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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제주 표도 여송인(呂宋人) 송환을 둘러싼 동아시아 교류 양상 = Aspects of East Asian Exchanges Surrounding the repatriation of Yeo Song-in from Jeju Island in the 19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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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국립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INSTITUTE OF ISLAND CULTURE MOKPO NATIONAL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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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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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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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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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181(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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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ring the Joseon Dynasty, Jeju Island was considered a ‘closed space’ as an island separated and isolated from the mainland of the Dead Sea Islands due to the Joseon government’s closed maritime policy at the time. However, despite the Joseon government's order to close sea routes and establish a land route, the special nature of Jeju's geographical space, located at the corner of the East Asian sea area, has been arbitrarily and unintentionally divided between various countries in the East and the West, including the areas around the Korean Peninsula. It brought an opportunity for contact. In this way, Jeju Island was positioned as an ‘open space’ through the sea, in conflict with the Joseon government’s systematic control device.
Unlike the Joseon Dynasty, which firmly closed its doors to national isolation by adopting a policy of lifting the ban on the sea and opening islands during the pre-modern period, each East Asian country had a wide-area trade network based on international trade ports. That is, China's Fujian and Guangdong, Japan's Kyushu region, Yugu [琉球, Okinawa], Annam [Vietnam], Lu Song [呂宋, Philippines], and the Western Bulanggi country [ The Kingdom of Buddhism (Portugal) and the Kingdom of Nanban (Netherlands) actively communicated with each other through East Asian waters. At this time, Jeju Island, located in the center of East Asia's maritime traffic routes, served as a landmark, a port of call, and a water source, while at the same time being a major stranding with risk factors that destroy the fixed framework of navigation. As this is a frequent area, many foreigners traveling to and from the sea area frequently ended up on Jeju Island.
In short, the literature shows that at the time, Jeju Island was visited not only by East Asian countries such as China, Japan, and Yugu, but also by Westerners such as the Aranta Kingdom [Netherlands] and the Yeosong [Philippines] who traded with these countries. This can be confirmed through records.
The issue of repatriation of Yeo Song-in, who emigrated to Jeju in 1801 (the first year of King Sunjo's reign), is as big an issue and a headache in the Joseon Dynasty as the case of Park Yeon and Hamel, Dutchmen who emigrated to Jeju in the 17th century. And as this incident intersects with three other drifting and drifting incidents, the story unfolds with multiple relationships intertwined in multiple layers. In other words, the remaining Pyodo people who fled to Japan, leaving behind the five Yeo Song people who landed in Dangpo, Jeju Island in 1801, and the drifter Moon Sun-deuk, a Jeolla-do citizen, met in Guangdong, China in December 1803. In July 1807, a meeting took place between a Yuguin [official] who had drifted to Udo (牛島), Jeju Island, and three Yosongin (officials) who were unable to be repatriated to their home country and were staying on Jeju Island at the time. At this time, a person named Gungpyeong (宮平), a Yugu, was in charge of escorting 32 people, including 6 people, including Moon Sun-deuk, and the Chinese, Seo In-sil (徐三貫), who had drifted to the Yugu Kingdom to China in 1802. Also, in June 1809, there was a meeting with Moon Sun-deuk, a skate merchant from Uido Island, and three Yeosong people, who had returned alive after drifting for three years and two months (January 18, 1802 - January 8, 1805).
In this way, the ‘1801 Yeo Song-in's Jeju island incident’ can be seen as a complex interaction between the relationship network and the repatriation system among multinational drifters and islanders from East Asia, including Joseon, Yeo Song-in, Yugu, China, and Japan, as mentioned above. . Accordingly, the incident was recorded not only on the Joseon side but also in a collection of diplomatic documents exchanged between past East Asian countries, including Japan, China, and Yugu, and has been passed down to this day. However, through these multinational and multilateral encounters with overlapping people,...
조선시대 제주도는 당시 조선 정부의 폐쇄적인 해양 정책으로 말미암아 사해고도(四海孤島)의 육지와 격절(隔絶)ㆍ고립(孤立)된 섬이라는 ‘닫힌 공간’으로 간주되어졌다. 하지만 이 같은 조선 정부의 해로를 폐쇄한 육지로의 질서 설정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 해역의 길목에 위치한 제주의 지리적 공간의 특수성은 자의적ㆍ타의적으로 한반도 주변 지역을 비롯한 동ㆍ서양 여러 나라들과 다양한 접촉의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이렇듯 제주도는 조선 정부의 체제적 통제장치와 상충되게 바다를 매개로 한 ‘열린 공간’으로서 자리하였다.
전근대 시기 당시 해금(海禁)과 공도(島政) 정책을 취하는 등 쇄국(鎖國)의 빗장을 단단히 걸어 잠근 조선과 달리, 동아시아 각국은 국제적인 무역항을 거점으로 한 광역의 교역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었다. 즉, 중국의 복건(福建)과 광동(廣東), 일본의 규슈(九州) 일대를 비롯한 유구[琉球, 오키나와], 안남[安南, 베트남], 여송[呂宋, 필리핀], 서양의 불랑기국[佛朗機國, 포르투갈], 남번국[南藩國/紅毛國, 네덜란드] 등은 동아시아 해역을 서로 왕래하며 활발히 통교(通交)해 나갔다. 이때 동아시아 해상 교통로의 중앙에 위치한 제주도는 이들의 이정표(里程標)이자, 기항지(寄港地)로써 급수처(汲水處) 역할 수행했던 동시에 항해의 고정적 틀을 파괴시키는 위험 요소가 산재한 주요 표착 다발 지역으로, 해역을 오가는 많은 이국인(異國人)들이 빈번하게 제주도에 표도(漂到)되었다.
요컨대 당시 제주도에는 중국ㆍ일본ㆍ유구 등의 동아시아 국가들뿐만 아니라, 이들 국가와 교역하던 아란타국(阿蘭陀國)[네덜란드] 등의 서양인 및 여송(呂宋)[필리핀] 사람들도 표도해 왔음을 문헌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801년(순조 1) 여송인의 제주 표도를 둘러싼 이들의 송환처리 문제는 앞선 17세기 제주로 표도해 온 네덜란드인 박연과 하멜의 경우만큼이나 조선 당대의 큰 이슈이자 골칫거리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해당 사건은 또 다른 3건의 표류ㆍ표도 사건과 맞물리면서 다자간의 관계가 중층으로 얽혀 이야기가 전개된다. 즉, 1801년 급수차 제주도 당포(唐浦)에 상륙한 여송인 5명을 뒤로 하고 일본으로 달아난 나머지 표도인들과 표류 전라도인 문순득이 1803년 12월 중국 광동(廣東)에서의 만남이 이뤄지는가 하면, 1807년 7월 제주도 우도(牛島)에 표류해 온 유구인[관리]과 당시 본국으로 송환되지 못하고 제주도에 체류되어 있던 여송인 3명과의 만남이 이뤄진다. 이때 유구인 궁평(宮平)이란 자는 1802년 유구국에 표류했던 문순득 등 6명과 중국인 서인실(徐三貫) 등 32명에 대해 중국으로의 호송을 책임 맡았던 자였다. 또한 1809년 6월, 3년 2개월간(1802.1.18.~1805.1.8)의 유구 및 여송을 표류한 후 생환되어 온 우이도 홍어 상인 문순득과 여송인 3명과의 만남 등이 있다.
이렇듯 ‘1801년 여송인의 제주 표도 사건’은 상기와 같이 조선-여송-유구-중국-일본 등 동아시아의 다국적 표류ㆍ표도인들과의 관계망과 송환체계가 상호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살필 수 있다. 이에 해당 사건에 대해서는 조선 측만이 아닌, 일본, 중국, 유구 측의 역대 동아시아 국가들 간 주고받은 외교문서를 모아놓은 사료집에도 기록되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다국적, 다자간의 중첩된 표인(漂人)들과의 만남 속에서 국적이 여송인임이 명확해진 제주 표도 이국인 3명[5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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