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대중지에 나타난 역사 담론의 성격과 양식적 변용 - <별건곤>을 중심으로
저자
발행기관
-
발행연도
2011년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자료형태
한국연구재단(NRF)
이 글은 근대 대중종합잡지의 역사 수용 방식과 역사를 소재로 한 다양한 글쓰기 전략에 대한 연구이다. 본 연구가 일반 대중을 상대로 간행되는 종합 대중지를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이들이 상대적으로 당대의 사회․역사적인 분위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으며 대중에 대한 영향력 또한 무시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개벽사’에서 발행된 별건곤의 경우는 개벽의 강제 폐간 이후 변화된 사회 현실과 대중의 코드에 맞춘 출판물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본 연구의 일차 과제는 별건곤(1926. 11~1934. 6)에 실린 역사를 소재로 한 다양한 관련 독물(讀物)을 대상으로 그것의 글쓰기 전략들을 살피는 것이다. 별건곤에는 국내외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대한 논평(論評), 과거의 역사를 재구성한 사화(史話), 인물의 전기(傳記), 역사를 소재로 한 애화(哀話)와 실화(實話), 대담(對談), 설문(設問), 그리고 허구적 요소가 강조된 야담(野談)과 기담(奇談) 등 다양한 글들이 실려 있다. 과거 역사에 대한 호출은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강력한 귀속성의 느낌과 사고를 부여하는 ‘집단 기억’을 갖게 했으며. 그것은 곧 개벽에서 별건곤으로 이어지는 민중운동의 기본적인 토양이기도 하였다.
창간 당시 ‘취미․실익잡지’를 표방하였던 별건곤은 저급한 오락거리가 아닌 역사와 문학, 무용과 음악, 박물관, 동물원, 활동사진, 극장 등 당대 첨단의 근대적 취미와 교양에 맞추어져 있었다. 이는 별건곤이 지향한 ‘취미’의 최초 취지가 고급의 취미와 교양을 일반 민중들이 쉽게 향유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 내용 또한 창간 초기에는 단순히 흥밋거리를 위한 것이었다기보다는 계몽을 위해 동원되었던 것이었다.
별건곤에 등장하는 다양한 양식적 명칭은 뚜렷한 양식 개념에 입각하여 부여된 명칭이라고 할 수 없다. 양식 표기는 특정 양식에 대한 인식에 기반한 것이라기보다는 독자의 흥미를 유발시키기 위한 편집자의 전략적 선택이었다. 이들이 밝힌 양식의 의미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양식의 의미와 동일한 것이라고 볼 수 없으며, 또한 그들이 표기한 특정한 양식 속에 들어있는 글 역시도 일관성을 갖고 사용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결국 당시 편집자들의 양식에 대한 혼란 때문이라기보다는 양식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즉, 편집자들의 관심은 양식 자체보다는 어떠한 표기가 보다 더 독자들의 관심을 유발할 수 있는가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비슷한 성격의 글이라도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서로 다른 양식명이 부여된 것이다.
또한 각각의 양식은 부여된 명칭의 경계를 넘어 혼용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이러한 진술은 하나의 글이 편집자에 의해 무엇으로 표기되든지 간에 각 양식 간의 분류가 불가능할 만큼 차용과 삼투, 그로 인한 다양한 변개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며, 양식 간 전환과 교섭의 과정에서 하나의 양식적 개념으로 수렴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뜻한다.
잡지에 실린 다양한 글쓰기 상호간의 변개와 삼투, 차용의 과정 중에서도 하나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많은 경우 역사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제의 강압적인 식민통치 아래서 이러한 글쓰기를 통
The Pattern of Embracing ‘History’ and the Writing Strategies of Modern Popular Magazines
Lee, Seung-Yun(Postech)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look into the writing strategies used in various reading materials which are concerned with history contained in Byeolgeongon(별건곤) (Nov. 1926-Jun. 1934). The withdrawal of past history enabled members of a community to have a ‘collective memory’, which endowed them with feelings and thoughts with strong attribution, and this was also the basic foundation of the folk movement, which led to Byeolgeongon beginning from Gaebyeok(개벽).
Byeolgeongon, which claimed to be a ‘magazine for leisure and practical benefit’ at the time of its first publication, was focused not on vulgar pastimes but on modern tastes and culture. Therefore, its contents were mobilized for enlightenment rather than for simple interests.
The diverse, stylish names that appeared in Byeolgeongon cannot be thought of as being named on the basis of the concept of clear style. This was not because editors back then were confused about a certain style but because they were absent in perception about a style itself. The interest of the editors was regarding what writing would provoke the attention of the readers more rather than a certain style itself.
The production of historical discourse through such writing under the forcible Japanese colonial rule functioned as a means of consolation from a passive perspective, and as a means to face threats of eradication from an active perspective. This made it possible to enhance bonding among the people, and, at the same time, confirmed the ‘individual existence of the people’. However, the production of such discourse, on the other hand, became a means to hide contradictions within the people.
That is, the ‘individuality of the people’, which was withdrawn under the Japanese colonial rule, couldn’t do more than ensure special characteristics and locality by dividing the people from the empire, in the end. Ultimately, the ‘history’ of the past was a vehicle for unifying the people, and yet, it was a major tool for justifying and rationalizing the colonial rule of the empire.
The production of historical novels was so active as to be called ‘the age of historical novels’ in the mid-1930s. The root of the popularity and vulgarity of those works could be found in readers who consumed them as well as in the writing strategies of historical substances that were produced by popular magazines. Given the nature of a magazine published for profit, the contents of ‘history’ could be readily and quickly altered according to changing of the times and to the tastes of readers.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usage
내책장담기
0
내보내기
0
SNS공유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