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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하대 철불의 수용과 후원 세력 = The Acceptance of Iron Buddhist Statues and Its Patronage Power During the Late Period of S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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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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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하대의 철조 불상은 9세기 중엽 경에 새로이 등장한 문화 요소이다. 이는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당시의 불교문화를 표상하는 조형예술로 중국에서 기원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철불이 6세기경 등장하여 8세기 전반에 크게 유행한 반면, 신라는 이를 9세기 이후에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중국의 철불 도입은 전황에 따른 금동령이 그 직접적 원인이었다고 하나, 신라 하대의 경우는 그러한 움직임을 확인할 수 없다. 한편, 철불에 사용된 주조 기술의 상당 부분은 이미 청동불에도 사용된 것이다. 신라는 철불 조성 초창기인 9세기 전반부터 기술적 완성도가 높은 대형 철불을 제작하는 데에 큰 문제가 없었다. 따라서 철불의 수용에는 기술적 문제보다는 조성 재료 변화에 대한 감수성이나 태도 변화가 더 중요한 문제였을 가능성이 높다.
철불이 본격적으로 제작된 9세기는 중국 남종선에 귀의한 승려들이 귀국하여 신라에 선종을 전파하기 시작하는 시점이었다. 그러나 초전 승려들은 철불 제작에 나서지 않았다. 철불의 제작은 이들보다 늦은 830년대 후반에 귀국하는 현욱, 혜철 이후부터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초전승인 도의를 기준으로 하였을 때, 당시는 선종이 도입되고 10여 년이 지난 시점이다.
이들이 활동하기 시작하였을 때, 신라 사회에서 선종은 제도권 내로 어느 정도 편입될 수 있었다. 선종 승려가 국사의 지위에 오를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보다 20여 년 쯤 뒤에 활동하는 도헌에 이르러서는 대형 철불의 조성에 선승이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신라 하대 철불 제작의 초기 중심지는 지리산의 실상사였고, 실상사 철조여래좌상은 그 시원에 해당한다.
9세기의 철불은 선종 사찰 뿐 아니라 화엄 사찰에서도 크게 유행하였다. 양자는 9세기부터 시작하여 고려 초기에 이르기까지, 서로 경쟁을 하듯 철불을 제작하여 봉안하였다. 그 중 명문이 남겨진 동해 삼화사의 예는 화엄종 계통의 사찰에서 이루어진 철불 조성 사례이다. 여기에는 형식적일 수는 있지만, 국왕의 발원과 함께 그가 파견한 중요 인물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철불 조성 불사가 이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당시 삼화사의 불사에 참여한 대대덕 결언의 행적을 통해 볼 때, 화엄종의 철불 조성도 선종과 마찬가지로 일련의 혁신 세력에 의해 시도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들은 왕실과의 밀접한 관계 속에 신라 화엄의 계보를 정리하고, 초조를 정립하는 등의 활동을 벌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선종의 그것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한편으로 철불이라는 새로운 양식의 불상 조성은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한 단월 세력의 지지 속에 진행될 수 있었다. 이들은 매우 적극적인 불사의 후원자로서 선종 및 화엄종 계통 사찰의 중창과 철불 조성에 경제적,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초기 단계에는 유력 고승과 대형 사찰의 영향력을 해당 지방의 통치에 이용하고자 하는 왕실의 의도가 크게 개입되어, 철불 조성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졌다. 반면에 9세기 말에 이르게 되면, 도헌의 봉암사 개창과 철불 조성의 예에서처럼 심충과 같은 지역의 유력 세력, 즉 호족이 이를 대체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철불 조성 후원 세력의 변화임과 동시에 지방의 문화와 정치를 담지하는 세력의 교체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The Iron Buddhist Statues at the late period of Silla newly emerged in the middle of the ninth century, as a cultural element. This trend was the unique cultural element, representing Buddhist culture in the late Silla, which was not existent before then. This cultural element originated from China. However, while Iron Buddhist Statues in China emerged around the sixth century first and were popularized in the first half of the eighth century, Iron Buddhist Statues in Silla were not accepted until the 9th century. At that time, the manufacturing techniques of Iron Buddhist Statues in Silla reached a peak, so that the technical gap between China and Silla was not significant.
It is said that the direct cause of China's introduction of Iron Buddhist Statues was the creation of the gilded Bronze Buddha according to social disorder, but such a movement cannot be identified in the case of the late Silla. The considerable part of casting technology, used in producing Iron Buddhist Statues in Silla, was already conducted in gilded bronze Buddha. Technical level in Silla did not have any significant problem in producing large-scale Iron Buddhist Statues from the first half of the ninth century. Therefore, it was likely that the more important problem was the change in sensibility or attitudes towards the change of the creation material in the acceptance of large-scale Iron Buddhist Statues.
The 9th century, which is the time that Iron Buddhist Statues were produced in a full-fledged way in Silla, was the point of time when the monks who had been converted to Southern School of Seon Buddhism(南宗禪) returned to Silla and began to promulgate Seon(禪) Buddhism. However, monks in earliest Seon Buddhism did not get involved in the production of iron Buddhist Statues. It is very probable that the production of Iron Buddhist Statues began after Hyeon-Wook(玄昱), and Hye-Cheol(慧徹), who returned in the late 830s, which was later than the earliest Seon Buddhism. Based on the monk of the earliest Seon Buddhism, Doui(道義), ten years had passed since the introduction of the Seon sect. In the meantime, Silla became a society where a monk of Seon Buddhism was set as a national preceptor(國師).
When the later generation of the Seon Buddhism began to work, Seon Buddhism in Silla could be incorporated into the system of the Silla community to a certain extent. in addition, after about 20 years or so, it can be confirmed that monks were directly involved in the formation of large-scale Iron Buddhist Statues through the case of Doheon. The earliest center of the production of Iron Buddhist Statues during the late period of Silla was Silsangsa(實相寺) temple located in Jirisan(智異山) mountain, and especially, the Seated Iron Buddha of Silsangsa belonged to that temple. Hyeonwook is known to be the monk who achieved the creation of this Iron Buddhist Statues. However, there is a high probability that a person, who worked in Silsangsa temple after him, created this seated Iron Buddhist Statues.
During the 9th century, Iron Buddhist Statues were prevalent even for the Huayan Buddhism(華嚴宗) temples going beyond Seon Buddhism temples. These both Buddhist sects began to create and enshrine Iron Buddhist Statues from the 9th century to the early Goryeo as if they had been competing with each other. In particular, the creation of Iron Buddhist Statues, in which inscription is left in Samhwasa(三和寺) temple located in Donghae City, is important as a concrete example of Iron Buddhist Statues created by Huayan Buddhism. This shows a Buddhist service of creating an Iron Buddhist Statue in which important figures, dispatched by King with his prayer, are actively engaged, although it seems to be cursory.
Judging from the deeds of Gyeoleon(決言) who joined the Buddhist service at those times, it is estimated that the creation of Vairocana Buddha in Huayan Buddhism was attempted by a series of progressive groups just like the c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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