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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世紀朝鮮人的意外之旅: 以漂流到臺灣的見聞記錄為中心 = Accidental Travelling of the Koreans in the 18th and 19th Centuries: Focusing on Korean Shipwreck Accounts on Taiwan
저자
류쉬펑 (대만 중앙연구원)
발행기관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Sokdang Academic Research Institute of Traditional Culture Dong-A University)
학술지명
石堂論叢(JOURNAL OF SOKDANG ACADEMIC RESEARCH OF TRADITIONAL CULTURE)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3
작성언어
Chinese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65-102(38쪽)
KCI 피인용횟수
2
DOI식별코드
제공처
This paper employs the examples of Korean shipwrecks in Taiwan during the Qing dynasty to examine the history of Korean-Taiwan interaction during the pre-modern period. Due to the fact that Taiwan was under the jurisdiction of Fujian province before it was established as a separate province, the Korean government restricted private trade, and Korean official diplomats to China all took the land route, the Korean direct contact with and observation on China was restricted to the north, and thus there was not direct Korean-Taiwan interaction. Thus, Korean knowledge on Taiwan was gained mainly through collecting information by Korean envoys in Beijing and through relevant books and documents. As a result, this knowledge was inevitably scattered and full of mistakes. The direct Korean-Taiwan contact in pre-modern times was only through Korean shipwrecks in Taiwan. From the extant shipwreck accounts we not only can learn about the ways the government in the two countries dealt with foreign shipwrecks, but also learn some information about Taiwan where Korean shipwrecks occurred. These sources can supplement the existing records and provide precious sources for researchers.
From the beginning of the Qing dynasty through the end of the 19th century (1644-, including the Zheng regime during the Southern Ming), there were about 200 cases of Korean shipwrecks in China (including shipwrecks took place in Ryukyu and Southeast Asian countries, but were sent back via China). Among them there were 15 occurrences in Taiwan, with the earliest being in 1729, and the latest 1877.
Those Korean castaways to Taiwan were mostly on fishing boats or coastal trading ships. Under the China-centered tributary and trading framework during the Qing dynasty, after the castaways were rescued, they would be first sent to the site of Taiwan prefecture (in modern Tainan), and then the government would dispatch officials to transfer them to Fujian provincial capital Fuzhou across the Taiwan Straight. Afterward, Fuzhou would dispatch commissioners to escort these Koreans to Beijing, settle them at the Huitong Guesthouse, and deliver them to Korean envoys for their return to Korea. After these Korean castaways returned, they would always be cross-examined and investigated in order to find out if they illegally went to the sea or committed other crimes. These official records and the accounts of what the castaways saw and heard (records of shipwrecks) also became one of the important channels of Korean understanding of foreign countries.
Regarding the historical research on pre-19th century Taiwan- Korean interaction, except some articles on Korean shipwrecks to Taiwan and the Zheng regime’s handling of the trading ships, there is no other discussion yet. Especially, the accounts of Korean castaways and their experience in a foreign culture, and the ways Taiwan local officials rescued and helped these castaways, merit much more research and discussion. Hence, this paper aims at sorting out Qing and Korean historical sources on Korean shipwrecks in Taiwan in order to reconstruct the history Korean- Taiwan interaction and Korean knowledge on Taiwan during the Qing times.
본 논문에서는 청대 조선 선박의 대만 표로 사례를 중심으로 근대 이전 한국과 대만 간의 교류사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1885년 대만성이 설립되기 이전에 대만은 복건성 관할이었고, 또 조선에서는 민간인의 해외 무역을 금지하고 있었으므로 조선 사절단은 모두 육로를 통해 중국을 왕래하였다. 때문에 조선 사절단이 직접 접촉하고 보고 들은 것은 대부분 북방에 제한되어 있었으며, 그로 인해 조선과 대만은 직접적인 교류가 전혀 없었다. 조선의 대만에 대한 지식은 주로 사절단이 북경에서 수집한 정보와 관련 서적 및 문서 기록을 통한 것이었기 때문에 대만에 대한 인식은 잡다한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잘못된 것도 많았다. 근대 이전 조선과 대만의 직접적인 접촉 교류 사례는 해난 사고로 대만에 표류한 표류선박 이외에는 찾아 볼 수 없다. 현존하는 표류 기록들을 통해 대만과 조선 두 나라 정부의 해외 난민 처리 방식에 대해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표류 지역의 일부 상황도 이해 할 수 있어서 중국 사료의 부족 부분을 보충해 주는 등 연구자들에게 귀중한 기록 자료를 제공해 준다.
청대(1644 -, 명대 정씨 통치시기를 포함) 이후부터 19세기 말까지 조선 선박이 중국에 표류하거나 류큐 열도, 동남아 등지 기타 국가로 표류 하여 중국을 통해 귀국한 사례는 대략 200여 건인데, 그 중에서 대만으로 표류된 경우는 현재까지 확인 된 사례만 15건으로, 가장 이른 것은 1729년이고 가장 늦은 것은 1877년 표류 사례이다.
대만으로 표류한 조선 선박은 대부분이 민간 어선 또는 연해의 무역 운반선들이었다. 당시 청 왕조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조공 및 무역 체제에서 난민들은 구조된 후 우선 대만부(지금의 대남)로 보내졌고, 다시 정부 관원이 대만해협을 건너 복건성 성도인 복주로 이송되었다. 복주에서는 전문 인력이 북경으로 호송하여 會同館에서 묵다가 조선 사절과 함께 귀국하였다. 표류 난민들은 귀국 후 모두 바다로 나간 것이 사적인 일이었는지, 기타 다른 범죄 사실은 있는지 여부 등에 대해 조사와 심문을 받았다. 이 같은 정부측의 조사 기록과 난민들의 구술을 정리한 견문록 漂海錄은 조선이 외국의 상황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기도 했다.
19세기 이전 대만과 한국 간의 교류 역사 연구는 청나라 초기 해금 시기 대만 정씨 정권 조선 표류 무역선 처리에 관한 논문 이외에 다른 전문적인 논문은 찾아볼 수 없다. 특히 대만에 표류한 조선 난민들의 견문록과 이국적 문화에 대한 체험, 그리고 대만 지방 관리들의 난민에 대한 구조 방법 등에 대한 연구는 서로 연구해 볼만한 가치들이 많다. 본 논문에서는 청나라와 조선의 사료 중에서 조선 선박의 대만 표류 기록 정리를 통해 청대 조선과 대만의 교류사와 조선시대 정부와 일반 백성들의 대만에 대한 인식을 재정립해 보고자 했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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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8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9-05-02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Jornal of Seokdang Academy -> Journal of Seokdang Academy | KCI등재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5-03-25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미등록 -> Jornal of Seokdang Academy | KCI등재 |
201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8-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7-01-02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석당전통문화연구원 -> 석당학술원영문명 : Seokdang Academic Research Institute of Traditional Culture Dong-A University -> Seokdang Academy | KCI후보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62 | 0.62 | 0.59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51 | 0.46 | 1.395 | 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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