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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 세종 후궁 惠嬪 楊氏의 생애와 忠節이미지 = The Life and loyalty image of Hyebin Yang concubine of Sejong in the early Choson
저자
한희숙 (숙명여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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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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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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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jong’s concubine Hyebin Yang(혜빈 양씨) was from a yangban family and had three sons with king Sejong(세종). Hyebin Yang took care of Danjong(단종) at Sejong 23th year(1441) when crown princess Kwon(세자빈 권씨) died after giving birth to Danjong. After that, Hyebin Yang took control of palace after Queen Soheon(소헌왕후) death at Sejong 28th year and despite being a concubine. She became the best adult in the palace. King Moonjong(문종) gave special treatment to Hyebin Yang who nursed Moonjong’s son. After King Moonjong died, the young Danjong became a King, and Hyebin Yang returned to the palace to take care of him. However Hyebin Yang came out of the palace again after being checked by prince Sooyang(수양대군) and not long after, prince Sooyang took power through kaeyoujengnan(계유정난). After kaeyoujengnan, Hyebin Yang collated with prince Gumseung(금성대군), and her sons also took the position of anti prince Sooyang. When King Danjong handed prince Sooyang over the throne, and Hyebin Yang went into exile in the Cheungpung. Her sons who are princes Hannam(한남군) and Youngpung(영풍군) went into exile because they were suspected to establish prince Gumseung as a king due to revolt. After that, Hyebin Yang was hanged in the 1th year of King Sejo(세조), and she became the first royal woman to be killed because of involving in the usurpation of King Sejo. Hyebin Yang’s identity was restored at 38th year King Sookjong(숙종) and the image of loyalty was strengthened. In the 15year of King Jeongjo(정조), she received the posthumous name of Minjeng(민정). From the end of the 18th to the 19th century, Hyebin Yang’s image of loyalty was further strengthened. Even she was handed down as a ‘woman who fed a breast to Danjong’, or ‘When King Sejo wanted to have a Seal of State, but she did not give it to him even if dying.’
더보기세종의 후궁 혜빈 양씨는 양반가문 출신으로, 추천에 의해 1428년(세종 10) 이전에 후궁이 되어 세종과의 사이에는 3남을 두었다. 양씨는 1441년(세종 23)에 세자빈 권씨가 단종을 낳은 직후 죽자 단종을 보육하며 단종과 매우 가까워졌다. 이후 양씨는 세종이 죽어 궁 밖으로 나올 때까지 9년 정도 단종을 키웠으며, 소헌왕후 심씨가 세종 28년에 세상을 떠난 후 내정을 다스렸던 것 같다. 문종은 아들을 보육해 준 양씨를 각별히 우대했다. 문종이 죽고 어린 단종이 즉위하자 양씨는 의정부의 건의로 다시 궁궐로 들어와 단종을 보필하였다. 양씨는 단종을 보필하며 내정을 주관하고자 하였으나 수양대군의 견제를 받고 다시 궁궐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수양대군은 양씨의 내정 장악을 견제하기 위해 문종의 후궁이자 자신의 인척인 귀인 홍씨를 숙빈으로 승격시켜 대신하게 하면서 이들의 갈등은 심화되었다. 양씨가 다시 궁궐을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했다.
계유정난 이후 양씨는 단종을 지지하는 금성대군과 결탁하였고, 아들들도 수양대군을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 결과 1455년(세조 1) 윤6월 11일에 수양대군은 단종으로부터 선위를 받기 직전에 단종으로 하여금 양씨를 청풍으로 귀양보내도록 했다. 그리고 양씨의 가산을 몰수하고, 아들 한남군․영풍군, 금성대군도 亂逆을 도모하였다 하여 귀양을 보냈다. 이후 양씨는 1455년(세조 1) 11월에 교수형을 당했다. 따라서 양씨는 세조의 왕권 찬탈에 연루되어 제일 먼저 죽임을 당한 왕실여성이 되었다. 이후 양씨는 조선 후기에 이르러 신원이 회복되고, 충절 이미지가 강화되었다. 양씨는 단종의 신원이 회복되자 1712년(숙종 38)에 신원이 되었고, 1791년(정조 15)에 愍貞이란 시호를 받았다. 19세기에 이르면 양씨의 충절이미지가 더욱 강화되어 ‘단종을 젖 먹여 키우고, 마음을 다해 보호한 여성’ 또는 ‘세조가 國璽를 전해 받고자 할 때 비록 죽을지언정 국새를 내어 줄 수 없다고 막아서다 죽임을 당한 여성’으로까지 칭송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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