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德富蘇峰의 동아시아 인식 - 청일전쟁부터 한국병합 시기를 중심으로- = Tokutomi Soho's Views on East Asia : focused on era from the Sino-Japanese War to the annexation of Korea
저자
방광석 (성균관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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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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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연도
2010
작성언어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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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253-278(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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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udy examines the views on East Asia held by Tokutomi Soho (1863-1957), an influential journalist and historian in modern Japan. This study focuses on his views of East Asian countries like China and Korea especially from the Sino-Japanese War (1894-95) to the annexation of Korea (1910), when he shifted to nationalistic and imperialist logics.
Tokutomi's views on East Asia were related to the Datsuaron (Advocacy of Escape from Asia) He argued that Japan equipped with Western civilization could be separated from its East Asian neighbors like China and Korea, which were still barbaric and lacked the ability to transform themselves into civilized countries. Then, China and Korea were seen not so much a part of alliance with Japan in resistance against the inroad of Western powers as an object of Japanese expansionism. As an influential journalist, Tokutomi played a leading role in promoting these imperialist views.
Such Tokutomi's views remained unchanged even after his firsthand contacts with China and Korea. He travelled China for a long time in 1906 (right after the Russo-Japanese War) and again in 1917 (right after the World War I). Although, he subscribed to the policy of friendly relation with China, rescinding the idea of dividing China, he repeated his unchanging views on China that the Chinese lacked modern consciousness of nation, and that they were imbued with debilitating literary values and private personal interests, which hindered them from reforming their country and society.
With regard to Korea, he maintained that Koreans were so corrupt and lazy that they were unable to achieve civilization on their own, thus justifying its annexation by Japan. In justifying Japan's aggression against Korea by its role of civilizing mission, lied his deep sense of disdain and discrimination against Korea, which remained uncivilized to his eyes.
The views of Tokutomi were also shared by contemporary Japanese leaders and intellectuals. He tried to be an initiator in proposing a variety of imperialist foreign policy suited to changing circumstances. Therefore, he put forth the theory of harmony of Eastern and Western civilizations, when his Datsuaron lost practical significance due to the Russo-Japanese War and the theory of yellow peril. Later, when Japan pursued with expansionist policy after the World War I, he advanced pan-Asianism, departing from the idea of Peaceful expansionism. His views on East Asia were in line with the course of Japanese imperialism, maintaining consistency in rationalizing and theorizing the expansionism of Japanese empire.
본 연구에서는 언론인자 역사가로서 근대일본의 전반에 큰 영향력을 미친 도쿠토미 소호(徳富蘇峰)의 동아시아 인식을 살펴본 것이다. 특히 청일전쟁 이후 한국병합 시기에 걸쳐 도쿠토미가 국가주의, 제국주의의 입장으로 선회하면서 조선과 중국 등 동아시아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구체화시켜 나갔는지를 추적하였다.
도쿠토미의 동아시아 인식은 ‘脫亞論’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일본은 서양과 같은 문명을 구비하고 있어 ‘아시아적’이지 않으며, 중국과 조선 등 주변 아시아 국가는 기본적으로 야만적이어서 스스로 문명화할 수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주변 나라가 일본과 마찬가지로 구미열강의 침략에 대항하는 동일한 입장을 갖고 있다는 측면은 무시되고 구미열강과 일본의 팽창의 대상으로만 파악했다. 도쿠토미는 언론활동을 통해 이러한 제국주의적 동아시아 인식을 주도했다.
도쿠토미의 동아시아 인식은 직접적인 견문을 통해서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는 러일전쟁 직후인 1906년과 제1차 세계대전 후인 1917년 두 차례에 걸쳐 장기간 중국을 여행했다. 그 사이 ‘지나분할론’에서 ‘지나친선’론으로 대외정책론은 변모를 보였으나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기본적 인식은 변하지 않았다. 중국인에게는 근대적인 국가의식이 없다든가 중국은 ‘文弱’하고 개인의 ‘이해관계’만 앞세워 스스로 개혁의 가능성이 없다고 파악했다.
조선에 관해서도 조선은 매우 부패하고 조선인은 게으르므로 스스로 문명화할 수 없으며 시대의 대세로 보아 일본에 의한 병합은 어쩔 수 없다며 식민통치를 정당화했다. 그 밑바탕에는 조선사회를 ‘야만’사회로 보는 멸시감과 차별의식이 뿌리 깊게 깔려 있었다. 따라서 일본에 의한 ‘문명화’를 강조하며 침략을 합리화해 나갔던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당시 일본정부나 대부분의 일본지식인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도쿠토미는 ‘제국주의’국가 일본의 전략을 미리 제시하고 그것을 선도하려고 하였다. 따라서 상황에 따라 구체적인 대외정책론을 변화시켜 나갔다. 러일전쟁과 ‘황화론’을 통해 ‘탈아론’이 논리적 현실성을 잃자 ‘동서문명조화론’을 내세웠으며, 제1차대전 후 일본이 중국에 대한 침략을 실행해나가자 ‘평화적 팽창주의’에서 ‘아시아주의’로 나아갔다. 그는 꾸준히 일본의 대외팽창을 합리화하고 이론화하며 일본제국주의와 운명을 같이했다고 볼 수 있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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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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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1.18 | 1.18 | 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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