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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와 에큐메니컬 선교 대두 이전의 원(原)에큐메니컬 선교 : 대한예수교장로회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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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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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주제어
KDC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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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수록면
197-226(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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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종전은 식민주의의 종식을 가져왔고, 따라서 식민주의와 연계되었다는 의혹을 받아온 전통 선교도 새로운 변화가 요청되었다. 즉 탈식민주의적 상황에서 선교를 지속하기 위해서 새로운 선교 양식이 필요했다. 이런 관점에서 대두된 것이 바로 ‘선교기관’이 아닌 ‘교회’(현지 교회)가 선교의 중심이 되는 ‘에큐메니컬 선교’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해방 후 에큐메니컬 운동의 부진과 이를 둘러싼 갈등으로 인하여 에큐메니컬 선교에 대해서 제대로 소개받지 못했고, 전통 선교의 사상과 실천의 영향 아래 여전히 놓이게 되었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새로운 선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시대착오적인 선교 행태를 보이면서, 선교 현장에서 특히 현지 교회와의 관계에서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초창기부터 이미 에큐메니컬 선교적 특징을 나타냈다. 이것을 원(原)에큐메니컬 선교라고 부를 수 있다. 다시 말해, 한국교회에서 에큐메니컬 선교는 해방 후에야 비로소 수용된 새로운 선교 양식이 아니라, 해방 전부터 이미 자생적으로 구현했던 선교 양식이었다. 따라서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컬 선교의 역사를 파악하려면, 해방 후의 에큐메니컬 선교는 물론이고 해방 전의 에큐메니컬 선교도 살펴봐야한다.
본 논문은 한국교회의 원(原)에큐메니컬 선교의 재발견이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컬 선교의 발전을 위해서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 본 논문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주목받지 못한 원(原)에큐메니컬 선교의 전통을 다양한 대표적인 사례들을 통해서 밝히려고 한다. 이런 사례는 6가지로, 즉 한국교회 선교의 기원, 한국교회 최초요 유일한 초교파 연합 교회인 재일대한기독교회의 기원, 산동선교와 동역 선교, 한석진과 선교사 유예, 선교사 본국 교회의 분열과 한국교회의 대응, 군국주의 하의 에큐메니컬 운동의 훼절이다. 본 논문은 사례 연구를 통해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밝혔다. 한국교회는 자선교를 통하여 교회가 선교 주도권을 갖는 선교를 시도했고, 연합 선교를 통하여 연합 교회를 배출했으며 그 연합 교회는 역선교를 통하여 한국교회의 연합에 기여했다. 또한 한국교회는 타문화권 선교를 시도하면서 선교 주체, 선교 방식, 선교사 자격, 선교 사역 등에 있어서 에큐메니컬 선교의 귀감이 되는 선교를 실천했고, 현지 교회의 입장에서 현지 교회의 선교 주도권을 위한 선교사 유예라는 충격적인 주장을 세계선교계보다 무려 반세기나 앞서서 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는 20세기 전반에 동역 교회의 연합 및 분열로 인한 선교부 분열과 같은 난제를 잘 해결함으로써 에큐메니컬 선교와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군국주의 하의 에큐메니컬 운동의 훼절은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With the end of the Second World War the age of post-colonialism arrived and a new type of mission was requested since traditional mission had been criticized for its relations with colonialism. It is against this context that arose ecumenical mission in which the stress of missioinary initiative was shifted from mission to church. However, due to the inactivity of the ecumenical movement and various conflicts centering on it, the Korean church was poorly informed regarding ecumenical mission, and instead continued to be under the influence of tradtional mission. Consequently, the Korean church barely succeeded in adapting to the changed milieu of mission, and its anachronistic approach to mission caused a number of problems in mission field, especially with partner churches.
It must be remembered, however, that from the beginning the Korean church showed unique characteristics of ecumenical mission even before the rise of ecumencal mission, which can be named ‘proto-ecumenical mission’. In this sense, ecumenical mission was not introduced to the Korean church for the first time in the post-colonial years as a new type of mission, but had been a way of doing mission which it spontaneously practised in the pre-liberation years. Therefore, to better understand the history of the ecumenical movement in Korea, it is necessary to review ecumenical mission both in the pre-liberation and post-liberation years.
This paper maintains that the rediscovery of the proto-ecumenical mission is essential to the development of the ecumenical mission of the Korean church. To that end, this study unearths hitherto unknown and unheeded tradition of proto-ecumenical mission through six case studies: the beginning of the world mission of the Korean church, the genesis of the Korean Christian Church in Japan(KCCJ, the first and only interdenominational Korean church), the Shandong mission and partnership mission, Rev. Han Seok-jin and missionary moratorium, the union and division of the home churches of partner missions and the response of the Korean church, and the collapse of the ecumenical movement under militarism.
What this article finds is as follows: first, through self-missionizing the Korean church commenced mission initiated by the church; second, through missionary cooperation it established the KCCJ and as a way of reverse mission the KCCJ contributed to the unity of the home base; third, in doing the first cross-cultural mission, it set a good example for ecumenical mission including missionary subject, missionary method, missionary status, and missionary ministry; fourth, it had already advocated missionary moratorium’ to empower the indigenous church for leadership as early as in the 1920s, fifty years before John Gatu’s manifesto in 1971; fifth, it relatively succeeded in dealing with the complicated problems of the union and division of partner churches and missions and thus maintained ecumenical relations; and last, however, it forced to face the collapse of the ecumenical movement under milita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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