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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과 경도학파(京都學派)의 이론적 후원 = 화엄교학(華嚴敎學)의 원용(援用)에 이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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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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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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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C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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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수록면
243-267(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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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의 일본사회는 軍部의 정치적 영향력이 강화되며 대외침략이 한층 격화되는 軍國主義時代였다.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발생한 다음 해인 1938년 11월 일본 고노에(近衛) 수상은 東亞의 안정을 위해 東亞新秩序수립을 선언했다. 이후 일본사회에서는 東亞聯盟體論과 東亞協同體論등과 같은 아시아주의가 활발히 논의되었다. 특히 동아협동체론은 고노에 수상의 동아신질서 선언을 쇼와연구회(昭和硏究會)가 이론화 한 것으로서 미키 키요시(三木淸)가 주도하였다. 일본, 만주, 중국의협동체를 구성하여 아시아의 解放을 지향한 이론이었지만 일본의 침략정책을 인정하고, 패권을 합리화하는 모순을 안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점은 1940년대의 大東亞共榮圈論에 그대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1940년 7월 고노에 수상이 大東亞新秩序를 선언하자 大東亞共榮圈이 국책으로 확정되고, 1940년대의 대표적인 이념으로 제창되었다. 대동아공영권은 그 범위를 확대해 가면서 서구 제국주의 침략으로부터 아시아의 해방과 共榮을 내세웠지만, 본질은 일본의 아시아침략 논리였다. 이러한 대동아공영권과 태평양전쟁을 사회적으로 담론화 하여 이론적으로 후원한 대표적인 부류가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를 필두로 한 교토학파(京都學派)였다. 니시다는 東亞民族의 世界史的使命과 대동아공영권과 같은 특수한 세계를 강조하였고, 동아민족의 共榮은 태평양전쟁을 통해서 이룩할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萬世一系의 일본 皇室이 주도하는 세계사를 구상하였다. 니시다의 제자인 고야마 이와오(高山岩南)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세계사적 意義가 있는 사건들로 간주하고, 대동아전쟁을 통해 새로운 세계질서를 수립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고야마는 대동아전쟁과 대동아공영권을 近代世界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과 그 대안으로 제시하였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니시다와 고야마는 화엄교학에서 보이는 一多의 논리를 적용하여 대동아공영권을 설명하기도 하였다. 본래 華嚴經에 근거하여 圓融思想을 설하는 一卽多의 논리가 교토학파에 의해 대동아공영권을 설명하고 天皇制體制를 옹호하는 데 이용되었던 것이다.
더보기The Japanese society in the 1930s was the times of imperialism which came under the political influence of military authorities, and intensified overseas invasion. Japanese Prime minister Konoe(近衛) proclaimed the establishment of the East Asian new order for East Asia`s stability in Nov., 1938 just after Sino Japanese War had begun in 1937. Since then, East Asian Confederativism and East Asian Cooperativism out of various Asianisms were dominant discourses. Especially, East Asian Cooperativism which was theorized by Syouwa(昭和) Institute was the discourse led by Miki Kiyoshi(三木淸) belonged to that. Though being headed for the East Asian freedom from the Western powers, it had a discrepancy of recognizing the invasion policy and rationalizing supremacy in Japan. These problems had a great effect on the Greater East Asian Co prosperity Spherism in the 1940s. When Prime minister Konoe proclaimed the establishment of the Greater East Asian new order in Jul., 1940, the Greater East Asian Co prosperity Sphere as a national policy was decided and it became the typical ideology in the 1940s. In spite of expressing the freedom from Western powers` imperialistic invasion and the East Asian co prosperity with extending the category, it was essentially the logic for Japan intending to invade Asian countries. This Greater East Asian Co prosperity Sphere and the Pacific War was discoursed socially, then theorized prominently by Kyoto(京都) School from Nishida Kitaro(西田幾多郞) down. Nishida emphasized the East Asian peoples` mission in the world history and the unique world such as the Greater East Asian Co prosperity Sphere, and mentioned the East Asian peoples` co prosperity could be achieved through the Pacific War. Besides, he envisioned the world controlled by Japanese royal family transmitted to all ages. Kouyama Iwao(高山岩南) who was Nishida`s pupil regarded aggressive wars of Japan as the meaningful incidents in the world history, and insisted that East Asian peoples should establish the new world order. He suggested that the East Asia should overcome the modern world through the Greater East Asian Co prosperity Sphere and the Pacific War. Moreover, Nishida and Kouyama interpreted the Greater East Asian Co prosperity Sphere with the concept, the one contains the multitude and yet the multitude is as one, which was shown in the Hwaom doctrine. This concept interpreting all encompassing harmony on the basis of Avatamsaka sutra was used by Kyoto School to interpret the Greater East Asian Co prosperity Sphere and advocate the Japanese emperor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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