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南冥學派의 政治的 分化와 文景虎의 역할 = A Political Divergence and Mun Kyoung-ho(文景虎)`s Role of Nammyung Studies of Nammyung Studies of the Seventeenth Century
저자
薛錫圭 (한국국학진흥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02
작성언어
Korean
KDC
151.5205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387-432(46쪽)
제공처
소장기관
이 논문은 17세기 남명학파의 정치적 분화양상을 문경호의 정치적 입장과 역할을 통해 조명한 것이다. 曺植에 의해 확립된 남명학은 16세기 훈척정치의 극단적 상황에서 出處의 정당한 방향을 성리학의 세계관에 근거하여 모색하는 과정에서 체계화되었다. 그는 순선의 리와 겸선악의 기의 가치 대립적 관계를 전제로 이기분대론을 성립시켰다. 이는 그의 세계관이 善·惡, 正·邪, 君子·小人의 가치 분별에 투철한 이분법적 구조로 형성되어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가 敬·義를 학문적 요체로 간주한 가운데, 내면적 修身에 철저하면서도 不義와 타협하지 않는 엄격한 자세를 견지한 배경도 여기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이분법적 자세를 幾微, 곧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적용할 것을 제시했다. 이것이 결과적으로 남명학이 퇴계학이나 율곡학과 차별화되는 요인이 되는 것이자, 정인홍·김우옹·정구 등 그의 핵심 제자들이 현실대응자세에 일정한 시각차를 드러내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文景虎는 정인홍의 제자로서 그의 분대론에 투철한 원리적 군자소인론의 대응자세를 답습하면서도 정구·김우옹에게 從遊하고, 또 조목과도 친분을 유지했다. 이러한 그의 학문적 편력은 남명학의 가치 분별성과 퇴계학의 현실대응의 탄력성을 융합한 탄력적 군자소인론의 정치철학을 확립하는 토대가 되었다. 그는 임진왜란 당시 활발한 의병활동을 통해 국난극복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己丑獄事 당시 崔永慶의 寃死의 배후에 戚臣 沈義謙과 연계한 成渾이 있다는 사실을 폭로함으로써 전후 남명학파의 대북세력이 정국주도권을 확보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러나 문경호는 원리적 군자소인론에 입각하여 남명학 지상주의를 지향하는 정인홍의 방침에 맹종하기를 거부했다. 그는 정인홍이 『南冥集』(甲辰本) 跋文에서 李彦迪·李滉의 학문과 처사를 비난한데 항의하는 한편,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독자적으로 跋文을 지어 『南冥集』(己酉本)을 재간행하기도 했다. 나아가 정인홍이 다시 晦退辨斥 事件을 일으키려 하자, 그는 편지로 疏議 자체를 중단할 것을 촉구함으로써 여타 학문의 貶毁를 통한 남명학의 우월성을 보장받으려는 시도에 동조하지 않았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가 남명학파가 정치적으로 분화하는 촉매제가 되었다. 永昌大君을 살해한 鄭沆을 斬할 것을 주장한 鄭蘊을 定罪하려는 원리적 군자소인론자에 대해 文景虎·李大期·姜大進 등 탄력적 군자소인론자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을 계기로 남명학파가 분화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문경호 등은 비록 大北세력과 결별하기는 했지만, 기존의 西人이나 南人과의 제휴를 모색하기보다 中北의 제3의 정치세력 형성을 선택했다. 그것은 결국 남명학이 학문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퇴계학이나 율곡학과 쉽게 융합될 수 없는 독자성을 확보하고 있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나아가 이러한 남명학파의 내부적 分化는 남명학이 시대를 관통하는 규정성을 지닌 것이 아닌 시대의 상황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탄력성을 내포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인조반정이후 서인세력의 정치보복의 상황에서도 남명학이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도 여기에 있었다.
This study illuminates the political divergence of Nammyung(南冥) studies of the seventeenth century through the political stand and role of Mun Kyoung-ho. Nammyung Studies established by Jo Sik(曺植) was systematized in the process of searching for the just direction of the world view of Neo-confucianism to go up in the world in the extreme situation of Hun Chuk politics(勳戚政治) of the sixteenth century. Jo Sik established the theory of Iigibunde(理氣分對論) whose assumption lies on the oppositional relation of pure good, Li(理) and the combination of good and evil, Gi(氣). This suggests his view of the world is formed by dichotomy of good and evil, the just and unjust, Gunja and Soin(the wise and unwise man). In the background of this view of the world, he considered Kyoung(敬) and Yeu(義) as entities of learning in the middle of a perfect self-cultivation of the mind, encompassing austere attitudes that don't compromise with injustice. However, he suggested that this dichotomy should be applied flexibly according to Gimi(幾微), or a similar situation. As a result, this aspect provided the factor for distinguishing Nammyung studies from Toegye(退溪) studies and Yulgok(栗谷) studies and the cause of his central disciples, such as Jung In-hong(鄭仁弘), Kim Uh-ong(김우옹), Jung Gu(鄭逑) exposing various views of confronting the actual.
As the disciple of Jung In-hong, Mun Kyoung-ho followed his view of confronting the actual, the principal theory of Gunja and Soin based thoroughly on the theory of Bunde, yet keeping company with Jung Gu, Kim Uh-ong and Jo Mok(趙穆). The foundation of his political philosophy of the flexible theory of Gunja and Soin incorporating the discretion of the value of Nammyung Studies with the elastic confrontation of the actual of Toegye studies was formed from his academic wandering. On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not only did he contribute to overcoming the national crisis, on murder and high treason in Gichuk(己丑獄事), but also disclosing that the complex relation with the dismissed subject, Sim Uy-gyum(沈義謙) was in the background of Choi Young-gyung(崔永慶)'s undeserved death, decisively contributed to Debuk(大北) forces of Nammyung studies securing the political hegemony.
However, Mun Kyoung-ho defied Jung In-hong's policy which aimed at 'Nammyung studies for Nammyung studies' sake' based on the principal theory of Gunja and Soin. Not only did he protest that Jung In-hong criticized the academic attitudes of Li un-juk(李彦迪) and Li Hwang(李滉) at the epilogue of Nammyung Anthology(the edition of the year of Gabjin), but also, this protest being unaccepted, he publicized Nammyung Anthology(the edition of the year of Giyou) again inserting the epilogue which he wrote by himself. In addition, When Jung In-hong tried to raise the incident of Hetebyunchuk(晦退辨斥), he sent him a letter to request stopping the dispute, not agreeing on the trial to gain the predominance of Nammyung studies through depreciating other philosophies. A series of these events provoked the political divergence of Nammyung studies. Therefore, it was taken for granted that the flexible theorists of Gunja and Soin such as Mun Kyoung-ho, Li De-gi(李大期) and Gang De-jin(姜大進) didn't agree with principal theorists of Gunja and Soin who insisted on killing Jung Hang(鄭沆) who murdered a prince Yongchang(永昌).
Even if a group of Mun Kyoung-ho departed from Debuk forces, they would rather choose forming a third political force, Jungbuk(中北), than in corporate with the existing political forces. This fact shows that Nammyung studies secured the originality both politically and academically from Toegye studies and Yulgok studies. In addition, the inner divergence of Nammyung studies shows that Nammyung studies contained the flexibility of confronting the change of the times actively. From this background, Nammyung studies survived even during the situation of the political repay after Injo Banjung.(仁祖反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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