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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難民’의 발생 배경과 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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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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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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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2(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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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한국 고대의 移住民을 고대적 ‘難民’으로 개념화해 유형별로 난민의 발생 배경과 동향을 검토하였다. 자발적으로 이주한 난민은 ‘정치 난민’·‘종교 난민’·‘경제 난민’으로 나누었고, 타율적으로 사민된 난민은 ‘외교 난민’·‘전쟁난민’으로 유형화했다.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을 전후한 시기 발생한 遺民은 자발적인 이주와 타율적인 사민이 혼재되어 있어 별도로 분석하였다. 난민의 발생 동향은 삼국 상호 간, 삼국에서 중국으로 간 경우, 중국에서 삼국으로 온 경우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삼국 간 ‘정치 난민’은 고구려에서 백제와 신라로 이주한 난민 규모가 많았다. 백제와 신라 간에는 백제에서 신라로 망명한 난민이 302명으로 신라에서 백제로 온 2명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삼국에서 중국으로 간 ‘정치 난민’은 발생 빈도와 규모에 있어서 고구려가 백제·신라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많았다. 고구려는 멸망할 때까지 18차례에 걸쳐 114,000명 이상의 난민이 중국에 정치적으로 망명하였다. 난민자의 신분은 왕족부터 문·무인 신료와 백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중국에서 삼국으로 온 ‘정치 난민’도 고구려가 신라와 백제보다 훨씬 더 많다. 고구려는 중국의 여러 왕조로부터 10차례에 걸쳐 5천여 명 이상의 ‘정치 난민’을 수용하였다. 난민자의 신분도 국왕에서부터 무인을 중심으로 한 신료집단과 백성까지 다양하다. 다만 삼국에서 중국으로 간 백성들이 신료들에 귀속된 난민이었다면, 漢(한군현)에서 삼국(삼한)으로 온 백성들은 독자적·산발적이다.
삼국시대 ‘종교 난민’의 사례는 고구려에서 신라(혜량법사)와 백제(보덕화상)로 간 2건이 남아 있다. ‘경제 난민’은 백제에서 신라와 고구려로 간 인원이 12,000명 이상으로 많았다. 대부분 4세기 말~6세기 전반, 특히 한성도읍기 이후에 발생하였다. 중국에서 삼국으로 온 경우는 385년에 後燕의 幽州와 冀州에서 다수의 유랑민이 고구려에 투항해 왔다. 경제 난민자의 신분은 모두 일반 백성들로 국한되었다.
타율적으로 이주하게 된 ‘외교 난민’은 인질(質子)로써 파견된 사람들이었다. 삼국 간에는 신라의 사례가 4건 4명으로 가장 많다.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가야에 각각 인질을 보냈다. 삼국에서 중국으로 간 외교 난민의 사례는 고구려가 4건 4명으로 신라와 백제에 비해 많다. 고구려의 외교 난민은 모두 4세기대 鮮卑族이 세운 慕容部와 前燕에 보낸 質子였다. 외교 난민자의 신분은 왕족이거나 고위 신료의 자손으로 국한되었다.
삼국시대의 ‘전쟁 난민’은 발생 빈도와 규모 면에서 다른 난민의 사례를 압도하였다. 고구려의 전쟁 난민은 백제·신라·중국으로 215,601명 이상이 발생하였다. 백제 난민은 신라로 10,178명, 고구려로 13,011명 등 25,089명이 포로로 끌려갔다. 신라의 경우는 백제로 41,801명 이상, 고구려로 8,000명, 중국(당)으로 2,170명 등 52,000명을 초과하는 전쟁 난민이 발생하였다. 중국에서 삼국으로 온 전쟁 난민의 규모는 고구려(47,302명+)와 신라(1,600명) 등 49,000여 명에 달했다. ‘전쟁 난민’의 규모는 전쟁의 결과와 국가 간 우위를 가름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
‘遺民 난민’은 動因 측면에서 ‘자발적 이주’와 ‘타율적 사민’의 복합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660년 9월 백제 의자왕과 왕족, 신료 93명과 백성 12,000명이 당으로 끌려갔다. 백제에서 신라로 간 유민도 많았다. 멸망 직후인 661년에는 달솔 조복 등이 신라에 항복했고, 670년에는 백제 부흥군의 전쟁 유민포로들이 신라로 강제 사민되었다. 고구려 유민도 668년 멸망 시에 보장왕과 왕자 복남, 대신과 백성 20만 여명이 당에 강제로 끌려갔다. 고구려 유민 중 1만여 명 정도는 북방의 突厥로 망명하였다. 고구려에서 신라로 이주한 유민도 3만여 명에 달했다. 668년 11월에는 문무왕이 포로로 잡은 고구려 유민 7천명을 데리고 수도 경주로 돌아왔고, 670년 6월에는 보장왕의 서자로 알려진 安勝이 4,000여 戶, 2만여 명을 이끌고 신라에 투항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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