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윤과 3.1운동 = Hyun Sang-Yoon and the March First Movement
저자
김기승 (순천향대학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08
작성언어
Korean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3-40(28쪽)
KCI 피인용횟수
2
제공처
Hyun Sang-Yoon, a teacher in Bosung School, was one of the key persons in the March First Movement. However the historical studies on his independence movement have not done much. The historical studies of the March First declaration of Korean independence were focused on the thirty three representatives, who signed the manifesto. Hyun Sang-Yoon was not the one of the thirty three representatives. His mission was one of the second leader group, who planned and led the March First Movement from behind. This study deals with his real role in the Mrch First declaration of Korean independence.
He gave aid to the Korean students in Tokyo, who declared the Korean independence at 8th, February in 1919. Their declaration of Korean independence ha influence on the March First Movement in their homeland. He was the first man, who met Son Gye-Baek, a messenger of Korean students in Tokyo, and communicated the fact to the Chundogyo leaders such as Choi Rin, Kwon Dong-Jin, Oh Se-Chang and Son Byung-Hee.
The March First Movement was planned and led by the religious leaders. Chundogyo, Christianity and Buddism were the big and influential organization in Japanese colonial period. These three powerful religious group joined one another for the Korean independence declaration against Japanese colonial rule. Hyun Sang-Yoon and Choi Nam- Sun communicated the Chundogyo leaders’ plan of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to the Lee Seung Hoon, who was the influential leader of the Korean Christianity. By Hyun and Choi’s truly patriotic mediation, the cooperation between the Chundogyo leaders and the Christianity leaders was possible.
Hyun Sang-Yoon wrote his memories of the March First Movement in 1946. His momories are vivid and real, so they have important historical value. The official records by Japanese colonialism do not say the facts which Korean independence leaders did not want to open to public for the fulfillment of independence movement and their friends’ safe. This means that his memories have the importance as the historical evidence on the March First movement.
Key words: Hyun Sang-Yoon, Choi Nam-Sun, Song Jin-Woo, Choi Rin, March First Movement, Chundogyo, Christianity, Korean students in Tokyo
1919년 보성학교 교사였던 현상윤은 3.1운동 초기 단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3.1운동에 대해서는 거의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3.1독립선언에 대해서는 민족대표 33인에게 주로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현상윤은 3.1운동 기획단계부터 핵심점인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민족대표 33인이 검거될 경우, 2선에 남아 계속하여 독립운동을 지도하는 임무를 맡았으나, 불행히도 33인과 함께 검거되면서 3.1운동 실행 단계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현상윤은 3.1운동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던 동경 유학생의 2.8독립선언이 이루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동경유학생 대표로 송계백이 국내로 왔을 때 그를 만나 2.8독립선언이 실행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동경에서의 독립운동 소식을 천도교 측에 알림으로써 천도교 측에서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할 수 있도록 하였다. 천도교 측과의 교섭은 최남선, 최린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3.1운동은 천도교, 기독교, 불교의 3대 종교계 지도자들이 연합함으로써 전개될 수 있었다. 이러한 종교계 연합의 아이디어는 현상윤, 송진우, 최남선 등에 의해 제기되었다. 이들은 이를 실천하기 위해 기독교의 이승훈과 연락하여 천도교 측과의 연합을 성사시켰다. 이로써 3.1독립운동의 실천이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송진우, 최남선, 최린 등의 의견이 맞지 않아 결렬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는데, 이를 중간에서 조정 역할을 담당했던 인물이 바로 현상윤이었다.
현상윤은 3.1운동의 초기 조직화 단계에 대한 귀중한 회고록을 남겼다. 그의 3.1운동에 대한 회고는 일본 측의 기록과 다른 사람들의 증언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사실적으로 정확하여 신빙성이 높다. 게다가 그의 회고에는 다른 기록에서는 확인할 수 없고, 경험자 그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사실들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독립운동의 성공과 동지의 보호를 위해 일제 강점기에는 공개할 수 없었던 내용들도 포함하고 있다. 이 점에서 그의 3.1운동에 대한 회고는 사료적 가치가 높다고 하겠다.
주제어: 현상윤, 최남선, 송진우, 최린, 3.1운동, 천도교, 기독교, 2.8독립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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