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세기 고고자료로 본 동해안과 울릉도
저자
홍영호 (강원도교육청)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0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61-238(78쪽)
KCI 피인용횟수
7
제공처
이 글은 신라의 江原道 東海岸 및 鬱陵島 진출을 살펴보는데 있다. 이를 위하여 短脚高杯段階로부터 통일신라 초기까지의 유물.유적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우선, 필자는 황남동 109호 3.4곽을 4세기 후반~말기, 황남대총 남분을 5세기 3/4분기 訥祗王의 무덤으로 보는 입장에서 고 고학적 물질자료를 해석하였다. 그 결과 강원도 동해안의 강릉은 이미 황남동 109호 3.4곽 단계부터 신라의 문화가 나타나며 , 威勢品으로 보나 고분군의 규모로 보나 강릉이 최고의 거점지역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부산 복천동 집단을 강릉 으로 徙民시켰고, 이들의 후예들을 異斯夫의 울릉도 정벌에 활용하였을 가능성도 제기해 보았다. 이후에도 강릉을 비롯한 강원도 동해안 지역은 지속적으로 경주와 連動하여 橫口式.橫穴式 무덤이 조성되며, 遺物相도 동일한 양상을 보여준다. 반면, 울릉도는 육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고분이 조성되어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고 있다. 울릉도의 고분은 追加葬이라는 횡구식 아이디어를 받아들였으며, 처음에는 屍身을 안치하였지만, 점차 佛敎의 영향으로 火葬을 하고 藏骨容 器를 埋納하는 방식으로 추가장을 하면서 많은 고분이 조영될 필요성이 없어졌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러한 울릉도식 고분 은 6세기 중후반 이후에 갑자기 나타나고 있다. 발굴 자료가 거의 없어 단정할 수 없지만, 그 이전의 선행 묘제가 없는 까닭 에 외부로부터의 徙民도 생각해 볼 수 있고, 울릉도 土着人들이 횡구식 묘제를 받아들여 변형시켰다고도 볼 수 있으나 자료 의 증가와 검토가 필요하다. 울릉도는 이사부의 정벌 이후 銅冠으로 상징되듯 완전히 新羅化 되었고, 원거리에 위치한 섬이 라는 특성상 간접지배를 받았다고 보인다. 고고학적 자료로 보건대, 울릉도 고분이 외형상 독특하고, 동일한 고분형식이 지 속적으로 유지되며, 횡혈식석실분으로의 변화를 나타내는 예가 없는 점 등에서 알 수 있다. 한편 울릉도와 강원도 동해안에서 6세기 중.후반~7세기에 보이는 고고학적 물질자료들은 뚜렷한 차별성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이 시기의 물질문화가 신라의 전체 영역에서 동시에 유행하는 齊一性의 결과로 볼 수 있다.
더보기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examine Shilla's advance to the East Coast of Gangwon-do and Ulleungdo. To this end, the author examined the artifacts and remains from the period of the pottery with a short stand to the early years of Unified Shilla. First of all, the author analyzed archeological material data from the viewpoint that dates Coffins No. 3 and 4 in Tomb No. 109 in Hwangnam-dong to the third quarter or end of the 4th century, and sees the southern tomb of Hwangnamdaechong as the tomb of King Nulji of the third quarter of the 5th century. The result showed that the culture of Shilla already appeared in Gangneung in the East Coast of Gangwon-do from the period in which Coffins No. 3 and 4 in Tomb No. 109 in Hwangnam-dong was built, and that Gangneung was the best foothold in view of prestige goods and the size of tombs. The author also presented the possibility that the group of people from Bokcheon-dong, Busan was migrated to Gangneung, and their descendents were utilized during Yisabu's conquest of Ulleungdo. Afterwards, 'front open stone chamber tombs' and 'walk in stone chamber tombs' continued to be built in the East Coast area of Gangwon-do, including Gangneung as well as in Gyeongju, and the artifacts of this area are similar to those of Gyeongju. On the other hand, unique tombs, unseen in the mainland, continued to be built in Ulleungdo for a considerable amount of time. The tombs of Ulleungdo adopted the idea based on the 'front open stone chamber' featuring additional burial. At first, they enshrined corpses, but as cremation became more prevalent due to the influence of Buddhism, cremation potteries were buried and additional burial was gradually introduced, there was no need to build many tombs. However, these Ulleungdo-style tombs suddenly appeared in the middle and second half of the 6th century. As there is hardly any archeological finding, it is impossible to draw any conclusion, but since there is no preceding tomb burial system, migration from outside is a possibility, and it is also likely that the indigenous people of Ulleungdo adopted the tomb burial system based on the 'front open stone chamber' and modified it, but more data and careful consideration will be needed. After Ulleungdo was conquered by Yisabu, it became completely part of Shilla as symbolized by the bronze crown, and as it is a remote island, it seemed to be indirectly ruled. Based on archeological data, the tombs of Ulleungdo are apparently unique, and the same tomb style was maintained continuously, and there is no example that shows the process of change to 'walk in stone chamber tombs.'From the mid and upper part of the 6th century to the 7th century, Archaeological data is not distinct between the East Coast of Gangwon-do and Ulleungdo. Because, it is estimated that Shilla culture spread out simultaneously with her's whole terri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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