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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전반의 朝日關係 전개와 倭學譯官 제도의 변화 = Early 17th Century’s Josun-Japan relationship and Waehakyokgwan(Japanese Language Official Interpreter) System
저자
이상규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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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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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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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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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296(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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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article examined the Waehakyokgwan- Japanese Language Official Interpreters system in the early 17th century emerged due to the circumstances between Josun-Japan relationship. In this study 4 categories of Waehakyokgwan system were comprised in which Waehakbyulcha, Chabiyokgwan, Gamdongyokgwan were belonged to Dongrae-bu and Munwiyokgwan was sent to Dama-do. Besides, there were Waehakhundo in Dongrae-bu, and Waehakyokgwan of Suyong(navy camp) in each Province responsible for investigation of drifter, and Waehakyokgwan for Tongsinsa(for Japan) & Bugyungsa(for China) but due to difficulty in finding changes related to relationship change between Josun and Japan in 17century they were excluded from the target of this study.
Waehakbyulcha one people was established to mitigate burdens of existing Waehakhundo in 1623 immediately after Injo Banjeong. Normally, after the war amid overall financial strain establishing official Yokgwan one people was not an easy task. After reopen diplomatic relationship, Tsushima could get approvals of Segyunseon for repatriation of Josun refugees or emphasizing of their close affinity with Josun. In this connection, with increased visits of Japan envoy, Hundo one people could not deal with all Japan related duties. Also, it was a countermeasure provided after reviewing whole spectrum of abnormal relationship between Josun –Japan in Gwanghaegun period.
Chabiyokgwan accompanies Jupwigwan who entertains large and small Chawae, had a responsibility to make communication of both parties. Chawae initially came with a mission of temporary envoy but later recognized as diplomat mission by Josun gov’t. During 1631-1635, an incident was occurred in Tsushima related to Sovereign's Message Issue in this regard Josun gov’t had no knowledge thus allowed visits of Japan envoy in various reasons. Upon closing the dispute in Tsushima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two countries became stable, Chawae was created under various reasons such as for envoy, or to deal with happy or sad event for Daema island ruler. Chabiyokgwan was responsible for treating these Chawae until 1680s.
Gamdongyokgwan was created when Sou family in Tsushima took over diplomatic authority with Josun and in the process of expanding trade. Tsushima was requesting removal of congested Waegwan while suggesting military support to Josun suffering pressure from Qing Dynasty. Josun gov’t bypassing their continued request for removal to have decided to improve Waegwan facilities in this regard it was created Gamdongyokgwan who were responsible for the work of both countries related to building repair work.
Munwiyokgwan was a system created from the aspect of irregular treatment of diplomacy between Josun –Japan in Gwanghaegun period. During Gwanghaegun era Royal Palace construction was processed with no sufficient means thus some quantity of cotton to be delivered to Japan for official trade was utilized due to lack of material which created reason of delay of cotton delivery to Tsushima later. Even after Injo Banjeong the shortage of cotton was still yet resolved which created strong complaint from Tsushima. Josun gov’t sent Yokgwan to Daema island in order to conciliate their dissatisfaction. In terms of diplomacy, Munwiyokgwan had a meaning to treat celebrate/ comfort happy & sad event of Daema island ruler, however, being its origin of creation, an attention has to be paid the purpose to mitigate dissatisfaction caused from stalled cotton delivery to Tsushima.
이 연구에서는 17세기 전반 조일관계의 전개에 따른 왜학역관 운용의 변화를 검토하였다. 여기에 포함된 왜학역관은 동래부의 왜학별차․차비역관․감동역관, 대마도로 파견되는 문위역관 등 4개 항목이다. 이외 동래부의 왜학훈도, 표류민 조사를 담당하는 각도 수영의 왜학역관, 통신사행․부경사행의 왜학역관은 검토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왜학별차 1원은 1623년 인조반정 직후 기존 왜학훈도의 업무 과중을 덜어주기 위해 설치되었다. 명목은 그러하였지만, 전란 후 전반적인 재정 궁핍 속에서 정식 역관 1원을 신설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국교재개 이후 쓰시마가 조선 피로인을 쇄환해 온 공로나 조선 외교에서 친연성을 내세워 누차 세견선 증파를 허락받았다. 일본 사자의 渡海例가 증가하면서 훈도 1인이 왜관 상대 업무 모두를 담당하기 어려웠다. 또한 광해군대의 비정상적인 조일관계를 일체 점검하면서 역관을 증원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하였다.
차비역관은 대․소 差倭를 응대하는 접위관을 수행하여 양측 간 의사소통을 담당하는 직책이었다. 차왜는 처음에 임시 사자로 도해했다가 후에 조선정부로부터 외교사절로 인정되었다. 1631~1635년 사이에 쓰시마번에서 국서개찬 사건이 터지자 조선 정부는 실상을 알지 못해 각종 명목의 사자가 도해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쓰시마번 내의 분쟁이 끝나고 양국 관계가 안정 궤도로 올라가면서 통신사 파견, 대마도주의 애경사 등의 명목으로 각종 차왜가 생겨났다. 1680년대까지 생겨난 차왜를 상대하는 직책이 차비역관이었다.
감동역관은 쓰시마 번주 宗氏가 대조선외교를 장악하고 본격적으로 무역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쓰시마번은 협소한 왜관을 이전해 줄 것을 요구하면서 대청 관계에서 위협을 받고 있던 조선에 外援을 자청하면서 군사 무기를 중개하기도 하였다. 조선 정부는 쓰시마번이 요구를 계속해 오자 왜관 시설을 개량하는 쪽으로 우회하면서 왜관 건물 보수에 관련된 양국 간 업무를 담당하는 감동역관을 신설하였다.
문위역관은 광해군대에 저질러진 조일외교의 파행적 일탈에서 생겨난 제도이다. 광해군대에 무리하게 궁궐 영건을 강행하면서 부족한 물자를 일본 공무역품을 사들이는 목면을 가져다 썼고 뒷날 쓰시마에 지급해야 할 목면(公木)이 적체되는 요인을 만들었다. 인조반정 이후에도 목면 적체는 해소되지 않아 쓰시마의 강력한 항의 대상이 되었다. 조선 정부는 역관을 대마도로 보내 목면 적체의 사정을 설명하고 불만을 누그러뜨리려 하였다. 문위역관이 외교적인 면에서 대마도주의 애경사를 위로․축하하는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문위역관의 발생 유래에서 보면, 쓰시마번의 목면 적체 불만을 완화하려는 목적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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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7 | 0.98 | 2.253 | 0.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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