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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유학 정치이념에 대한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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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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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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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5(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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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유학의 정치사상적 의미를 오늘의 시각에서 재평가해 보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한 시대의 정치사상을 그 시대의 주된 사상 중심으로 살펴보려고 할 때 여러 가지 한계가 있겠으나 다음 몇 가지를 유의함으로써 이를 가능한 극복하려고 했다. 첫째, 조선조 유학을 그것이 전래된 그 시대적 입장에서 먼저 살피고 난 후, 이를 다시 오늘의 시각에서 재평가한다. 둘째, 유학을 종교라는 관점에서가 아니라 사상의 관점에 한정해서 살펴본다. 셋째, 다양한 관점의 문제의식을 지니기 위해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는 자료를 활용하도록 노력하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다같이 함께 살펴보도록 한다. 넷째, 유학에 대한 부정적인 면은 주로 유학에 깊이 관여했던 이들의 언급을 중심으로 살펴보며, 이를 시대별로 나누어 그 특징을 살펴봄으로써 시대상황과 사상과의 연계성에 주목하도록 노력하였다.
먼저 조선조 유학 곧 성리학이 정치이념으로 채택되는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중국 송대의 성리학과 차이점을 알아보았다. 성리학이 지도층 중심의 통치윤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상이라는 점에서는 일치되지만 조선조의 경우에는 그것이 채택되는 과정상의 특이성 때문에 배타적인 성격, 토론문화가 억제된 점 그리고 실천적 개혁성을 띤 점 등에서 중국의 경우와 다른 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특이성을 지닌 조선조 성리학은 오백년간이나 계속되면서 다음과 같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보여 주었다.
긍정적인 면으로는 조선조 유학이 정의를 지향하는 문화인식을 가지게 했고, 인륜도덕을 숭상하는 기풍을 진작시켰으며, 논리적 사고력을 키우는데 보탬이 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었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자연관을 제공했고, 도덕성 있는 지도자를 배출하였으며 그만큼 교육에 관심을 가지도록 했고, 가문 중심의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는 구심력을 제공했다는 점 역시 빠뜨릴 수 없었다. 한편 유학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사상적인 측면에서라기보다는 당시 성리학 지배하의 정치현실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루었는데, 그것은 다음 몇 가지로 집약할 수 있었다. 즉, 맹목적 모방에 따르는 고루성, 명분을 내세우면서 공리공론에 빠짐으로 현실감각을 제대로 가지지 못한 점, 당쟁, 다른 사상에 대한 배타성, 모화의 사대사상과 폐쇄적인 국제관, 계층구조의 강화와 개성의 경시, 삶의 소극적인 태도, 그리고 노동경시로 인해 산업발전을 저해한 점 등이었다.
이러한 검토를 통하여 앞으로 유학이 한국의 미래를 위해 정치사상면에서 풀어야 할 과제로 네 가지를 제기하게 되었다. 첫째는 조선조 성리학은 한국인의 중국관에 대하여 분명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인의 일본관이 중국관과 다른 이유가 성리학 사상을 통해 설명되어야 하며 이점은 오늘날 한국인의 강대국관과 약소국관에 대한 재평가와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둘째는 조선조 성리학은 고루하고 형식적이며 권위주의 적이라는 인상을 씻어내고 진취적 기상을 품을 수 있는 미래지향적 시간관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는 민본이 아닌 민주시대에 부응되는 지도자론이 제시되어야 한다. 이 문제는 지도자의 인성과 관련하여 유학의 종래 입장에 대한 근본적인 재평가를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넷째는 한국인의 고유사상에 대한 유학의 영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일이다. 진취척이고 활달했던 일부 고유사상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 유학계 자체 내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만약 유학이 이 과제에 대한 해답을 주지 못한다면 한국인의 자존성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될 때 유학은 그 설자리를 잃고 말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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