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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환율개혁의 경과와 의의 = The Exchange Rate Reform under the Chang Myon Government
저자
발행기관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구 역사학연구회)(The Historical Society of Korea University)
학술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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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작성언어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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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83-109(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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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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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이승만 정부와 미국 원조당국은 환율을 두고 평행선과 같은 대립을 보였고, 일종의 타협책으로서 고평가된 공정환율과 이른바 시장환율이 병존하는 복수환율 체계가 성립했다. 1960년 4월 이승만 정부의 붕괴로 등장한 과도정부와 이후의 민주당 정부는 환율의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미국측과 공감대를 이루고 있었다. 미국측의 요구로 새로운 환율 제도를 마련하기 위한 협상은 먼저 IMF의 자문이라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진행됐다. 과도정부는 7월 IMF 자문단이 다녀간 후 환율개혁 방안을 정리해 8월 선거를 통해 집권한 민주당 정부에 전달했다. 개혁안은 공정환율, 경매율, 증서율로 이루어진 복수환율제였는데, 1958년 대만의 환율개혁과 유사하게 외환증서제도를 활용해 시장환율을 공정환율에 반영해간다는 것이었다.
1960년 10월 한미간의 환율협상이 미국 워싱턴에서 시작됐다. 한국측의 복수환율제 제안에 미국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미 국부무는 환율의 현실화와 함께 ‘단일화’를 강력히 원했다. 그것은 회담 과정에서 미국측이 제기했던 것처럼 주한미군 소요 한화를 얻기 위한 달러 판매에서 차별 받기를 원하지 않는 미 국방부와 의회를 설득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협상은 환율개혁을 포함한 여러 개혁을 한국측이 3월 1일까지 성실히 수행했을 때 추가 원조 2천만달러를 제공하겠다는 미국측의 제안으로 막을 내렸다.
이른바 ‘딜런 서신’에 담긴 환율개혁 방안에 따라 1961년 2월 1일 ‘현실적 단일환율 실시’라는 이름으로 환율개혁이 단행됐다. 신 외환제도에서는 이전의 외환 예치집중제와 달리 매상집중제가 시행됐으며 한국은행이 변경할 수 있는 은행률에 따라 모든 외환 거래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신제도의 한 요소인 외환공급제는 임시특별관세법이 위헌론에 휩싸이면서 연기됐고 쿠데타 후 7월에야 실시됐다. 하지만 수입의 폭증으로 외환 보유고가 2년 연속 감소하는 문제가 발생하자 1963년 수출입 링크제가 도입되는 등 1달러당 1,300환의 환율도 단일환율로서의 기능을 점차 잃어갔다. 그럼에도 개혁과 그 후 외환 매상집중제, 외환공급제, 임시특별 관세와 같이 단일환율 실시에 필요한 제도들이 하나둘 정비됐던 것이 1964-65년의 환율개혁 성공을 뒷받침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South Korea had a multiple exchange rate system in the 1950s, where overvalued official rate coexisted with market rates. However, the Korean Democratic Party which took power after the April Revolution had a consensus with U.S. government that a more realistic rate was needed to stop windfall profits which used to arise in the allocation of foreign aid funds. Search for new exchange rate system started with the arrival of the IMF advisory mission in July. The Korean interim government made a reform proposal which suggested multiple exchange rates comprised with official, bidding and certificate rates. It was similar to Taiwan`s 1958 rate reform in that exchange certificates were used to make the official rate converge to the market rate.
The U.S.-Korea negotiation started in Washington after the Chang Myon government was established. The U.S side opposed to the Korean proposal of multiple rates, but strongly requested a unitary rate. U.S. representatives stated that the Congress would not allow rate discrimination to the U.S. Army in the purchase of hwan requirement. The negotiation ended with the U.S. proposal that additional twenty million dollars of aid would be provided if the new Korean government would implement reforms in the Dillon letter including unitary exchange rate system by March 1, 1961.
New exchange rate system in line with the U.S. proposal was established in February 1961. The unitary bank rate, 1,300 hwan per dollar was supposed to be applied to all dollar transactions. Korean exporters who used to be allowed to deposit their dollar earnings in the central bank were also enforced to sell dollars by the bank rate. On the other side, Korean importers could buy dollars from the central bank by the same rate, after the provisional special duty law was enacted in July. However, it caused decrease in Korea`s foreign currency reserves in both 1962 and 1963, and the then military government tried to limit the application of the unitary rate by introducing export-import link in 1963. Nonetheless, the establishment of several institutional prerequisites for unitary exchange rate supported the success of the floating unitary rate system, which was introduced in 1964.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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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4-11-07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미등록 -> SA-CHONG(sa) | KCI등재 |
2012-01-01 | 평가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8-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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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1.11 | 1.11 | 0.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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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3 | 0.71 | 1.55 | 0.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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