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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변경(邊境) 지역의 민족정체성과 언어정책 = National Identity and Language Policy of Borderland of Romania -Case of Transylvania after Eighteen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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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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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C
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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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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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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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8(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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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다민족으로 구성된 ‘트란실바니아’라는 변경(邊境)지역의 역사와 언어에 대한 고찰이다, 역사적으로는 트란실바니아 지역이 루마니아史에서 가지고 있는 의미를 살펴보기 위하여 이 지역의 루마니아 민족의 이주설과 상주설에 관련된 여러 주장과 설을 비교 분석하였다 또한 트란실바니아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루마니아 민족의 엘리트 집단과 그레코-가톨릭의 상관성을 고찰하였다 언어적인 측면에서는 민족적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과 이것을 전체 루마니아인들로 확대하기 위해서 고심했던 루마니아 엘리트들이 핵심적인 사안으로 생각한 근대 민족어의 생성을 언어 정책적인 관점에서 연구하였다. 근대기에 접어들면서 트란실바니아 지역의 루마니아인들은 그 지역의 계속적인 거주자가 아니었다는 주장이 몇몇 학자들에 의해서 제기되고는 하였다. 로마제국의 쇠락과 더불어 트란실바니아와 다뉴브강
상류에 거주하던 루마니아인들은 강 이남으로 이주하였다는 것이 주장의 핵심인데 다양한 관점에서 이를 고찰해 볼 때 현재 상황에서 루마니아인들의 이주설을 증명할 근거는 희박하다고 할 수 있다. 중세 이후 트란실바니아 지역이 루마니아의 영토에 공식적으로 포함된 제 l차 세계대전 이후까지 루마니아인들은 이 지역의 소수민족으로서 남아있었으며 이 지역의 타 민족들에 의해서 정치-경제적으로 소외되어있었다. 19 세기 중반에 있었던 루마니아인들의 통일에서도 트란
실바니아 지 역은 제외된 채 발라키아 공국과 몰도바 공국의 통일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트란실바니아의 총 인구를 추정해 볼 때 루마니아인이 전체 인구의 과반수이상을 차지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정치적 권력은 대부분 헝가리, 세클레르(Szekler) 그리고 색슨인(Saxon) 들이 장악하고있었다. 이들 세 민족은 귀족계급으로 구성된 정치기구를 통해서 이 지역을 통치하였으며 루마니아인들은 정치적 의사결정에서 제외되었다. 17세기말에 트란실바니아 지역이 합스부르크 제국에 통합되면서 비엔나 황실에서는 교회 연합(Church Union) 이라는 형식을 빌어서 루마니아인들의 정교를 수용할 방안을 제시한다. 이 방법을 통해서 루마니아정교는 로마 가톨릭 교황과 그 위계 체계를 인정하는데 대가로 정교회
적 의례와 전통을 인정받으면서 통시에 성직자들은 고등 교육의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는 트란실바니아 지역의 루마니아 성직자들의 지적 성장과 이후 지식인 계층의 탄생에 있어서 중요한 계기가 된다 트란실바니아 학파의 뿌리 역시 이곳에서 시작된다. 이렇게 척박하고 배타적인 상황에서 탄생한 트란실바니아 루마니아인들의 지식인들은 그레코-가톨릭(Greco-Catholic) 신부들이었으며 이들은 ‘트란실바니아 학파 (Scoala Transilvaniana) ’를 만들어낸 제1세대가
된다. 루마니아 민족의 언어적 실체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루마니아어가 라틴어의 일종이라는 사실에 크게 자극받는다. 이들은 ‘트란실바니아 학파’라는 학문적 전통을 수립하면서 발라키아와 몰도바 지역의 지식인들을 지적으로 자극하게 되며, 이후 이 지역의 라틴주의자들과 연결되어 민족과 언어의 정체성을 수립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낸다
언어적인 변에서 트란실바니아 학파는 루마니아어를 라틴어화 하기위한 몇 가지 극단적인 방법들을 도입한다 먼저 문자 체계를 완전히 바꾸는 작업을 하였는데 이것은 무엇보다도 어려움이 많이 따르는 일이었다. 19 세기 중반에 발라키아-몰도바 통일 공국에서 법령으로 키릴문자 (Kirillitsa) 사용을 금지하고 로마문자만을 사용하도록 강제(强制)하였는데 이는 세계 언어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경우였으나 많은 우여곡절 끝에 결국에는 성공하게 된다. 이와 함께 여러 지역어로 분화되어있던 루마니아어를 하나의 통일된 언어로 디자인해 나가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이를 위한 가장 직접적인 방법으로 여러 문법서들과 사전을 만들어낸다. 어휘적으로도 슬라브어 및 터키어에서 탈피하여 세련되고 근대적인 언어로 발전하기 위하여 주로 라틴-로망스 계통의 언어들로부터 많은 차용어를 받아들이며 과거에 사용되던 비 라틴어 계열의 어휘들을 언어사용에서 제거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이에 있어서 교육과 문학은 큰 역할을 하였다 당시의 문학은 하나의 대중적 매체로서 그들이 원하던 신조어를 확산시키는 역할을하였다. 루마니아의 지식인들은, 루마니아가 근대민족국가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통일성 있고 아름다운 민족어가 민족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필수적인 조건인 것으로 인식하였다 이에 많은 지식인들은 근대 민족어를 바로 세우기 위하여 언어정책연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In this article I tried to show characteristic factors of Romanian people's identity in Transylvania area, and also Transylvanian intellectuals concerns about designing their national language, which is highly related with the intellectuals beliefs on their nationality and pride. The current physiognomy of Romania with its borderlines fixed after the second world war is approximately eclipses with the union of the Three Principalities i.e. Wallachia, Moldova and Transylvania. After medieval times, Romanian people in Transylvania became to be subordinated by neighbouring peoples like hungarian, szekler and Saxon and remained as a
minority people from that area. Even though Romanian people exceeded a half population of Transylvania
at that time, political powers are only at the hands of Hungarian, Saxon and Szekler peoples because the majority of Romanian people were slaves or in similar situation. The diet of Transylvania was consisted of nobilities of these peoples and they made discriminations on Romania minority by not allowing freedom of using Romanian Language and especially by making Romanian people's religion, Orthodox, as an illegal one. Because of these discriminations the Romanian orthodoxies could not have a higher education, and consequently could not have that much intellectuals. At the end of 17th century when Transylvania was incorporated to Habsburg, Court of Vienna, by suggesting a 'Church Union' to the Romanian Orthodox, wanted to make a power balance with Hungarian noble people and embrace the forgotten Romanian people. Metropolitan Bishop Teofil accepted
this new mixed religion, Greco-Catholic which mainly accepted the orthodox rituals, but some people rejected this new religion. This new religion gave a good chance to Romanian people to have a religious life and to participate public education. From this occasion, Romanian clergymen could have a economically stable life, becoming noble and intellectual. They did a role of Romanian intellectuals in Transylvania. The Transylvanian School also have here their origin. So the intellectual basis of Transylvania was Greco-Catholic priests.
Priests of Greco-Catholic or in other word Uniate and they became the first generation of Transylvanian School. The fact that Romanian language has a Latin origin moved the intellectuals a lot and became so proud of that fact. They wanted to research more detail their history and redesign the language to be more similar one to latin like French or Spanish. Transylvanian School followed a very extreme methods to wipe out the
influences of other language like Slavic, Turkish, Hungarian etc. than Latin. They wanted to install Latin and Romance Languages characters in their language. First mean was changing a whole orthographic system. They
forgive Kirillitsa and then accepted Roman Alphabet. Changing of whole orthographic system is hard to find out from history of other languages of the world. Even though this have had many problems, they successfully
finished this task. They also tried to import many new words which could substitute the former words from other languages. Modern grammar and coherency of language were also intellectual's main concerns. Establishing modern nation has a close relation with modern language. Because coherency and modernity of national language is an essential condition for inspiring national consciousness. So every nation states tried to make a proper language politics. Usually this aspect is clearly seen from the marginal areas of states where multiple peoples are living together.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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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기타) | KCI등재 |
2013-01-01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동유럽연구 -> 동유럽발칸연구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KCI등재 |
200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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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13 | 0.13 | 0.17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16 | 0.15 | 0.459 | 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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