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기지역 商人·地主의 日記와 門中 文書를 통해 본 한국의 근대 사회, 1899-1945
저자
발행기관
-
발행연도
2011년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자료형태
한국연구재단(NRF)
본 연구는 <한말 일제하(서울·경기지역) 商人·地主의 日記와 門中 文書를 통해 본 한국의 근대 사회, 1899-1945>라는 주제 아래 3개년에 걸쳐 3가지 소주제에 대한 분석을 진행할 것이다.
제1차년도 : 한말·일제하 서울·경기 지역의 商人의 민족의식 고찰 - 油商 주인식의 일기를 중심으로 - : 민족이란 ‘상상의 공동체’이며 민족주의는 지배와 억압의 수단이라는 지적에 대해 그러한 맥락을 이해하게 되면 귀가 솔깃해진다. 특히 한국처럼 저항민족주의의 전통이 강한 사회에서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은 한편으로는 생경하면서도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민족주의 담론을 둘러싼 논쟁은 매우 자극적으로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주장을 강조하기 위해 상대방의 논리를 단순화시킨다. 이러한 지적 진통은 역사인식의 지평을 넓혀가기 위한 과정으로 볼 수 있지만, 이제는 조금 더 진전이 필요한 시점이 와 있다.
본 연구가 <<每日錄事>>를 통해 상인 주인식의 민족의식을 검토해 보고자하는 것은 과연 당시의 사람들이 민족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었는가를 알아보기 위함이다. 그는 어느정도 자본을 축적한 상인이었고 또 많은 토지를 소유한 대지주로서 시흥 일대에서 일정한 영향력이 있는 존재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의식이 일반 평민들의 의식을 대표할 수는 없겠지만 신분적 측면을 고려할 때 그는 양반보다는 평민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을 고려하면서 그의 일기에 나타난 민족문제 인식과 개화파와 같은 정치적 엘리트들의 그것을 비교해 본다면 한국 민족주의 문제를 둘러싼 논의를 진전시키는 데에 약간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2차년도 : 한말·일제하 서울·경기 지역 기름상인 주인식의 상업활동과 지주경영: 주씨 가문의 자료는 도성과 가까운 경기 일대의 지주 가문의 문서인 동시에 상인 가문의 치부 관련 기록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주인식은 일기, 치부책, 추수기, 토지 관련문서 등 여러 가지 종류의 경제관련 문서들을 남겨 놓았는데, 아마도 이 자료들은 한말과 일제시기의 사회상 및 생활상을 상인의 입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치부책은 크게 다섯 종류로 분류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사업상 거래 및 家用과 관련된 물품 및 현금의 수입과 지출에 관한 모든 것을 기록한 초일기에 해당하는 일기책류이다. 둘째, 대략 10년 단위로 하여 家用에 관한 기록은 대폭 생략하고 주로 사업 관련 거래 및 세금 등을 정리한 중일기에 해당하는 일기책류이다. 셋째, 주로 채권 관계를 기록한 장책이며, 넷째 通洞, 樓下洞, 도염동, 만리현 등에 소재하고 있는 집안의 가계부와 같은 성격의 일기류이며, 柴粮入用記는 각 집안의 땔감과 양곡 일지이다. 다섯째, 거래관계, 세금납부현황, 공사관련 현금출납 등 특별회계의 성격을 지닌 회계장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田畓新稅金 제1호에는 印紙稅率表·地稅率表, 畓等級에 따른 價格, 田等級에 따른 價格, 각종 등기가격(상속·증여·매매·소유권·전당권)이 제시되어 있으며, 또한 중림리 및 과림리 일대 뿐만 아니라 수원·시흥·용인·광주·김포·인천 지역의 토지 규모와 그의 가격에 따른 세금을 정리해 놓았다.
3차년도 서울 경기 지역 물가 추이와 지역 경제 동향, 1899~1945 에서는 <<每日錄事>> 및
Daily life and the national consciousness of Korean common people in the modern society of Korea from the late 19th to the earyl 20th : A case study of a merchant in Seoul through his life diary and family document
This article is about the national consciousness of one of the common people (i.e. a vegetable oil merchant, Ju In-Sik) who was neither an intellectual nor a politician who was able to make an impact on the national agenda. The period i.e. the late 19th century - when he began to write his diary was the period when nationalism was forming in Korea.
There were two points of disagreement between him and the nationalistic intellectuals who were newspaper editors. One is the matter of their view of the Kojong emperor. Ju In-Sik had been conscious of the state through Kojong when Japan and Russia had invaded the Great Han Empire (=Daehan jeguk, this is the name of Korea from 1897 to 1910), and he blamed the righteous bandit - Hwalbindang - for creating a robber band and criticized the Pro-Japanese high government officials as traitors to his country. In comparison, the newspaper editors regarded the Joseon Dynasty as an obstacle to reform, calling on ancient history (especially Dan_gun) again as the origin of the nation on behalf of the Joseon Dynasty. Both of them established schools for the enlightening of the Korean people. He could not have established the Kyeunmyung school if he had not obtained help from the local community - the village association called Donghoe(洞會). The village people began to think that they were not subjects of Dynasty society but they had twenty-million compatriots in Korea.
Another one is the matter of the righteous army. Ju In-Sik had a deep respect for the leaders of the righteous army against Japanese imperialism and he imagined his country's future through them. However, the newspaper editors criticised them as an obstacle to civilization
This case shows that the national consciousness was not only something that was imagined as a project from above but it was also closely related to the culture which accumulated from the bottom of society.
merchant, daily life, Kojong emperor, the national consciousness, twenty-million compatriots, newpaper editors, righteous army, civil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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