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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高句麗) 천리장성(千里長城)에 대한 기초적 검토 -장성의 형태와 성격 논의를 중심으로 - = Basic Review on the Cheolli Jangseong of Koguryo -Focused on discussions of the long wall types and characteris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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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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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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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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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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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74(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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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고구려 천리장성은 중국학계가 장성으로 추정한 유적과 거기에서 얻은 이해를 토대로 연구되었다. 그러나 현장 조사의 결과 장성의 흔적이라여겨온 ‘老邊崗’은 자연적인 흙더미에 불과하거나 인공적으로 쌓은 것이라해도 성벽으로 볼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고구려 당시의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 역시 찾을 수 없었다. 각지의 ‘노변강’ 지명을 잇고 이렇게 연결된 하나의 선을 천리장성이라고 본 이해는 立論의 근거부터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遼東의 山城들을 연결하는 성벽을 추가로 세워 장성을 만들었다는 주장도 논거에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로보아 여전히 성격이 불분명한 遺構를 장성으로 추정하고 그 남아 있는 현상을 토대로 천리장성의 형태를 논하는 것은 무리라고 여겨진다. 대신현 단계에서 파악되는 다음의 몇 가지 문제들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본다. 첫째 遼河 東岸에 방벽이 세워져 있었다면 그것은 귀중한 군사정보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어째서 『高麗記』의 遼河 항목에는 이 같은 최신의 정보가 기술되지 않았을까. 唐軍의 공격과정을 다룬 기록들 어디에서도 장벽에 대한 기술이 없다는 점도 이상하다. 반면 요하와 玄.城 사이에는 烽燧들이 늘어서 있었다는 사실이 찾아진다. 이 烽燧線은 천리장성의 한 부분이 아닐까 한다. 둘째 당군이 침공해온 년에도 장성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다는 사실이다. ``년의 축조 기간에 주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고구려가 한 줄기의 방벽을 계획했다고 보면 이렇게 긴 공사기간을 소요했을 리가 없다. 셋째 扶餘城을 기점으로 한 장성의 끝이 바다라는 점이다. 부여성을 吉林龍潭山城으로 보면 이곳은 당이 침입로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북쪽이 된다.이에 장성의 기점과 종점에 대한 기술 내용은 고구려 西邊 전 구간에서의방어시설 수축을 의미한다. 넷째 장성의 축조 목적과 관련하여 고구려의 서부 방어선이 당초의 遼西東部에서 遼河線으로 후퇴해 있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부 변경의 후퇴와 맞물려 천리장성의 축조가 추진되었던 것이다. 고구려의 방어체제에서 요서의 상실이 의미하는 바와 장성의 축조라는 변화가 필요했던 연유를 함께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더보기The Cheolli Jangseong (千里長城) of Koguryo has been studied on the basis of the relics estimated as the long wall by the Chinese academia and the understanding and findings therefrom. As a result of onsite investigation, however, it was found that LaoBianGang(老邊崗), regarded as the trace of the long wall, was only natural mound of earth or it cannot be viewed as fortress wall, although it was built artificially. The basis that the Cheolli Jangseong was built during Koguryo period was not found actually. The understanding that eacharea``s LaoBianGang(老邊崗) place name was linked, and thus, oneconnected line was viewed as Cheolli Jangseong had problems from the basis of the argument. An assertion that the long wall was built by additionally constructing fortress wall connecting the mountainous fortresses in Liadong(遼東) area has also some problems in the basis of argument. Estimating the still unclear traces in terms of characteristics as a long wall and discussing the type of Cheolli Jangseong based on the remaining phenomena are considered to be irrational. However, attention to the following several issues identified in this stage needs to be paid: First, if bulwark was constructed in the east coast of Liao River(k河), it can be valuable military information. Nonetheless, how come such recent information was not described in the section of Liao River (k河) of Koryeo-Ghi((『高麗記』) It is also strange that there was no description on the bulwark or barrier in the records dealing with Tang Dynasty``s military attack process. Meanwhile, it was found that beacon mounds were deployed in a row between Liao River and Hyeonto Fortress (玄토城). Such beacon fire stations line may be part of the Cheolli Jangseong. Second, in 645, when Tang Dynasty``s military invaded Koguryo, the Cheolli Jangseong was not completed. Here, the building period of 16 years should be noted. If Koguryo planned a line of bulwarks, such a long construction period might not be required. Third, one end of the long wall was sea, starting from Buyeo Fortress(扶餘城). If Buyeo Fortress is regarded as Jilin Longtan Mountainous Fortress (吉林 龍潭山城), this can be the farthest north that Tang Dynasty can choose as a penetration path. The description of the starting point and terminus of the Cheolli Jangseong means the decline of defense facilities in the whole section of the western part of Koguryo. Fourth, there is a need to notice the fact that Koguryo``s western defense line was withdrawn to Liao River line from the eastern part of Liaoxi(遼西) in relation with the purpose of Cheolli Jangseong construction. The Cheolli Jangseong``s construction was implemented, coupled with the withdrawal of western frontier. The meaning of losing Liaoxi and the reason why change, namely, Cheolli Jangseong construction was needed should be taken into acco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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