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상진의 사역과 그 역사적 위치 : 피어선기념성경학원의 그의 사역을 중심으로 = The Mission and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Sang-Jin Cha, Dean of Arthur T. Pierson Memorial Bible Institute
저자
류금주 (서울장신대학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4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63-88(26쪽)
KCI 피인용횟수
1
제공처
Arthur T. Pierson Memorial Bible Institute is one of the significant examples of the unitive movement which were sprung from the historic Pyeng Yang Revival in 1907. Sang-Jin Cha served as the first Dean of the Arthur T. Pierson Memorial Bible Institute for 7 years who was affiliated with Presbyterian Church. It had been a lengthy time which constituted as much as one third of his ministry as a Presbyterian divine.
He was ordained minister in the year of 1916, and his service to the Arthur T. Pierson Memorial Bible Institute covered the whole span of his ministry in the sense that he served the Arthur T. Pierson Memorial Bible Institute directly and indirectly. In that sense it is to be ascertained that he committed himself to the Arthur T. Pierson Memorial Bible Institute throughout the whole span of his life-long ministry. The period fell on that of the time when the Kyoung Sung Presbytery to which the Arthur T. Pierson Memorial Bible Institute affiliated separated itself from the Kyoung KI Presbytery in 1932. For illustrations, he paid condolence as the moderator-elected of the Kyoung Ki Tchoong Chung Presbytery to the Underwood family when the first President of the Arthur T.
Pierson Memorial Bible Institute passed away; he supported the Arthur T. Pierson Memorial Bible Institute in a great extent as then the minister-in-charge of the Seung Dong Presbyterian Church; he dispatched the Arthur T. Pierson Memorial Bible Institute students as evangelists to the Kyoung Ki Province even after his resignation from the Arthur T. Pierson Memorial Bible Institute.
As we have seen above, his works and endeavours whatever in Korean Churches had been ever centered upon the Arthur T. Pierson Memorial Bible Institute. Furthermore, his distinguished ecumenical spirit for the two major denominations(Methodist and Presbyterian) reached at large to the grand ecumenical spirit of the great H. G. Underwood. His ecclesiastical theology of the Cross and his strong conviction that Korean Churches firmly founded upon the Rock of Jesus Christ were noticeably identical with the theology of Underwood.
Actually Underwood visualized that the christianized Korea should step into the stage of the world in order to bring about the united Christendom of three nations of the Far East.
He had been visibly and thoroughly presented to the Korean churches as the real and the object lesson of the United Church of Korea, especially during the period when he acted as the Dean of the Arthur T. Pierson Memorial Bible Institute from 1922 to 1929. He was the first Presbyterian Dean of Arthur T.
Pierson Memorial Bible Institute under the Japanese reign of Korea, and at the same time he was the first Presbyterian officer after Underwood the founder of the Arthur T. Pierson Memorial Bible Institute. Prior to Sang-Jin Cha the position of the Deans was occupied by the Korean Methodists only. The position of the President was also held by the Methodist Missionaries except Underwood the first President. Then there is no wonder that the Presbyterian students flourished after Sang-Jin Cha was nominated as the Dean.
Furthermore, the period when Sang-Jin Cha served as the Dean was the only period when the united academic management was practically carried out by the Methodist missionary President and the Korean Presbyterian Dean. The period of the Dean-ship of Sang-Jin Cha was the significant time of transition when the chief management of the administration was held by the Presbyterian Presidents and Deans after the decease of Underwood. Accordingly it is to be said that the period when Sang-Jin Cha was serving the Arthur T. Pierson Memorial Bible Institute was the only period when every mission and every church in Korea were working together hands in hands as the ecumenical partnership. He was rightly celebrated as the real and the object lesson of the united Christian educationin Korea.
피어선기념성경학원은 1907년 대부흥운동의 결과로 생겨난 장감 연합 교육사업의 대표적 실례 중 하나이다. 차상진은 피어선기념성경학원의 첫 장로교 원감으로 7년여의 시간을 봉직했다. 그것은 목사 차상진의 사역의 거의 1/3에 달하는 오랜 시간이었다.
그런데 1916년 목사로 임직하여 그 사역을 시작한 벽두부터 피어선기념성경학원이 소재한 경성노회가 1932년 경기노회로부터 분립하던 무렵까지 차상진의 사역은 피어선기념성경학원을 구심으로 하여 드넓게 펼쳐지고 있었다 .
1916년 경기충청노회장에 선임된 차상진이 그 첫 임무로 동 성경학원의 설립자이자 초대 원장인 언더우드 박사의 유족을 위문한 일이나 승동교회 위임목사 당시의 피어선기념성경학원 지원이나 피어선기념성경학원에서 물러난 후 동 성경학원 학생을 전도인으로 파송한 것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차상진 사역에서 나타나는 피어선기념성경학원 구심성은 단순한 사업적 문제에서만이 아니었다. 차상진의 장감 연합 정신은 동 성경학원의 설립자언더우드의 연합 정신에 가 닿고 있었다. 차상진의 십자가의 교회주의와 장감 양교회가 공히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세워졌다는 그의 굳건한 사상은 기독교한국을 중심으로 동북아의 삼국이 기독교국으로서의 연합을 이룰 것이라는 언더우드의 사상과 다르지 않았다.
한편 1922-1929년까지 피어선기념성경학원 원감으로 봉직하는 내내 그는장감 연합의 실체이자 실물교육으로서 현존하고 있었다. 차상진은 일제하의 피어선기념성경학원에 등장한 첫 장로교 원감이었다. 동시에 그는 설립자 언더우드 이후 첫 장로교 임원이었다. 차상진 이전의 한국인 원감은 모두 감리교 목사였을 뿐 아니라 장감 양 선교부의 선교사들이 맡아왔던 원장 역시 초대원장 언더우드 이후에는 모두 감리교 선교사였던 것이다. 차상진 원감의 부임 이후 장로교 학생들이 크게 증가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나아가 차상진의 피어선기념성경학원 재임 기간은 유일하게 장감 연합 학사운영의 실물교육이 가능했던 때였다. 차상진의 재임기간은 언더우드 서거 후 계속된 감리교 원장과 원감의 학사운영 주축이 다시 장로교 선교사 원장과 원감으로 옮겨지던 과도기였다. 따라서 차상진의 피어선기념성경학원 재임기간은 감리교 원장과 장로교 원감, 서양 선교사 원장과 한국인 목사 원감이 나란히 재임했던유일한 경우였다. 그는 장감 연합 교육의 실체이자 실물교육으로서 피어선기념성경학원 내에 현존하고 있었다.
분석정보
|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 2023 | 평가예정 | 계속평가 신청대상 (계속평가) | |
| 2021-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 2020-12-01 | 평가 | 등재후보 탈락 (계속평가) | |
| 2018-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 2017-12-01 | 평가 | 등재후보 탈락 (계속평가) | |
| 2015-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 2016 | 0.12 | 0.12 | 0.14 |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 0.12 | 0 | 0.492 | 0 |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 주요 개정내역 | 변경 사유 |
|---|---|
| · 수탁업체 콘소시엄 기관명 및 위탁기간 명시 | · 제6조(개인정보 처리업무의 위탁) 구체화 |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은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제1조(개인정보의 처리 목적)
제2조(개인정보의 처리 및 보유 기간)
제3조(처리하는 개인정보의 항목)
제4조(개인정보파일 등록 현황)
제5조(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
제6조(개인정보 처리업무의 위탁)
제7조(개인정보의 파기 절차 및 방법)
제8조(정보주체와 법정대리인의 권리·의무 및 그 행사 방법)
제9조(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제10조(개인정보 자동 수집 장치의 설치·운영 및 거부)
제11조(개인정보 보호책임자)
제12조(개인정보의 열람청구를 접수·처리하는 부서)
제13조(정보주체의 권익침해에 대한 구제방법)
제14조(추가적 이용·제공 판단기준)
제15조(개인정보 처리방침의 변경)
제1조(개인정보의 처리 목적)
제2조(개인정보의 처리 및 보유 기간)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
제3조(처리하는 개인정보의 항목)
제4조(개인정보파일 등록 현황)
개인정보파일 검색(privacy.go.kr)| 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정보추제 동의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
제5조(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
제6조(개인정보 처리업무의 위탁)
제7조(개인정보의 파기 절차 및 방법)
제8조(정보주체와 법정대리인의 권리·의무 및 그 행사 방법)
제9조(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제10조(개인정보 자동 수집 장치의 설치·운영 및 거부)
제11조(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안재호 |
- 이메일 : jinuk@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58 - 팩스번호 : 053-714-0195 |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송진욱 |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교육학술데이터본부 정광훈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제12조(개인정보의 열람청구를 접수·처리하는 부서)
제13조(정보주체의 권익침해에 대한 구제방법)
제14조(추가적인 이용ㆍ제공 판단기준)
제15조(개인정보 처리방침의 변경)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