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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기 삼가 구평리 파평 윤씨 가문의 전쟁 대응 = The War response of the Papyeong Yoon’s Family of Gupyeong-ri, Samga, during the Imjin Wae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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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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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udy identified the war response aspects of the Imjin Waeran Period of Samga Guppyong-ri Papyeong Yun Clan through Yun Eon-hyo and Yun Eon-lye brothers and Yun Tak. The Samga region heard the invasion of Waegun around April 14th. On April 27, Samga-hyeon Todong(兎洞) received a surprise invasion of the Waegun(倭軍) small unit. As a result, Ubyeongsa(右兵使) Jo Dae-gon, Hyongam(縣監) Jang Lyong(張翎), people in Eubch(邑治), and urrounding Sajogs took refuge, Samga region became a place where no one was found. Only Guppyong-ri was relatively stable. And Choyusa(招諭使) Kim Seong-il's appointment changed in the war response of the Samga region Sajogs. Guppyong-ri Yun Eon-hyo's subjective capacity, as well as external factors such as Choyusa Kim Seong-il and Somogwan(召募官) Lee Lo, played a crucial role in raising Uibyeong(義兵) of Samga Uibyeong. However, on behalf of Old and weak Yun Eon-hyo, work related to raising Uibyeong including external activities was led by Yun Tak, Park Sa-gyeom, and Park Sa-je brothers.
Yun Eon-lye had a considerable influence on Gyeongsang-udo Sajogs' Public Opinion, leading Tongyumun(通諭文) to counter the two-time propaganda of Gamsa(監司) Kim su, which sums up Uibyeongjang(義兵將) Kwak Jae-woo. Considering these facts, Yun Eon-hyo and Yun Eon-lye were aged, but as the best adults of the village and Hyeon, they actively responded to the external crisis. Yun Tak's Samga Uibyeong formed an alliance of loose alliances with Uilyeong(宜寧) Uibyeong of Kwak Jae-woo. This is due to the order of Choyusa Kim Seong-il and the Public Opinion of Samga Sajogs caused by Uibyeong. Although Samga Uibyeong has formed a corps with Uilyeong Uibyeong, Yun Tak has also developed his own Uibyeong activities. Yun Tak participated in the restoration operation of Hyeonpung(玄風), Changnyeong(昌寧) and Yeongsan(靈山) of Gyeongsang-jwado under the leadership of Uibyeongjang Kwak Jae-woo as the captain of Kwak Jae-woo Uibyeong Corps. Uibyeongjang Yun Tak contributed to the big victory by supporting Jinjuseong outside with other Nammyunghagpa(南冥學派) Uibyeongjang when Jinjuseong battle in 1592. In the 1593 Jinjuseong battle, Yun Tak entered Jinjuseong and defended the enemy. He died as Jinjuseong was captured.
삼가지역 사족들이 전쟁 발발을 알게 된 것은 4월 14일 무렵으로 생각된다. 이후 전황은 학맥과 혼맥을 통해 속속 삼가 사족들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4월 27일 쯤 삼가현의 兎洞은 왜군 40여 기의 기습 침략을 받았다. 삼가 읍치에 주둔하던 우병사 조대곤은 가회의 晦山書院으로 물러가 숨었으며, 곧 이어 삼가현감 張翎도 황계로 도피했다. 결국 삼가현의 읍치와 주변 지역은 무인지경에 놓였다. 다만 회산서원 이웃의 구평리는 비교적 안정된 상태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초유사 金誠一의 부임으로 말미암아 삼가지역 사족들의 전쟁 대응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삼가지역의 의병 창의에는 초유사 김성일과 소모관 李魯 등의 외부적 요인만이 아니라 구평리 尹彦孝 가문의 주체적 역량이 결정적인 한 몫을 했다. 윤언효는 삼가지역의 의병 창의에서 주체적 역량으로 家僮을 징발하고 家財를 기울여 군비로 삼았으며, 이를 朴思謙·朴思齊·盧錞·曺繼明에게 통고하였다. 다만 노쇠한 윤언효는 구평리의 윤탁, 백동리의 박사겸·박사제·박엽·정진철, 판현동의 조계명 등이 의병 소모·군량과 군수 마련, 대외 접촉 등과 같은 실무를 주관하도록 했다고 본다.
경상우도 사족들의 공론은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두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임진왜란 이전 단계에서 제기한 경상우도 사족들의 공론은 축성을 비롯한 수령들의 가혹한 정사와 탐학을 응징하자는 것이었다. 임진왜란 초기 단계에서 사족들이 제기한 공론은 퇴주만 거듭하여 경상도를 적의 소굴로 만든 김수를 논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특정 고을이나 가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경상우도 차원의 공론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특히 진사 尹彦禮는 의병장 곽재우를 모함하는 감사 김수의 두 번에 걸친 격문을 반론하는 통유문을 주도하는 등 경상우도 사족들의 공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윤탁의 삼가 의병은 곽재우의 의령 의병과 느슨한 연합 형태의 동맹을 이루었다. 그리하여 두 의병은 하나의 통솔체계 아래 적절하게 군무를 분장한 조직을 갖추었지만 때로 독자적인 의병 활동을 펼쳤다. 물론 윤탁은 곽재우 의병군단의 영장으로서 의병장 곽재우의 통솔 아래 경상 좌도의 현풍·창녕·영산의 수복 작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삼가 의병장 윤탁은 1592년 진주성 전투 때 다른 남명학파 의병장들과 함께 진주성을 外援하여 대첩에 일조하였다. 1593년 진주성 전투 때 곽재우의 의령 의병과 달리 삼가 의병장 윤탁은 승패가 예견되던 고립무원의 진주성에 입성하였다가 성이 함락되면서 순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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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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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15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남명학연구소 -> 경남문화연구원영문명 : The Nammyonghak Study Institute -> Institute of Gyeongnam Culture | KCI등재 |
200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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