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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마산지역 조선인 회사 생존기 - 원동무역주식회사를 중심으로 - = The Survival Story of a Korean Company in Masan during Japanese Colonial Era - Focusing on Wondong Trading Company -
저자
김예슬 (동의대학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22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73-120(48쪽)
제공처
This study analyzed the executives, capital and operation of Wondong Trading Company a representative Korean company located in Masan, by period based on ≪List of full-time executives and personal information of 元東貿易(株)≫. It was to reveal the status of the company's existence.
Through this study, (1) The Wondong Trading Company was established in December 1919 under the leadership of Koreans from Masanpo, and it was confirmed that some national activists, such as Myeong-Doseok, who led the March 1st Movement in Masan, and Jeong-Jaewan, who worked hard to finance the independence movement through Baeksan Trading Co. In addition, it is judged that the reason that 'domestic and foreign product trade and consignment sales' was promoted as the business purpose of the company at the time of its establishment was to respond to the situation of a local product collection center and a Japanese company monopolizing the transportation warehouse and distribution business.
(2) In the 1930s, it was confirmed that Wondong Trading Company expanded its executives and capital composition from its establishment, but still had a high proportion of Masanpo Koreans, and continued to participate in local education and social activities such as participation in commerce and industry promotion discussion meetings. In addition, as the participants of the national movement continued to take on the role of executives, new administrative bureaucrats entered the company, and the two groups with opposite personalities coexisted. During this period, the business purpose of the company was changed to rice sales business according to the regional economy transforming into a rice collecting center.
(3) In the 1940s, Wondong Trading Company gradually decreased in the number of executives from Masanpo, and was operated separately as a head office (Gyeongseongbu) and branch (Masanbu and Busanbu). In particular, in May 1939, when Jo-Jooyoung took office as the CEO and a major shareholder with 1/3 of all stocks, it was judged that the company was effectively managed by a single person. During this period, the company operated a designated rice mill in Gyeongnam and made a large amount of national defense donations from 1940 to 1941.
In short, Wondong Trading Company was established in December 1919 under the leadership of the Koreans in Masanpo, advocating nationalist consciousness. In the 1940s, it was placed under the influence of a small number of executives and participated in the Japanese-controlled economy, transforming the anti-Japanese consciousness into a somewhat faded form. Nevertheless, the company was closed for as long as 26 years or remained until liberation without being absorbed or merged with Japanese companies, showing how Korean companies in the local economy under Japanese colonial rule changed and survived.
본 연구는 ≪元東貿易(株) 전 중역 명단 및 인적사항≫을 바탕으로 마산의 대표적인 조선인 회사 원동무역(주)의 중역, 자본, 운영에 관해 시기별로 분석하여, 일제강점하 지역경제 속 조선인 회사의 존속 실태를 밝히는데 목적을 두었다.
이 연구를 통하여, (1) 원동무역(주)은 1919년 12월 마산포 출신의 조선인들 주도 아래 세워졌고, 민족주의 의식을 표방한 만큼 마산의 3‧1운동을 이끈 明道奭, 백산무역(주)을 통해 독립운동 자금 조달에 힘쓴 鄭在涴 등 민족운동가들의 일부 참여도 이루어졌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설립기에 회사 운영 목적으로 ‘내외국물산 무역 및 위탁매매’를 내세웠던 것은 인근지역의 물산집산지가 된 상황과 지역 내외의 운수창고 및 유통업을 독점하고 있는 일본인 회사에 대응하기 위함으로 판단된다.
(2) 1930년대 원동무역(주)은 설립기보다 중역과 자본 구성이 확장되었으나, 여전히 마산포 조선인의 비중이 높고, 상공업 진흥 좌담회 참여, 癩豫防 기부, 교육 및 극빈자 구제비 지원 등 지역교육과 사회활동에 지속적으로 참가했음을 확인하였다. 또, 明道奭, 金轍斗, 李祐植 등 민족운동 참여자들이 계속해서 중역을 담당한 상황에서 새롭게 내서면 面協議員인 金喆祚, 固城邑會議員인 朴相堯, 府會議員인 金駿榮 등 일제강점하 행정관료 출신들이 회사로 진출하면서, 상반된 성격의 두 그룹이 공존하는 모습도 보였다. 아울러, 이 시기에 회사는 미곡집산지로 변모하는 지역경제에 따라 사업목적이 미곡판매업으로 변화되어 운영되었다.
(3) 1940년대 원동무역(주)은 점차 마산포 출신 중역 수가 감소하고, 본점(경성부), 지점(마산부와 부산부)으로 분리되어 운영되면서, 더 이상 마산포 조선인의 회사, 지역회사만으로 볼 수 없음을 확인하였다. 특히, 1939년 5월 趙柱泳(경성부)이 대표와 전 주식 중 1/3을 소유한 대주주로 취임하면서 사실상 1인 독점으로 회사가 경영되었을 것으로 판단되었고, 나아가 이 시기 회사는 경남의 指定 精米工塲을 운영하며, 1940년~1941년에 걸쳐 많은 액수의 국방헌금을 하였는데, 일제의 통제경제에 참여하는 모습을 통해 초창기에 내세웠던 취지가 옅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요컨대, 원동무역(주)은 1919년 12월 마산포의 조선인들 주도 아래 민족주의 의식을 표방하며 세워졌으나, 1940년대에 이르러 소수의 외지 조선인들 영향 아래 일제의 통제경제에 참여하며 항일의식이 다소 퇴색되는 모습으로 변모하였다. 그럼에도 이 회사는 무려 26년간 폐업되거나, 일본인 회사에 흡수‧병합되지 않고 해방 전까지 존속됨으로써, 일제강점하 지역경제 속 조선인 회사가 어떻게 변해가며 생존하는지 그 실태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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