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후보
원 간섭기 원종·충렬왕의 정치적 행적 : 김방경의 삼별초 정벌 일본원정을 중심으로 = The Politics of Wŏnjong and Ch'ungryŏrwang and Kim Pang-gyŏng's Military Operations under the Mongolian Domination
저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08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KDC
051
등재정보
KCI등재후보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37-173(37쪽)
KCI 피인용횟수
3
제공처
고려왕조는 원 간섭기 이전까지는 황제국으로 칭하고 요, 송, 금과의 외교에서도 조금도 굽힘이 없는 당당함을 지닌 국가였다. 그러나 몽고가 침략하여 강화를 맺으면서 상황은 달라져 고려는 복속국의 형태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때의 고려국왕은 원종과 충렬왕이었다.
원종 은 고려가 몽고와의 전쟁을 끝맺고 원 간섭기에 들어선 이후 최초의 군주이다. 그는 1235년 태자로 책봉되었으며 1259년 강화를 요청하러 몽고에 갔다가 고종의 죽음으로 이듬 해 귀국해 즉위하였다. 1260년에는 아들 諶을 태자에 책봉하여 몽고에 보내는 등 원활하게 국교를 수립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원종의 정책은 당시 무신집정자 임연의 반대에 부딪혀 폐위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는 원의 도움으로 임유무를 제거하고 개경환도를 실현하였다. 이에 고려가 원의 속국으로 전락하는 데에 삼별초가 반발했으나 3년 만에 진압하였다. 그는 재위 중에 무신집정자들의 전횡을 벗어났으며, 삼별초의 항쟁을 진압하였지만 모두 몽고의 힘을 빌렸다. 이로서 원종은 봉고의 군사력으로 왕권을 지탱함으로서 원 복속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래도 원종대가 강압적이며 외면적인 지배를 당했다면 충렬왕대에는 부마국이 되어 일본정벌에 동참하는 과정을 통해 원의 복속이 더욱 강화되어 갔다.
그 뒤를 이은 충렬왕대에는 일본정벌에 필요한 제반 경비와 인원을 부담해야 했다. 몽고의 1차 東征 목표는 일본이라기 보다 고려의 군사력을 약화시키려는 것이었지만 고려는 그대로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어서 2차 東征도 충렬왕이 앞장서서 주도하였는데 기왕 함께 정벌 할 것이라면 적극 나섬으로서 원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내고자 하였다.
몽고의 1·2차 일본정벌은 비록 실패했지만 고려가 원의 정책에 적극 호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원의 고려간섭을 보다 유연하게 하였으며 왕권을 강화시켰다. 충렬왕은 부마지위를 이용하여 국왕측근세력과 재추 및 일부 신진관료들을 기반으로 왕권을 확립하였으며, 원은고려 왕을 견제하기 위해 책봉권을 강화하였다. 충렬왕 이후 고려는 원에 의존하는 자세가 더욱 심화되어 갔으며 김방경 등 고려 관원 또한 이에 대한 저항의식은 보여지지 않는다. 고려는 이제 내재적으로까지 원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Koryŏ Dynasty had been the kingdom which, claiming to empire, had continued its unyielding stances toward the northern dynasties of Khitan Liao, Chinese Sung and Jurchen Kum. With the formation of 'harmonious relation' with invading Mongolian empire, however, Koryŏ kingdom got subordinated to the empire and remained so under the reign of Koryŏ Wŏnjong and Chungryŏrwang.
Wŏnjong was the king who concluded the war with Mongolian empire, resulting in the subordination of his own kingdom to the empire. He earned the title of prince in the year of 1235. Five years later, he went to Mongo to form the new, harmonious relation with Mongolian empire only to, next year, come back to his country because of the death of reigning Kojong. In 1260, right after his enthronement, Wŏnjong, bestowing the princeship upon his son Shim, dispatched the prince to Mongolian empire to establish the formal dynastic relation with the empire. This police let the king face his humiliating dethronement forced by contemporary military governor Yim Yŏn. In this situation, Wŏnjong, getting rid of powering general Yim Yu-mu with the aid from Mongolian empire, recovered his throne and moved the capital city back to Kaesŏng. Also, he quelled the upnsmg of Sambyŏlch'o which remained opposed to and fighting, for three years, against the subordination of Koryŏ dynasty to Mongolian empire. Then he succeeded in recovering his kingly power from military hands with great miliary helps from the empire, leading to the subordination of his own kingdom to the empire.
In the reigning years of succeeding Ch'ungryŏrwang, Koryŏ became Pumaguk meaning son-in-law kingdom, subordinating itself to Mongolian empire more than ever. Koryŏ had, to bear almost all the burdens required for Mongolian subjugation of Japanese kingdom. The first campaign was aimed at the attrition of Koryŏ military potentials rather than the conquering of Japan. Despite this, Koryŏ had to engage itself in the first campaign. The second campaign was initiated by Ch'ungryŏrwang with the expectation that his active engagement in the forced war would benefit him with the full support from Mongolian empire. Setting apart the progress of the campaigns which ended with the ultimate failure, the active engagements of Koryŏ dynasty eased the Mongolian grip on the dynasty while strengthening Ch'ungryŏrwang's royal power and authority. The king took the advantage of his matrimonial relation with Mongolian royal family to establish his own power and authority which was supported by his near relations and figures, top-rank officials, and a few of young officials. This domestic progress was checked by the Mongolian authoritative power for granting the royal title or Ch'aekbonggwŏn in Korean. This resulted in the increasing dependency of Koryŏ kingdom after Ch'ungryŏrwang upon Mongolian empire. Now the kingdom, including its officials such as Kim Pang-kyŏng and others, showed no opposition to not only Mongolian empire but also the contemporary situation. This tells us that Koryŏ kingdom after Chungryŏrwang came to be internally mastered by Mongolian empire unlike Koryŏ before the king such as the Koryŏ reigned by Wŏnjong where the kingdom got under the forced but external controls by Mongolian empire.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19 | 평가예정 | 신규평가 신청대상 (신규평가) | |
2018-12-01 | 평가 | 등재후보 탈락 (계속평가) | |
2017-12-01 | 평가 | 등재후보로 하락 (계속평가) | KCI후보 |
2013-01-01 | 평가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9-08-25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사)한국인물사연구소 -> (사)한국인물사연구회 | KCI후보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83 | 0.83 | 0.83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73 | 0.64 | 1.883 | 0.18 |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