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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 조각에서 김복진의 ‘형성예술’ 의미에 관한 연구 -피들러(K. Fiedler)의 조형예술론과의 영향 관계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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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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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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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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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287(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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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근대 조각가로서 짧은 생애에도 큰 족적을 남긴 김복진은 미술 분야에서만이 아니라 교육, 언론, 비평의 영역에서도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의 예술활동은 사회주의 사상운동과 독립운동으로 인해 5년 반이나 옥고를 치렀던 시기를 중심으로 현저한 차이를 보이게 된다. 김복진의 활동 전반기인 1920년대는 도쿄미술학교 유학 이후 ‘파스큘라(PASCULA)’ 그룹과 ‘카프(KAPF)’의 결성을 통해 두드러진다. 이 시기에 그는 일본의 동시대 전위예술 그룹인 ‘마보(MAVO)’의 영향을 받아, 일반적으로 ‘조형예술’이라고 번역되어 통용되고 있는 피들러(Konrad Fiedler)의 ‘bildende Kunst’라는 용어를 ‘형성예술’이라는 어휘로 대체하여 사용했다. 김복진은 삶과 예술의 일치를 식민지 조선에서 추구하면서 미술의 순수형식을 거부하고 새로운 예술을 성취하기 위해, ‘순수가시성’의 개념 아래 추상의 길로 나아간 서구 미술과 달리 구축주의의 입장을 견지한 것이다.
감옥에서의 수감생활 이후에는 주로 불상조각에 집중하여 프롤레타리아 미술의 구축을 표방했던 시기와는 달라진 것처럼 보인다. 외견상 그의 전반기 활동과의 단절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는 이 작품들은 당대의 신흥미술을 수용하면서도 이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우리의 문화 전통을 연구하여 융합시키고자 한 결과물로 파악할 수 있다. 김복진은 “내 일생을 바쳐서 예술의 진미를 알아내고, 미증유의 예술품을 남긴 뒤에 속리산 법주사 대불, 청주 용화사 불상을 완성하여 놓고 나서, 최후로 동양미술사를 편집하여 놓을 일 등등”을 포부로 밝혔듯이, 우리 미술문화의 전통을 연구하고 이것을 근대 조형의 창의성과 결합시켜 재구성하고자 시도했던 것이다. 그는 특히 석굴암으로 대표되는 통일신라의 문화예술적 가치와 뛰어난 조형성에 주목하여 이를 계승하고 자신의 작품 제작에 반영하고자 했다. 김복진은 이러한 문화양식 안에 자신의 불심(佛心)을 담아냈을 뿐만 아니라 식민지 조선의 해방과 독립을 통한 새 세계의 염원을 표상하는 미륵불을 제작함으로써, 피들러의 이론을 통해 추상미술로 전개되었던 서구와 다른 방향에서 근대 조형을 확립하는 동시에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 시키고자 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발견할 수 있다.
Kim Bokjin, the first modern sculptor in Korea, left his huge footprints and greatly influenced diverse areas such as art education, newspaper press, criticism, as well as fine art. His artistic movements show remarkable difference between the two periods before and after his prison life due to his socialist activites and independent movement. The first period during the 1920s, after his returning from the Tokyo Art School in Japan, is characterized particularly by his activities of organizing the ‘ PASCULA’ group and ‘(KAPF).’ Kim Bokjin used the term ‘Hyensung Yesul(formative art),’ under the influence from Japanese avant-garde group ‘(MAVO),’ instead of ‘Johyung Yesul(plastic art)’ as a translated word of ‘bildende Kunst’ by Konrad Fiedler . He denied the way of abstract art that European art stepped forward with the concept of Fiedler’s ‘pure visibility’ but adhered to the position of Constructivism in order to accomplish the concurrence of art and life in the colony Joseon.
After his imprisonment, however, Kim exhibited a quite different aspect by concentrating on Buddhist sculptures from that of the period when he professed the construction of proletariat art. Though these works seem to be a severance of the former period to all outward appearances, but are observed as the outcome that he did not remain imitating his contemporary avant-garde arts or new trends in Europe or in Japan but made efforts to amalgamate them with Korean culture tradition. Expressed his ambition, “ … figure out the true beauty of art, leave unprecedented art work, complete the colossal Buddhist statue for Beopjusa Temple of Songnisan Mountain and a Buddhist sculpture for Cheongju Yonhwasa Temple, and, in the last place, publish the history of East art, by devoting the rest of my whole life,” Kim Bokjin investigated the tradition of Korean culture and attempted to fuse it with the creativity of modern art. He particularly paid his attention to Seokguram Grotto, the most famous cultural heritage of Tong-il Silla (United Silla) to try to inherit and adopt its cultural and artistic value in his works. We can find a significance in his art in terms that Kim Bokjin personally projected his Buddhist faith with such an artistic style to his sculptures but publicly made his efforts to encourage Joseonian people with national pride by establishing modern plastic art toward a different way from European abstract art based on Fiedler’s art theory, by producing gigantic statues of Maitreya so as to represent the yearn for a new world through the liberation and independence of Joseon from the Japanese coloni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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