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宣惠廳의 운영과 中央財政構造의 변화 : 재정기구의 합설과 지출정비 과정을 중심으로
저자
발행사항
서울 : 高麗大學校 大學院, 2014
학위논문사항
발행연도
2014
작성언어
한국어
주제어
발행국(도시)
서울
형태사항
iv, 298 p. : 삽화, 도표 ; 26 cm
일반주기명
지도교수: 權乃鉉
참고문헌: p. 291-298
DOI식별코드
소장기관
본 논문은 17세기부터 19세기 초반에 이르는 시기동안 선혜청의 운영이 중앙의 재정구조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통시적으로 분석한 연구이다. 주지하다시피 선혜청은 대동법의 시행기관으로서 19세기까지 그 위상을 확대해나갔다. 따라서 조선후기 선혜청의 운영을 검토하는 작업은 왕조정부의 재정운영원리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연구가 되리라 생각한다.
각 장의 주요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장에서는 17세기 전반 대외정세의 변화 속에서 선혜청의 설립이 난항을 겪는 가운데 인조대 말까지 상평청과 진휼청을 합설해갈 수 있었던 요인을 중앙의 재정의 수요면에서 살펴보았다. 광해군 즉위 초 도성에는 경기선혜청 말고도 분호조와 상평청, 진휼청과 같은 권설아문이 운영되고 있었다. 분호조는 임진왜란기에는 피난지에서 세자의 명을 받드는 分曹의 성격을 띠었지만, 전란이 종식된 후에는 명사신의 접대에 쓰이는 물품을 마련하고, 광해군 10년 이후부터는 군량을 조도하는 역할을 병행하였다. 한편 상평청과 진휼청 역시 권설아문으로서, 경기 5참의 勅需를 지원하고, 기근 시 진휼을 담당하는 곡식을 운영하였다. 그러나 각 아문의 명암은 인조대부터 달라졌다. 분호조는 점차 그 기능을 상실해갔으며, 공물가 지출 업무는 선혜청에 맡겨졌다. 상평청과 진휼청의 재원도 선혜청에서 관리하게 되었다.
17세기 전반 대외정세의 변화와 군사적 긴장에 따른 재정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다양한 별설아문이 운영되었고, 이것이 점차 선혜청의 역할로 수렴되었다. 인조대까지 대동법은 명사신의 접대와 군량미 마련을 위한 作米의 일환으로 이해되었다. 인조 초반 삼도대동법을 대신한 작미관행은 갑술양전의 시행과 병자호란의 종식으로 점차 폐지되어갔다. 이에 대동법이 본래의 취지에 맞게 확대 시행되어간 것은 효종 3년(1652)의 호서대동법부터였다.
2장에서는 17세기 후반 대동법이 확대 시행되는 가운데 선혜청의 운영원리가 어떻게 정비되고 이로써 재정적 위상이 강화되어 가는지 살펴보았다. 호서지방에서부터 호남 연읍, 호남 산군, 영남, 해서지방으로 대동법이 확대 시행되면서 이 시기 선혜청으로 납입되는 대동세입은 점차 늘어나게 되었다. 정부에서는 대동미를 보관할 창고를 증설하고, 공물가를 지급하는 절차와 회계처리를 고민해야 했다. 더욱이 재원을 관리할 선혜청의 관원도 추가로 임명해야 했다. 이에 본 장에서는 선혜청의 직제와 청사의 증설, 공물가 지출방식을 각각 검토하였다.
우선 선혜청의 직제에 관한 부분이다. 선혜청의 직제는 도제조-제조-낭청-산원-서리 이하 원역들로 비교적 단순한 형태를 띠었으며, 수뇌부로서 재정출납 권한을 지닌 도제조와 제조당상은 겸직으로 운영되었다. 이중 비변사의 천거나 국왕의 특교로 임명된 啓差堂上 2인과 蔭官으로 오랜 기간 선혜청의 회계출납을 관리하는 낭청이 선혜청의 실질적인 운영주체가 되었다.
그런데 선혜청을 겸직제로 운영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우선은 실직관원수를 줄여 경상비를 줄이고 업무효율을 꾀할 수 있는 이점이 작용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이유는 17세기 후반 비변사의 위상이 강화되는 가운데, 정책 의결권을 지닌 삼정승과 중앙재정을 관장하는 호조판서가 비변사와 선혜청의 당상을 겸직하는 구조를 띰으로써, 선혜청은 대동세의 출납뿐 아니라 군사, 외교, 대민구휼, 왕실 유지에 따른 제반 수요에 부응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비변사 중심의 정치구도 속에서 중앙재정을 보다 탄력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선혜청과 같은 거대 재정아문을 겸직제의 형태로 운영하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다만 계차당상에 임명된 자들을 살펴보면 왕대별로 특징이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대동법 논의가 한창이던 효종대부터 숙종대까지는 대동법과 공안개정 논의를 이끈 인물들이 당색에 상관없이 임명되었던 데 반해, 경종대에는 소론계가 제조당상에 임명되고, 영조대는 노․소 탕평파에서 점차 노론 척신계 인물로 옮겨가는 양상을 보였다. 한편 정조대에는 준소계와 노론 시파에 해당하는 인물들이 중임되는 경향을 보였다. 낭청 역시 18세기 들어 세력 있는 양반가의 閒遊者들이 배속되는 문제점이 나타났다. 이처럼 선혜청을 운영하는 수뇌부와 실물관리자층이 폐쇄적인 인사절차를 거쳐 임명되었으며, 영조대부터는 국왕의 의도를 대변하는 특정 인물들이 계차당상에 重任되는 경향을 보였다.
둘째, 선혜청 창고가 도성 안팎에 설치되면서 중앙의 공물조달체계가 변하고, 各司自辦의 원칙도 수정되었다. 조선전기에는 각 군현의 貢吏가 매년 공안장부에 기재된 공물을 공물아문에 바치면 공물아문은 이를 왕실과 각사에 다시 진배하였다. 그런데 선혜청이 설립되면서 각사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공물은 형해화되고, 선혜청에서 지급하는 공물가에 대한 의존도는 상대적으로 커지게 되었다. ‘各司自辦’의 원리가 변화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대동세가 중앙에 집중되면서 점퇴와 추가상납의 폐단은 해소되었지만, 공물조달에 참여하는 도성민의 숫자는 점차 늘어나게 되었고 이것이 지출 증대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셋째, 공물가 지출에 관한 부분이다. 대동법이 각도에 시행되면서 대동세의 수취와 상납, 공물가 지출방식의 원칙을 담은 대동사목 역시 차례로 간행되었다. 문제는 사목 내에 공물가를 지급해야 할 28개 관서의 元貢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대동사목은 기존 공안을 그대로 인정한 상태에서 추가로 공물화된 진상과 역가만 자세히 기재해 놓았다. 28司의 원공을 명확히 밝히지 않은데다, 진상, 역가를 선혜청 元貢에 포함시킴으로써 선혜청의 공물가 지출은 계속 늘어나게 되었다.
3장에서는 18세기 전반 6도 대동법 시행이 완료된 후 선혜청의 지출이 늘어나게 되면서 호조와 갈등을 빚게 되는 상황을 검토하였다.
대동법의 시행으로 정부에서는 그때그때 분정하거나 차출해 쓰던 인적, 물적 자원에 대해 값을 지불하기 시작했다. 대동법의 확대 시행은 공물가 지급 범위를 넓히는 효과를 낳았고, 보다 많은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값이 비싼 선혜청의 원공 대신 호조의 別貿를 활용하기 시작하였다. 정부의 높은 공물가 지급에도 불구하고 시중가격의 상승으로 공물을 제 때 조달하지 못하고 도산한 공인층이 나타났으며, 공물가 지출을 둘러싸고 선혜청과 호조 사이에 갈등이 불거졌다.
영조는 공인들이 미처 진배하지 못한 공물[遺在]을 탕감해주고, 이들에게 부과되는 과외별역의 폐단을 개선해주었다. 한편, 부족한 재원을 충당하고 시중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鑄錢 논의가 제기되었다. 그러나 영조 자신이 주전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기 때문에, 주전을 지속하여 시중에 통화량을 늘리기보다는 유재탕감과 과외별역을 줄여주는 조치에 심혈을 기울였다. 영조는 시장통화를 억제하고, 중앙재정을 철저히 긴축하는 방식으로 18세기 전반의 지출문제를 해결해나가고자 했다. 이에 ‘損上益下’를 표방한 영조의 재정정책은 재위 중반 ‘度支定例의 간행’과 ‘균역법의 시행’으로 보다 가시화되었다.
4장에서는 18세기 중반 호조와 선혜청 사이에 경비지출체계가 어떻게 정비되어가는지 탁지정례의 간행 경위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탁지정례는 橫看의 참용례로서 영조 25년부터 28년 사이에 총 23권(『국조상례보편』 별도)으로 간행되었다. 이로써 왕실공상과 중앙각사의 일반경상비 뿐아니라 왕실의례와 관련된 특별경상비까지 지출례가 마련되었다. 한편 호조에서 별도로 구입하는 물품에 대해서도 새로이 공안장부가 마련되었다. 이 『度支定例』와 『別貿貢案』을 통해 선혜청과 호조에서 지출하는 공물가의 범위가 정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정례의 간행은 단순히 중앙경비를 줄이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례가 간행되는 시점에 맞물려 減疋이 확정되고, 균역 급대재원을 마련하는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군포를 2필에서 1필로 줄이는 대신 군문에 부족한 재원을 급대해주어야 하는 필요가 생겨나면서 불필요한 경비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불거져 나왔다. 이에 『각사정례』 뿐 아니라 왕실의 공상물자를 추가로 줄이기 위한 『선혜청정례』가 작성되었다.
군포를 줄이고, 왕실공상을 추가로 줄이는 조치는 모두 ‘損上’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급대재원은 사실상 지방관수로 쓰이는 은여결과 해세를 흡수하고, 결전을 추가로 거두는 것으로 채워졌기 때문에 ‘益上’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였다. 정례의 간행으로 재정지출의 통제장치가 마련되기는 하였지만, 정례 안에 이미 별례가 포함되어 있었던 데다가 선혜청의 원공은 19세기까지 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여기에 호조와 궁방으로의 옮겨주는 재원 또한 그 양이 늘어나고 있었다. ‘손상익하’의 재정이념이 강하게 투영되었던 정책 내부에 이미 지출 증대요인이 내재해 있었으며, 중앙의 재정 부담을 지방에 전가시키는 관행이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5장에서는 18세기 후반~19세기 초 균역청이 선혜청에 합설된 후 ‘호조-선혜청(균역․상평․진휼청) 중심’의 재정구조가 형성되고 이로써 선혜청의 지출이 전 방위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설명하였다.
균역청은 상평, 진휼청과 마찬가지로 제조당상과 낭청, 산원 등을 선혜청의 관원이 일부 겸직하는 형태로 운영되었다. 물론 회계 관리는 따로 하였지만, 청사와 창고를 선혜청과 나누어 썼으며, 상평․진휼청과 마찬가지로 공물을 운영하여 공물가 지급 업무에도 참여하였다. 이로써 선혜청과 균역․상평․진휼청은 중앙의 재정아문 중 가장 많은 재원을 보유함으로써 중앙각사와 군문에 공물가와 급대재원을 지급하는 역할을 하였다.
대동법 시행 이후 선혜청에 대한 각사의 재정의존도가 높아진 것과 마찬가지로 균역법 시행 이후 균역청에 대한 군문의 재정의존도 역시 높아졌다. 한편 대동세를 출납하고 급대재원을 지급하는 데 따른 국왕의 裁可權은 강화되었다. 여기에 영조대 후반부터 선혜청과 중앙 군문에도 회계법이 적용되고, 중앙재원이 매년 국왕에게 총액으로 보고되는 체계가 마련됨으로써 중앙재정의 관리체계가 강화되고 집권적 재정운영이 가시화되었다.
조선정부는 18세기 말까지 선혜청을 확대 운영해가는 과정에서 재정물류의 집적과 배분을 원활히 하기 위해 관서 간 재원 이획과 총액단위의 會簿 관리를 모색하였다. 또한 늘어나는 경비지출을 줄이기 위해 왕실재정을 압박하는 한편 손상익하의 절약재정을 실현해갔다. 이와 같은 성과는 분명 대동법과 균역법의 시행으로 가능했던 것이지만, 이러한 재정운영 틀은 19세기 들어 새로운 문제를 안게 되었다.
대동법은 시장조달을 공식화한 제도였지만, 시장의 유통망을 활용하여 거래비용을 줄이거나 시중가를 활용하여 조달단가를 낮추는 방식으로 운영되지 않았다. 오히려 조선정부는 정반대의 원리로 대동법을 기획하고 운영해나가고자 하였다. 大同事目 내에는 현물조달과정에서 발생하는 잡다한 물류비용을 대동세에 포함시키도록 한 조치가 다수 확인된다. 시장의 유통구조 속에서 해소해야 하는 물류비용을 국가 재원으로 보전해주었던 것이다. 한편 선혜청에서 지급하는 공물가를 시중가보다 높게 책정해 놓았으며, 시가가 등귀하더라도 정부지불가격인 공물가를 크게 조정하지 않았다. 물종에 따라 지불가격을 조정하였다면, 18세기 전반 선혜청의 원공물수가 늘어나는 것에 상대적으로 부담을 덜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각사주인과 공계인들이 지급받는 공물가는 상품가라기보다는 이들이 감당하는 ‘市役의 대가’와 같았기 때문에 이를 함부로 줄일 수는 없었다.
선혜청이 확대 운영되는 과정에서 정부의 재정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던 요인도 이와 관련되어 있다. 국왕과 신료들은 시장이 정부의 통제권 밖에서 활성화될 경우 買集과 모리행위를 통해 상업이윤이 특정인에게 집중됨으로써 재화가 합리적으로 분배되지 못할 것을 우려하였다. 이에 조선정부는 선혜청과 같은 거대 재정아문을 운영함으로써 시장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물류의 재분배를 실현해나가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국왕의 집권력으로 재정운영을 전반적으로 장악하지 못할 경우, 중앙에 집적된 재정물류는 재분배를 실현하는 용도로 쓰이기보다, 왕실이나 세도가의 私財로 전용될 위험을 노정하고 있었다.
19세기 선혜청의 운영이 중앙재정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논의한 것 이상의 분석이 필요하리라 본다. 1820년 무렵 호조와 선혜청의 재정적자가 가시화되고, 宮房의 私的 재정이 늘어나는 문제들이 다시금 야기되었다. 부세 수취에 있어서도 外方分定의 방식이 反動적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혜청은 갑오개혁 직전까지 최대 중앙아문으로서 다시 한 세기 가량 유지되었다.
19세기 선혜청은 지나온 두 세기와는 다른, 새로운 재정과제들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이를 해결해나갈 돌파구를 모색해가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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