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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洋風' 싱가포르 근대미술의 시점 = Nanyangfeng The NanyangPerspective in Modern Singaporean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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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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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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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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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316(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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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직후 싱가포르에서 전 인구의 75퍼센트를 차지한 화인의 대다수는 화어만을 구사하는 이른바 회어계 화인이었다. 그들은 싱가포르를 포함해 전후 '동남아시아'로 불리던 지역을 넓은 의미의 남양, 싱가포르 말레이를 좁은 의미의 남양이라 부르고(본고에서는 후자의 정의를 따름), 화어 간행물과 화어 학교를 중심으로 남양 독자의 화어문화를 만들어 갔다. 당시 미술계의 주역이었던 화어계 아티스트들에게 '남양풍'은 새로운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1965년 소수 영어계 엘리트에 의해 탄생한 공화국은 화어문화를 배제하고 서구와 대등한 국가를 만들 것을 지향하는 정책을 펴게 된다. 이에 따라 식민지 시대에 영어계 통치문화와 공존 번영했던 화어문화는 급속히 시대에 뒤떨어진 부차문화로 전락하게 되고 자연히 남양풍에 대한 관심도 사라져 갔다.
이후 남양풍이 다시금 논의의 대상이 된 것은 비교적 최근(1979년 이후)에 개최된 몇몇 전시회를 계기로 한다. 이들 전시회에서 남양풍 미술은 감미로운 남국 낙원 타입의 회화로서 남양미술전과학교 제1대 교장인 림학타이가 제창했던 하나의 통합된 유파로 정의되었다. 한 편 싱가포르에서 오랫동안 터부시되어 왔던 사회주의적인 작품이 일본에서 최초로 소개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어디까지나 남양풍의 외부에 존재하는 대조적인 카테고리의 작품군으로 취급되었다.
본고에서는 이상의 전시회와는 다소 다른 시점에서 싱가포르 공화국 건국 직전인 1950년대에 주안점을 두고 남양풍을 고찰하고자 한다. 방법으로는 화어문헌을 중심으로 남양의 정치사회에 있어서 화어문화가 차지하는 위치의 변천을 고려하며 남양풍을 당시의 화어문화의 일부로 보고 논고를 전개하고자 한다. 또한 싱가포르 사회가 독립을 전후해서 급속하게 변화했던 것을 전제로 1979년 이후 재인식되었던 남양풍과 독립 전의 남양풍의 차이를 당시의 화어 간행물을 통해 검증한다.
이를 통해 남양풍 미술은 하나의 통합된 유파가 아니라 화어사회뿐 아니라 당시의 정치제도와 연동하는 극히 다양허며 유동적인 것이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하나의 지역명으로서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서 태어난 남양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싱가포르 독립 후, 화어문화의 주변화에 따라 크게 변화해 갔다, 그리고 1970년대 말, 작품이 제작된 시대와는 이미 시간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커다란 차이가 생긴 상황에서 남양풍이 재평가 되었을 때는 남양풍이라는 언어가 원래 갖추고 있었던 다의성은 쉽게 간과되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개최된 '남양회고전'을 시작으로 히는 일련의 전시회 이후, 남양풍 표현의 일부만이 마치 그 전체를 대변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싱가포르 독립 이전에는 감미롭고 평화로운 남국낙원 타입과 더불어 사회주의적 요소와 새로운 국가 만들기에 관한 이데올로기 역시 남양풍의 중요한 구성요소였다. 이들은 작품 내용이 나타내는 사회적 의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미술이 사회 개선에 공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양주도의 아트마켓의 우세와 정권 투쟁에서의 화어계 화인의 패배 이후 사회주의적 요소는 점차적으로 남양풍에서 사라져가게 된다. 독립 전 화어사회와 깊이 결부되어 있던 작품은 역사의 뒤안에 남겨진 채 보편성과 영원성을 가진 남국 낙원 타입의 작품만이 미술사상의 남양풍으로 그 의미를 부여 받게 된 것이다.
Nanyang is a sinocentric term for what is known as Southeast Asia, or be more specific, present-day Malaysia and Singapore. (The latter definition is adopted hereafter). Beginning at the turn of the 20th century and peaked in the 1930' and 40's, Nanyang was one of the major destinations for Chinese emigrants, including artists trained in the art schools in China. Since art was not on the agenda for the British colonial rule, it was the Chinese immigrant artists who set the course for the early modern art in the colony. One of their major concems was to create Nanyangfeng, i.e. the art that was uniquely Nanyang. The establishment of the new republic rendered the term Nanyangfeng irrelevant until 1979 when the Malaysian artist-curator, Redza Piyadasa, organized the exhibition Nanyang Retraspective in Kuala Lumpur. The exhibition grouped all the Huayu (Chinese language) artists under the name of Nanyang and coined Nanyangfeng as paintings of exotic paradise on earth, a view followed by later exhibitions.
However, the issue of Nanyangfeng needs to be re-examined because by 1979 a significant part of artwork and literature related to Huayu culture had become obscure. In preparation for the 1979 exhibition, only politically correct artwork was accessible. The fact that first-hand Huayu materials were not readily available made the situation even more difficult.
This article brings to attention the existence of two contending trends of Nanyangfeng in the pre-independent years. In addition to the well-known paradise type there existed another type of art that was linked to the socialist elements of Huayu culture. As part of the mainstream of Nanyang art since its cradle years in the 1930's, the socialist trend played a critical role in defining Nanyangfeng.
Like the majority of Nanyang Chinese immigrants, Nanyang artists belonged to the Huayu culture group vis-a-vis the group of English-speaking ethnic Chinese who were educated in British schools. Therefore, instead of being interpreted purely in artistic discourse as often being done, Nanyangfeng should also be understood as part of Huayu group's search for new identity in Nanyang, i,e, as an effort to define themselves in art. Since many artists were writers themselves, the art world had close ties with contemporary literature circles that were strongly influenced by Lu Xun and the socialist movement in China. Together they created a Nanyang Huayu culture that thrived into the late 1950's when the British-educated Chinese took control of the island and were determined to gear the country toward the West away from the shadows of the communist China. With the consequent decline of the Huayu culture, the non-paradise elements of Nanyangfeng faded into oblivion. In short, Nanyangfeng did not simply evolve around exoticism as commonly stated. Instead, it was a multifaceted manifestation of the various attempts ethnic Chinese made to define themselves in a colony that was striving for indepen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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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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