of Venerables and Rev. Gang Do-yeong who made mirinae Holy Place by 33 year’s devotion also came to here, so the meaning of reverence was more strengthened and enlarged. Moreover the anonymous tombs moved to this place makes us pilgrims glance over the history of Korean church and the streams of reverence for martyrs, therefore Mirinae shrine became the representative holy place and became the most important origin of reverence for martyr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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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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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7-09-27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천주교 수원교구 유지재단 소속 수원교회사연구소 -> (재)천주교수원교구 수원교회사연구소영문명 : Suwon Research Institute -> Suwon Research Institute of Catholic Church History | KCI등재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11-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10-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2차) | KCI후보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2 | 0.2 | 0.21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25 | 0.24 | 1.637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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