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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인식의 확장과 단군자손의식 = The Dissemination of the Concept of Tangun and the Consciousness of Identity through his Descend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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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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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8(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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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 the beginning of the twentieth century, Tangun nationalism has faced distortions of modern history and served as the focal point of our continued societal malaise, in particular concerning Tangun and Gija, both symbolizing Korea's society and culture in the so-called ‘Tan-Gi(檀箕)’ or parallel systems of thought regarding each figure. As the role of Gija was omitted and that of Tangun emphasized, the latter was forced to shoulder both of these systems of the concepts of Korean history and civilization. Since the Goryeo period, the two historical and cultural figures Tangun and Gija have been fused into a system of thought centering on Tangun only, as Gija's role being abruptly buried. This has coincided with the appearance of extreme nationalism and has resulted in a revolution of our sense of history and culture.
At the end of the nineteenth century and the beginning of the twentieth, Korea faced imperialistic invasions. During the subsequent Japanese occupation, Tangun, already considered to be the founder of Korean history, was reinstated as the founder of the Korean people by bloodline in order to restore the Korean people's sense of sovereignty during this period. With the Korean people described in such terms as Tangun's blood progeny, Tangun's heirs, and other designations, the consciousness of being Tangun's descendants expanded its influence over Korean history and culture to include the concept of the sacred tribe, which came to apply to both the Korean peninsula and its people. A series of activities involving Tangun nationalism played an active role in this. Even so, the “Dongjo-donggeun(同祖同根, the Japanese theory of Koreans and Japanese sharing common roots)” made this very difficult, and there were even attempts to reshuffle Tangun to fit within the Japanese version of the mythos of national origin. The schemes of the governor general to bury Tangun nationalism were likewise formidable. Still, during this time there was a campaign centered on Tangun to foster a sense of Korean history and culture, as well as a sense of unity. This played a part in throwing off the vestiges of feudal society while giving rise to other results.
Today, we are still mired at the level of the early twentieth century when the "progeny of Tangun" did not assert their mono ethnicity. Now that we are in the twenty-first century, rather than using Tangun nationalism for its original purpose, we need to develop of unified system of thought within a comprehensive framework, because while the value of the Korean nation and people are important, we should not bury universal truths within that sense of worth.
단군민족주의는 19세기 말 20세기 초부터 왜곡된 근현대사의 경험을 지속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정체성 문제에서 구심점의 역할을 하였다. 특히 東國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단군과 기자, 즉 ‘檀箕’라는 병렬적 인식론에서 기자가 탈락하고 단군이 강조됨으로서 역사와 문명으로 함축할 수 있는 양축을 혼자 감당해야만 했다. 적어도 고려시대 이후 우리 역사문화의 양대 축이던 단군과 기자가 단군을 중심으로 통합됨으로서 기자로 상징되던 다른 축은 급격하게 매몰되는 양상을 보이게 되었고, 극한의 국수주의적인 경향도 나타났다. 이것은 우리 역사관과 문화관의 일대 변혁이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특히 이후 일제강점기에 국권 회복을 위해 우리 역사의 시조인 단군은 혈연을 매개로 한 민족의 시조로 재설정되었다. 단군혈손・단군후예 등으로도 표현된 단군자손의식은 신성민족으로 요동과 한반도의 강역과 종족을 포괄하는 역사와 문화를 범위로 하였다. 단군민족주의로 함축할 수 있는 일련의 움직임들은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런 가운데에도 동조동근론 등 일제의 동화정책으로 말미암아 단군을 일본의 건국신화 속에 재편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단군민족주의를 매몰시키려는 조선총독부의 분열책동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 단군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문화관은 우리의 독립과 전조선인의 대동단결을 위한 사회문화적인 캠페인을 이끌었고, 탈봉건사회의 견인 역할을 하였다. 아울러 그에 못지않은 부작용을 초래한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아직까지 선언적으로 단군자손이 단일민족임을 고집하지 않았던 20세기 초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단군민족주의가 21세기에 순기능을 하려면 보다 거시적인 틀에서 통합의 이론을 개발해야 한다. 민족과 국가의 가치가 중요하지만, 그 가치 속에 보편성을 매몰시켜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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