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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典洞 큰 길’ 주변의 근대와 조선 벌열가문의 후예들- 장기사적 시야로 읽는 장소성 - = A historical essay on the sense of place when modernity meets tradition in ther northern part of downtown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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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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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158(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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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is widely believed in Korea that Bookchon, the northern part of the capital city in Choson Dynasty, has been regarded as a place where the men in powerful position had lived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It sounds reasonable when we consider Bookchon the limited area surrounded by two palaces. But on a broader note, it is also true that Bookchon’s geographical boundary has been indistinct and even flexible from time to time. The southern part of this limited area, for example, has affinity and difference compared to its northern part. It has been regarded as Bookchon as the case may be, but it also has been admitted that unlikely the northern part, it was not far from the commercial area called Jongro.
This paper focuses on the very complicated area to clarify the sense of place that had been created over the course of long period ranging from Choson dynasty to the early twentieth century. Because of the fact that time is the key factor to form the sense of place, this article adopted a new strategy that the narrative should be written from the long term perspective, which has not been prevalent in Korean historical academy.
In the middle of the southern part of that limited area, there had been a main road called Jeondong street. In other words, the target area was composed of this main street and neighboring places. That is why this paper starts with what happened on this street The result of the analysis clearly shows that new facilities including military camp, municipal market and trams made an appearance around the street, because of the political turmoil and economic necessity. But it also articulated the idea that this modern-style change had been caused by the economic sense of place formed from late Choson dynasty.
From the perspective that place is not a mere stage or container and it should be regarded as an interactive factor with human, it is clear that the people who had lived in the target area should be analyzed. That is why the latter part of this paper dealt with some family groups. The results of this research revealed the fact that regardless of the political faction, so many family groups had lived in that target area and some of them had tried to adapt the political and economic change that the modern society brought out in their own way.
조선시대의 북촌은 일반적으로 ‘노론의 주거지’로 정의된다. 그러나 광의의 북촌에 포함되는 지역은 문제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장소는 아래쪽으로 ‘시정아치들의 터’인 종로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보면 협의의 북촌과 같다 할 수 없지만, 북촌을 북촌이게 한 조선 지배엘리트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곳이 과연 ‘노론의 집거지’였는지, 근대가 그 후예들의 삶과 집자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엄밀하게 논증된 바 없었다. 이 연구는 현재의 우정국로와 그 주변을 대상지역으로 하여 이곳이 경험한 근대를 조선시대의 장소성과 인간집단이라는 연속성 위에서 그려보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근대는 어김없이 ‘전동 큰 길’로도 찾아왔다. 고종은 민가들을 사들여 철거한 뒤, 시위대의 병영을 두었다. 1919년 이 자리에는 종로 공설시장이 들어섰다. 조선후기 발리전이 들어서면서 상업지대화되었던 ‘전동 큰 길’은 식민지 시기 들어 혜전, 모물전 등 조선식 상가가 밀집한 곳으로 변해갔다. 그 길 위로 전차가 다녔다. 그 옆으로 벌열가의 후예라 할 윤웅렬이 살았다. 그의 아들 윤치호는 이 집의 신선하지 않은 우물물과 탁한 공기를 비위생적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사후에도 여전히 그 ‘냄새나는’ 전동 집에 살았다.
윤웅렬-윤치호 부자가 ‘전동 큰 길’에 면하여 살고 있었던 것처럼, 그 길의 주변에도 오랜 시간 터를 잡고 살아온 벌열가문들이 있었다. 이 글에서는 장동김씨, 풍양조씨, 여흥민씨, 풍산홍씨 등 노론계, 그리고 경주김씨와 달성서씨 등 소론계 가문의 집자리들을 확인했다. 노론 가문의 후예들 중 일부는 근대의 논리에 맞추어 자기 삶의 방식을 바꿔나갈 줄도 알았다. 서적상으로 변신한 황우록이 그런 경우이다. 그러나 그는 오랜 시간 내면화해왔을 벌열가의 체질까지 바꾸어내지는 못했다. 유력한 소론계 가문들의 존재는 ‘전동 큰 길’과 그 주변을 단순히 ‘노론의 집거지’라고만 말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이곳에 살던 소론계의 후예들 역시 조선적 관성과 근대적 변화에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대응해 나갔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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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2-26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The History of Seoul -> Seoul and History | KCI등재 |
2016-02-03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鄕土서울 -> 서울과 역사외국어명 : The Hyangto Seoul -> The History of Seoul | KCI등재 |
2015-10-22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 서울역사편찬원영문명 : The City History Compilation Committee Of Seoul -> Seoul Historiography Institute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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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27 | 0.27 | 0.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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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5 | 0.33 | 1.024 | 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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