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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동번(東蕃)’ 여진문제의 국제환경과 정벌 추진세력의 구상 = The International Situation of Jurchens Problem and the Policy Direction of Gory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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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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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212(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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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udy of Yun Gwan’s military victory has a framework for overall understanding and specific studies have been deepened, accumulating studies in various aspects, but there are many questions. This needs to be understood in more depth through the international situation in the northern part of Goryeo, and the policy direction of the Goryeo court.
The Jurchens problem in Goryeo appeared amid regulations to Jurchens. After 1073, the Jurchens problem emerged amid the military conflict among the Jurchens. In 1080, the mobilization of 30,000 troops to the Jurchens was for the stabilization of the Jurchens. At that time, Goryeo showed no signs of informing the Khitan court. It may be difficult to say that the Khitan court was indifferent to Goryeo’s conquest, but there is no direct expression of intention.
After the accession of King Sukjong of Goryeo, diplomatic cooperation between Goryeo and Khitan seems to have progressed, forming a certain understanding and tacit understanding of the conquest. Accordingly, when Goryeo clashed with the Jurchens militarily in 1104, Khitan did not take this as an issue, but recognized Goryeo’s relation to Goguryeo through diplomatic documents, and recognized Goryeo’s supremacy in terms of rhetoric.
Since then, the preparations for the conquest of Jurchens from King Sukjong to King Yejong have involved national mobilization. At the time of the decision to open the war, the political goal was to stabilize the northern order. In the process of deciding the opening of the war, most of the agreements were made, and only a few objections such as Kim Yeon were seen. There are few clues of considering the relation with Khitan in the process of deciding the war. This may have been due to the tacit understanding of the Khitan, and at the same time, the Goryeo ruling class considered the conquest of Jurchens as a matter within the Goryeo Dynasty.
고려의 여진정벌 연구는 전체적인 이해의 골격이 마련되었고 개별적인 각 주제별 연구도 심화되어 다각적인 측면에서 연구가 축적되었지만 고려, 요, 여진 모두 전례가 거의 없는 움직임을 보여 여러 의문점이 있다. 이는 당시 고려 북방의 국제환경과 여진정벌 추진세력의 구상과 지향을 통해 보다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고려의 여진문제는 여진에 대한 규제와 조정, 기미주 경영 등이 진행되는 가운데 나타났다. 1073년 이후 여진문제는 점차 표면화되었는데 이는 기미주의 고려 편입 강화 및 기미주 영역 확대 속에서 나타났다. 1080년의 동번 변란에 대한 대대적인 군대 동원은 고려 해동천하 속 동번 기미주 질서의 안정화 차원이었다. 당시 고려는 요 조정에 이를 알린 흔적이 보이지 않으며 이는 고려의 동번 정벌이 고려 독자의 정책적인 결정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고려의 1080년 동번 정벌에 대해 요 조정에서는 무관심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직접적인 의사 표현은 보이지 않는다. 고려 숙종의 즉위 이후에는 고려와 요 사이에 외교적인 협력이 진전되어 여진정벌에 대한 일정한 양해와 묵인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는 고려 정종·문종대 이래 거란의 고려 영향권 묵인을 배경으로 한 것이었다. 그에 따라 1104년에 고려가 여진과 군사적으로 충돌하였을 때 요는 이를 문제 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외교문서를 통해 고려와 고구려 관련성을 표현하였고 수사적인 측면에서 과거 중국의 5패나 7웅에 비견하며 고려의 영향권을 묵인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숙종에서 예종으로 이어지는 여진정벌 준비는 별무반 창설로 대표되는 국가적인 동원을 수반하였다. 개전 결정 당시 정벌의 명분은 ‘국치’의 해소였지만 정치적 목표는 축성과 사민을 통한 북방 위계질서의 안정화 및 확대였다. 개전 결정과정에서는 재추 대부분의 동의가 있었으며 김연과 같은 극소수의 반대만이 보인다. 개전 결정과정에서 요와의 관계를 고려한 흔적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는 요와의 양해 내지 묵인이 있었던 것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고 동시에 당시 고려 집권층은 여진정벌을 해동천하 내의 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고려 예종대의 개전 결정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숙종서소’에는 이미 축성과 사원의 창건을 통한 불법 전파가 제시되어 있었다. 이는 북방 위계질서의 안정화를 위한 정치·문화적인 확산을 이루겠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윤관 등이 정벌을 추진하고 축성한 이후 올린 표문에서는 중국 주와 한의 천하 언설을 통해 해동천하의 위계적인 질서화가 표명되었다. 이어 영주 관청벽의 글에서는 고구려 영역 승계를 천하 언설을 통해 논리화하였으며 이는 해동천하의 질서화에서 더 나아가 축성을 통한 대소 위계질서의 확대 강화를 정교하게 서술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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